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고, 우리 안의 '분열'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얼마 전에 『존 오브 인터레스트』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많아요)
예술영화의 아우라를 뿜어내는,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영화라는 것은 여기저기서 읽어 알고 있었습니다. 왠지 보아야 할 것 같은, 그런데 자꾸 안 보게 되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는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특이하게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만들고, 총괄했던 루돌프 회스와 그 가족)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고, 홀로코스트 영화라고 하면 으레 나올 법한 학살 장면들도 직접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환하고 안온한 한 가족의 일상이 화면에 펼쳐지는데, 그런 화면과 엇박자를 이루는 불편한 배경음들, 화사한 화면에 어울리지 않는 조연들(하인으로 부리는 수용소 재소자들)의 옷차림이나 태도, 구체적으로 설명되지는 않으나 미심쩍고 불길한 몇몇 에피소드들을 보고 있자면, 으스스한 한기가 스미면서 헛구역질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실제로 영화의 끝부분에 주인공인 루돌프 회스가 아내에게 헝가리의 유대인들을 어떻게 몰살할지 자랑하듯 전화로 떠들고 나서, 빛과 어둠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텅 빈 복도와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멀쩡하게 계단을 내려가던 이 사람이 심한 오심을 느끼면서 구역질을 하고 침을 뱉는 장면이 두 번 반복되는데, 그러고 나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건물을 빠져나갑니다. 물론 이 장면에 대해 영화는 아무런 설명을 하고 있지 않지만, 저는 이 사람의 '무의식적인 양심'이 있어 자기 자신의 혐오스러운 행위에 욕지기가 났던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담장 하나를 두고 무시무시한 일들이 자행되는 수용소 바로 옆에서, 그래서 밤이면 시체를 태우는 벌건 불기둥이 창밖으로 어른거리는 집에서, 루돌프와 그의 아내, 그리고 아이들은 평온하고 행복합니다. (유일하게 이 집안의 어린 아기만이 어떤 불안을 느끼는 것처럼 거의 매 장면 괴롭게 웁니다). 심지어 이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다정한 부모입니다. 엄마는 돌도 안된 아기를 안고 정원의 꽃들을 관찰하게 도와주고, 아버지 루돌프는 잠자리에서 딸들에게 책을 읽어 줍니다.
수용소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기게 설비를 홍보하러 온 기업인들과의 미팅 장면은 아….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피가 튀고 잔인해서가 아니라, 완벽하게 편안하고 능률적이어서 소름이 끼칩니다.
이토록 깊은 분열이 가능하다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사람이란 대체 무엇인가를 회의하게 됩니다. 출근해서는 효율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태워서 처리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다정하고 친절한 남편이자 아빠가 됩니다. 그 사이에 아무런 모순이 없다는 사실이 기이하기만 합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저에게는 조용한 공포영화였습니다.
그러나 물론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분명 있겠지만, '자신 안의 분열'이라는 것이 과연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소장과 그 가족만의 일일까요.
A씨는 성인이 된 후 발병한 조울증으로 여러 해 동안 고통받아왔습니다. 조와 울의 낙차가 커서, 조 시기에는 자신감에 넘쳐 일을 벌이지만, 그 일은 골치 아픈 사고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울의 기간에는 집 밖을 나오지 않고, 밥 먹기도 힘들어하며 죽은 듯 지냅니다. 이 자체도 분열이라 할 수 있겠죠.
그 때문에 A씨가 결혼한 후에도 A씨의 부모님은 늘 노심초사하고 마음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A씨도 아들 때문에 속을 많이 썩었습니다. 아들은 사춘기가 되면서 말을 듣지 않고, 학교도 가지 않겠다고 해서 A씨를 절망하게 하였죠. 그럴 때 A씨가 억울하다는 듯하는 말이 있습니다. '엄마는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어려서 정말 말을 잘 듣는 착한 딸이었기 때문이다'입니다. 자신 또한 부모님을 힘들게 하는 딸일 수 있다는 인식은 분열되어 A씨에게 없습니다.
B씨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입니다. 아내는 집안일이고 육아에는 관심이 없고, 친정 엄마가 하신다는 사업을 돕는다며 밖으로만 돕니다. B씨는 아내의 성화로 사업자금을 조달하다가 살던 집도 저당 잡히지만, 결국 사업이 망해서 B씨는 신용불량자가 되고, 나중에는 월급도 차압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옆에서 볼 때 B씨는 아내와 장모로부터 속임과 착취를 당하고 있지만, 본인은 하나님이 맺어주신 이 가정을 끝까지 참고 지키는 일이 자신의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B씨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그가 경험하는 하나님은 가차 없는 운명을 강요하는 무서운 하나님입니다.
여기 제가 다른 사람들을 사례로 들었지만, 저 또한 어떠한 분열이 없겠습니까.
우리 안의 분열을 어떻게 다루는지, 분열된 부분을 향해 어떠한 태도를 지니고 행동하는지가 우리를 성장하게 하고, 사람다운 길로 나아가게 돕는 것 아닌가 합니다. 그 길은 고통을 동반하는 여정일 수 있으나, 그 길 위에서 비로소 우리는 괴물이 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