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립 지음
국가의 딜레마: 국가는 정당한가
2021, 사무사책방
지난해 12·3 비상계엄사태 이후 한국사회가 몹시 어수선하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가 크게 후퇴하고, 경제적으로 한국의 국가 신인도가 툭 떨어졌다. 현직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된 데 이어, 수사기관에 체포·수감되었다. 대통령에 대한 환상이 깨어지면서, 과연 '대통령'이란 무엇인지, 나아가 '국가'란 무엇인지, 새롭게 질문하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익숙하게 사용해 온 '애국'이나 '충성'이란 단어도 낯설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읽을 책으로 『국가의 딜레마: 국가는 정당한가』를 권해본다. 이 책은 국가라는 조직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하고, 국가의 기원과 변천과 성격에 대해, 영향력 있는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두루 소개한다. 저자는 국가가 정당한 조직인지 묻고, 국가의 비천한 기원을 들추어낸다. 국가라는 괴물을 해부하고, 반국가주의자들의 이야기를 분석한다. 민주주의가 희망의 언어인지, 국민은 국가의 주인인지 묻는다. 그리고 해결되지 않는 국가의 딜레마가 무엇인지 논의한다.
상큼한 해답은 없다. 그래서 읽고 나도 개운하지 않다. 그렇지만 이 책은 국가에 대한 환상, 국가의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에 대한 환상을 깨트려준다. 정치인과 고위관료와 소위 지도자라고 불리는 이들의 선동과 미사여구에 속지 않게 경계해 준다.
현실적으로, 난민을 제외하고, 한 국가의 국민으로 살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각 국가의 규모가 다르고, 정치·경제·문화적 발달 수준에 차이는 있지만, 모든 개인은 어느 국가의 구성원이다. 대부분의 국민은 국가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준다고 믿는다. 자기 국가를 자랑스러워하는 국민이 많고, 국가에 위기가 닥치면 국가를 위해 헌신하려는 사람도 많다.
한국의 경우, 약 1세기 전에 국가를 잃은 적이 있고, 국가를 되찾은 후에는 남북으로 갈라져 3년 동안이나 6·25전쟁을 치렀다. 이런 과정을 지나오면서, 온 국민이 국가의 소중함을 뼈에 새길 정도로 깊이 경험했다. 역대 대통령과 고위관료와 정치가 들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다고 공언했고, 중요한 날에는 국립묘지에 참배했다. 젊은 남성들은 싫든 좋든 군에 입대하여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담당했다. 지금도 관공서와 학교들은 주요 행사가 있으면 국가에 대한 예의, 즉 국민의례로 시작한다.
그런데 홍일립의 책을 읽다 보면, 국가에 대해 각 개인이 품고 있던 '좋은' 혹은 '신비에 싸인' 이미지가 지워진다. 국가에 대해 가지고 있던 희망적인 뭔가가 날아가 버린다. 국가의 지도자라 불리는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집단에 대해서, 믿음보다는 경계심을 품게 된다. 이 책은 국가에 대한 기대를 접게 만드는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국가 기관이나 국회의 권장도서로 선택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 책은 플라톤(Plato)이 쓴 『국가론』 같은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지 않다. 라스키(H. J. Laski)나 장 보댕(Jean Bodin)이나 밥 제솝(Bob Jessop) 등이 쓴 『국가론』처럼, 풍부한 내용을 깊이 있게 다루지도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간략하게 구성했다. 국가라는 것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간단하게 요약했다. 무거운 주제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오래 붙잡고 있지 않아도 되기에, 부담 없이 읽으시라고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