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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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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오십 번 피고 지고

posted Apr 0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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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오십 번 피고 지고

 

2025년 2월 22일 토요일 오후 2시 제50회 팽팽문화제

 

 

처음으로 군산 시내 어느 곳도 들르지 않고 팽나무에게로 곧장 갔다.

군산으로 가는 산업 도로 위에서 빨간 차가 왼쪽 차선으로 빨리 달려갔다. 혹시 저 차가 아닐까 싶었다.

 

팽나무로 가는 길 입구에 있던 하제1길 6 마지막 집이 헐리고 있었다. 이제 그곳에 남은 집은 한 채도 없다. 대신 미군기지만 가득하다. 2025년 2월 22일 토요일이었다.

 

7SA05278_ 하제마을 마지막 집.JPG

하제마을 마지막 집 2024년 12월 21일

 

 

CKB02606_ 2025년 2월 22일 마지막 철거되는 하제마을 집.JPG

2025년 2월 22일 마지막 철거되는 하제마을 집

 

 

두 시 조금 전이었는데 팽나무 앞에는 벌써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한 사람을 찾았다. 2022년 귀정사에서 옆방에 머물렀던 정분방지기 바다별. 2년 반 만에 만나는 건데 낯이 익었다. 그이는 군산시민이었고, <굴뚝새와 떠나는 정원 일기> 남원 귀정사 정원 일기 2 중 등장인물로 책을 전해주는 과정에서 연락이 되어 팽팽문화제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CKB02622_ 소원지 두른 팽나무.JPG

 

 

600살 팽나무는 소원지를 끼운 새끼줄을 낮은 허리에 두른 채 서 있었다. 이날 한복을 입고 오라고 해서 철릭 치마를 입고 갔는데, 그냥 온 사람들은 알록달록한 옷을 덧입고 있었다. 도깨비 복장이었다.

 

올해 2월 12일이 음력 정월 대보름이었다. 열흘 지났지만 팽나무에게 대보름 맞이를 했다. 먼저 신부님이 절을 하시고 이어 참가자들이 절을 했다. 소지를 날리고 풍물이 시작되었다.

 

CKB02650 2025년 정월대보름제.JPG

2025년 정월대보름제

 

CKB02675_ 팽나무 앞 대보름 풍물.JPG

 

 

도깨비굿 하애정 풍물패를 따라 대숲 속으로 들어갔다. 우뚝 선 소나무가 있었다. 300년 된 보호수였다. 사람들이 소나무를 둘러 춤을 추고 노래하며 막걸리를 뿌렸다. 우리가 신명 나게 놀수록 소나무가 좋아한다고 했다.

 

CKB02698_ 소나무 앞에서.JPG

소나무 앞에서

 

CKB02727_ 소나무 앞 재롱잔치.JPG

소나무 앞 정월대보름제

 

 

다시 팽나무 앞으로 와서 딸기 외 사람들이 준비한 찰밥과 김과 어묵과 김치전을 먹었다. 바다별은 처음 왔는데도 귀정사에서처럼 나를 챙겨주었다. 함께 먹을 사람이 있어서 좋았다. 지신밟기와 강강술래로 대보름 행사가 끝났다. 팽나무도 모처럼 흥겹지 않았을까.

 

곁에 있던 마지막 집이 철거되고 때마침 북적이던 손님도 휑하니 사라진 팽나무 주변에 쓸쓸함이 내려앉았을 즈음, 날이 쉬이 어두워져서 나포에 들르지 못하고 왔다. 그날 밤 팽나무는 무슨 꿈을 꾸었을까? 소원을 제 허리에 묶어놓고는 한 달 후 찾아올 우리를 벌써 기다리고 있을까?

 

CKB02775__250222 제50회 팽팽문화제_일곱째별.JPG

제50회 팽팽문화제

 

 

 

[팽나무 문학을 말하다]

 

2025년 3월 22일 토요일 오후 3시 제51회 팽팽문화제

 

군산 미군기지 격납고를 한참 지나 팽나무에게로 갔다. 재작년 11월에 처음 팽팽문화제에 갔을 때는 못 본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주변에는 연두색 철조망이 쳐있고 팽나무로 가는 길에 문 한 짝을 만들어 놓았다. 내비게이션에 '하제마을 팽나무'를 치면 왼쪽으로 빙 도는 우회도로가 표시되었다. 이상했지만 길을 아니까 무시하고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문 옆에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지난달엔 그냥 지나쳤지만, 이번엔 한 번 읽어보았다. 국유지 내 무단점유 시설 자진철거 요청 즉 안쪽 비닐하우스를 철거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비닐하우스에는 팽나무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었다.

 

지난달 굴삭기 두 대가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CKB05615_ 하제마을 마지막 집터.JPG

하제마을 마지막 집터

 

 

드디어 팽팽문화제가 오후 세 시에 시작했다. 춘분이 지나고 해가 길어졌기 때문이다. 저 멀리 팽나무 근처에 문정현 신부님이 앉아계셨다. 그즈음 나는 문 신부님의 2011~2020년까지 제주도 강정마을 천막미사 강론집 <길 위에서 하느님 나라를 만나다>를 매일 밥 먹을 때마다 하루치씩 읽고 있었다. 그래서 신부님을 뵙자 어제 뵙고 오늘 뵙는 듯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팽나무 옆에는 풍물패가 연주하고 있었고, 현철은 4월 5일에 그곳에서 야외결혼식이 있다고 구조물을 설치했다 철거하고 있었다. 새로 나온 평화바람 수첩 세트와 에코백이 매대에 놓여 있었고, 그 옆에선 드디어 등장하신 공룡 영길과 인디가 볶음우동을 요리하고 있었다. 팽나무 가까이 가서 인사를 하니 그 뒤에 어느 아낙이 쑥을 또각또각 자르고 있었다. 현철의 여동생이었다. 바야흐로 봄이었다.

 

CKB05637_ 바야흐로 봄.JPG

 

 

팽팽문화제는 매회 주제가 있는데, 51회 팽팽문화제는 <팽팽60분과 함께 팽나무 문학을 말하다>였다. '팽팽60분은 팽팽문화제 60분 전에 만나 짧은 산문이나 시 몇 편 등 읽을거리를 현장에서 낭독하고 소소하게 소감을 나누는 정겨운 읽기 모임'이라고 했다.

 

그 모임에서 심호택의 시 <철조망>은 중학생 언니가 낭독했다. 그 음성을 어린 동생이 녹음하고 있었다. 녹색평론 184호-2023년 겨울호 중 발췌 글은 하제마을 주민이 읽어주셨다. 다시 심호택의 시 <그만큼 행복한 날이>와 <아무것도 모를 때>와 김종철 선생님의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중 <시의 마음과 생명 공동체>의 일부와 김수영의 시 <폭포>와 송경동 시인의 <내일 다시 쓰겠습니다> 중 산문시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했어-「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를 기억하며>가 낭송되었다. <8대 죄악>과 <내일 다시 쓰겠습니다>는 눈으로만 읽었다.

 

CKB05656_ 문학을 말하다.JPG

 

 

이후 제주도 강정에서 매일 12시에 인간띠 잇기와 깃발 행진을 하며 '함께하는 것의 힘을 노래'하던 <모레도 토요일>이 한 달 전에 육지로 나와 '모르는'외 팽나무와 평화바람을 노래했다. 두 번째 팽팽문화제에 왔을 때 사람들이 커다란 나무 밑에서 춤추는 모습, 나무를 지키는 사람들, 마을을 지키는 나무를 보고 만든 노래라고 했다. 뿌연 미세먼지에 부서지는 햇살이 팽나무를 등진 두 뮤지션을 감쌌다. 여태 들었던 그 어떤 노래보다 맑고 싱그러웠다.

 

CKB05681_ 모레도 토요일.JPG

모레도 토요일

 

 

팽나무

 

여기 한 나무가 있어요

상상 너머에 살아요

 

나무는 큰 그늘과 큰 바람

우리의 바람을 듣고 있어요

 

여기 한 나무가 있어요

사랑하며 살고 있어요

 

나무는 바람을 모두어

우리를 그 곁으로 모아요

 

우리는 나무 곁에서 바람 되어

나무의 선잠을 깨워 얘길 듣네

 

우리는 나무 곁에서 바람 되어

나무와 함께 춤추고 노래하네

 

아(우)~

 

(ment)

스스로 바람이 된 사람들

사라진 마을을 지키는 나무

전투기 아닌 새가 하늘을

격납고 없는 작은 마을들

 

여기 한 나무가 있어요

나무는 모든 걸 알고 있어요

 

여기 한 나무가 있어요

우리는 그 곁에 살고 있어요

 

CKB05691_ 모레도 토요일.JPG

모레도 토요일

 

CKB05694_ 팽나무 앞 공연 .JPG

 

 

[평화바람 앞마당에서 '모레도 토요일'이 부르는 '팽나무' > 유튜브에서 노래 듣기]

 

민들레 홀씨와 나비 날개 같은 노래 후 딸기의 팽나무 지키기 제안이 있었다.

 

"하제마을 입구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집이 행정대집행이 진행돼서 주변 김 공장이랑 다 허물어졌습니다. 그 후 2주쯤 지나 어떤 분이 제보를 해주셨어요. 팽나무 주변에는 펜스가 쳐있고 입구에 문만 잠그면 못 들어오는데, 그 문을 잠근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현재 여기는 국방부에서 강제 소유해서 국방부와 기재부 소유인데 국방부에서 소유관리권을 군산시에 넘기려고 한답니다. 군산시에서는 국가자연유산 팽나무 보존에 관한 계획을 올해 수립해서 내년부터 관련 행정조치나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는데요.

헤아려보니까 저희가 2020년부터 여기를 지켜서 보호수였던 팽나무를 전라북도 지정문화재로 승격시키고, 또 그것을 국가자연유산으로 만들기까지 51번째 팽팽문화제와 서명운동도 했는데, 지금처럼 저희가 언제든지 보고 싶을 때 팽나무에 올 수 있고 자유롭게 이곳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제마을 팽나무 지키기 시민행동>을 만들려고 합니다.

함께해 주시겠습니까?"

 

CKB05699_ 팽나무 지키기 시민행동 설명하는 딸기.JPG

팽나무 지키기 시민행동 설명하는 딸기

 

 

미군기지 끝자락에 아슬아슬 평화로웠던 팽나무를 향한 검은 마수가 뻗치고 있었다. 마을이 있을 땐 잘 보이지도 않던 팽나무를 주민들 다 쫓아내고, 눈길도 주지 않던 팽나무를 5년째 사랑하고 지키는 사람들마저 보존이라는 명목으로 막아 팽나무를 외롭게 고립시키려는 이들. 사업과 치적에 눈이 어두워 뭣이 중헌지 모르는 사람들. 미군에게 우리 땅 내주고 새만금 갯벌은 메워버리고 간신히 숨 쉬고 있는 수라 갯벌에 필요도 없는 군사공항을 짓겠다고 하는 사람들. 저들의 야욕은 대체 어디까지 치달을 것인가.

 

팽나무 주변 땅을 파헤쳐놓는 두더지 굴을 밟아놓고, 하제마을 주민들이 가져오신 음료수와 몇 달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공룡 영길 샘의 볶음 우동과 감자 수제비를 먹었다.

맛나고 즐거운 51번째 팽팽문화제가 끝났다. 이번 달부터 무료로 나눠주는 <월간 수라>도 챙겼다. 햇볕 따사로운 팽나무 앞에서 사람들이 오종종 모여 떠날 줄을 몰랐다.

다음 팽팽문화제는 2025년 4월 26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하제마을 팽나무 앞에서 한다.

 

7SA05278_ 제51회 팽팽문화제.JPG

제51회 팽팽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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