개인적으로 작년 한 해는 사건사고가 많았던 해였다. 그중에는 살아가면서 경험한 가장 슬픈 일도 있었고, 잊지 못할 감동적이고 기쁘고 멋진 일도 여럿 있었다.
2024년이 시작할 때 나는 동네 독서모임을 구성하게 되었다. 이 모임에서 다양한 독서를 하게 된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다. 나를 비롯해 우리 동네에 살아가는 여자 다섯이 꾸려가는 모임으로 우린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추천하고 의견을 조율하여 책을 선정해서 읽어갔다. 지난 4월에는 어느 매체를 통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한강 작가님이 등단한 지 30년이 되는 해라면서 작가님의 <디 에센셜>이라는 책을 읽어볼 것을 추천하는 글을 읽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생각해 보니 맨부커상을 받았던 이 훌륭한 작가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걸 알고 마침 모임에서 함께 읽을 책을 고르던 차에 한강 작가님의 책을 읽어보자고 제안을 해서 <채식주의자>를 읽어보기로 했다. 나는 무슨 생각에선지 <채식주의자>에 앞서 작가님이 집필했던 초기 작품부터 읽어보자는 다부진 마음이 일어났다. 도서관에서 목록을 보니, 1998년에 출판된 <검은 사슴>이라는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난 작가님이 풀어내는 한 사람의 내면의 묘사와 성장 과정을 섬세하게 서술하는 문장 문장마다 깊은 공감과 감동을 받았다. 강원도 탄광촌 출신의 여성이 주인공으로 폐광으로 사라져 간 탄광촌의 모습과 그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이야기인데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게 된 사람들의 모습을 상세하게 그려내는 글을 읽으며 놀라운 작가님의 문체에 감동하면서 읽어갔다. 우리가 4월 모임에서 후기를 나눈 후 다들 더 많은 작품을 읽어보자고 의견을 모아서 한강 작가님의 다른 작품을 서로 읽고 싶은 대로 읽어보기로 했다. 처음부터 난 금세 작가님에게 매료되어 그대의 차가운 손,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희랍어 시간,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이렇게 많은 작품을 세 달 동안 꼬박 읽어 갔다.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기 전에 난 작가님의 작품 세계에 깊이 몰입되어 한동안 이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었다. 마침 대학에서 국문과를 나온 친구가 작가님의 열혈 팬이어서 만나서 술과 함께 작가님의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 정말 좋았었다.
한참이 지난 작년 겨울에 작가님의 노벨상 소식을 듣고 우리 모임 구성원들은 누구보다 깜짝 놀라며 더욱 큰 감동을 받았다. 우리가 함께 읽었던 작가님의 작품을 생각하며 이렇게 큰 상을 수상하게 된 그의 작품세계를 접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던 것이다. 노벨 위원회의 시상 이유를 듣고 내가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을 외국인들도 동일하게 느꼈다는 것이 무엇보다 놀라웠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력한 시적 산문, 어쩌면 이렇게 명확하게 그의 작품 세계를 평가했을까? 작품을 읽으며 느껴졌던 따뜻하고 뜨거운 인간애와 살아가는 사람들의 굴곡진 삶의 모습들, 때론 너무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폭력적인 환경 안에서 처절하게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줄다리기를 하는 주인공들의 마음에 대한 묘사는 아프지만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노벨상 소식을 들은 후에 다시 두 권의 책을 추가로 읽어갔다. <바람이 분다, 가라>, <작별하지 않는다>. 이 두 책은 여주인공이 친구를 통해 각자 어떤 사건 속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로 구성이 비슷했다. 마찬가지로 친구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사람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사랑이 담겨 있다. 애틋하면서 연약한 사람을 돌보는 작가님의 따뜻한 필체는 또다시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