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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야단법석": 5대종단의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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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독교'의 역사적 뿌리

posted Feb 0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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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호수 89
글쓴이 박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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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와 성조기, 찬송가. 한국의 보수 세력에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보수적인 정치 집회에 찬송가를 부르며, 하느님을 찾는 기독교인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목사나 부흥사가 집회를 주도하고, 부흥회를 연상케 하는 발언들을 하곤 합니다. 지난 1월 19일 서부지법에서 벌어진 폭동 사건에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참여하였습니다. 특정종교가 정치 집회에서 보여주는 폭력적인 모습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남겼습니다. 보수 개신교의 이러한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꾸준히 발전하며 오늘의 극단적인 행동에 이르렀습니다. '개독교'라는 말이 성행할 정도로 한국의 보수 개신교 모습은 한국 사회의 암적인 모습으로 고착되었습니다.

 

지난 2024년 9월 6일, '국가 폭력에 편승하여 한국 기독교(개신교)가 저지른 죄책을 고백하는 세미나'가 기독교연합회관에서 열렸습니다. 이 세미나는 (사)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NCCK인권센터, 한국기독학생총연맹(KSCF), 기장교회와사회위원회, 한국기독교청년협의회(EYCK), 예수살기에서 주최하고 (사)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가 주관하였습니다. 이 세미나에서는 "제주와 여순을 거치며 형성된 '반공 기독교(개신교)'는 여전히 4.3의 과오에 대해 인정하거나 사과·반성을 하지 않고, 오히려 대한민국 극우의 마지막 보루가 되고 있으며, '뉴 라이트' 논쟁 등에서 빠지지 않고 있다"라고 한탄하면서 "교회와 교인들이 이제라도 다함이 없는 사과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였습니다.

 

한국의 개신교는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이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을 '적'으로 규정하였습니다. 그들을 '공산주의자', '빨갱이'라고 낙인찍고, 이들을 제거하는데 앞장섰습니다. '반공이데올로기'를 세뇌시키고, 이들의 강한 신념과 신앙을 결부시켜 자신의 집단에 소속하지 않는 개인과 집단을 '마귀'와 '사탄'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이에 앞장선 대표적인 집단이 '서북청년단'입니다. 영락교회 청년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이 서북청년단은 개신교 지도자들이 선동하여 '공산주의자'를 속출하는데 앞장서도록 하였습니다. 개신교계 지도자들은 이들의 폭력을 '거룩한 전쟁'으로 미화하며 지지하였습니다. 그렇게 형성된 극우 청년조직은 사명감을 가지며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였고, 그렇게 한국 사회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살해하는 과오를 저지르게 됩니다.

 

이승만 정권은 '빨갱이'를 속출하기 위해 그 지역의 개신교 지도자들을 앞세웠습니다. 이들은 마을의 주민 중 '빨갱이'로 여겨지는 이들을 손으로 가리켰고, 이 손을 가리켜 '손가락 총'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사람들은 교회로 모이게 되고, 그렇게 한국 교회의 극우화된 조직이 형성됩니다. 이들의 폭력은 국가에서 공로로 인정받아 사회 곳곳에 중직으로 임명되기도 합니다. 이들은 군지휘관으로 출세하며 한국 사회의 보수화를 주도하게 됩니다. 오늘날 '육군사관학교'에 해당하는 '국방경비사관학교'의 5기생 3명 중 2명이 서북출신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후 박정희 군사 쿠데타에 적극 개입합니다. 1966년 김준곤 목사를 중심으로 국가조찬기도회를 가짐으로써 기독교는 더욱 우경화의 길을 걷게 되고, 그 세력이 지금의 극우 보수 기독교로 성장하게 됩니다.

 

'서북청년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북지역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북지역은 조선시대 평안도 일대를 이야기합니다. 조선 중기 농사기술이 발달하고 상공업이 성장하면서 백성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집니다. 특히 서북지역으로 불리는 평안도는 청나라와의 무역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경제성장을 이룬 지역입니다. 조선 후기 세도정치가 시작되면서 특정 지역에 권력이 집중되고, 부정과 부패가 만연해집니다. 이에 따른 왕권의 약화와 왕실 내의 외척 세력의 득세로 백성들의 불만이 커지게 됩니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까지 있었던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더해지고, 특히 평안도 지역의 차별과 불평등은 더욱 심각했습니다.

 

서북지역의 사람들을 뜻하는 '서북인'이라는 말은 조선시대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선조 때 '율곡 이이'가 '서북인의 수재(守宰, 지방관)가 되는 자가 적으므로 이 지방 인재의 등용을 상책(上策)한 것'을 보면 조선시대 서북지역의 차별에 대한 불만이 있었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서북인의 불만으로 발생한 것이 '홍경래의 난'입니다. 이 난의 실패로 서북지역은 더욱 배척당하게 됩니다.

 

서북지역의 설움이 극에 달하는 시기가 일제강점기입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며 서북지역은 일본군인이 주둔하던 지역이었습니다. 일본군이 주둔한 후, 일본은 본격적으로 이 지역에 문화동화정책을 시행합니다. 서북지역에서의 문화동화정책은 언어, 교육, 신사참배, 사회적 통합 등을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일본의 군국주의적 이념과 천황 숭배를 강요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은 힘이 없어 서북인들을 돌볼 수 없었습니다. 서북인들은 스스로 일본에 대항해야 했고, 강력한 반발과 저항이 지속적으로 발생합니다. 이렇게 이들 안에는 반일감정과 민족주의가 강하게 자리하게 됩니다.

 

누구도 돌보지 않던 이들을 관심가지며 돌보아 주었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장로교선교사들입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던 방치된 백성들을 미국장로교회에서는 의약품과 먹을 것을 나누어 주며 그들의 위로가 되어 주었습니다. 교회를 찾는 이들이 늘어났고, 장로교는 평양을 중심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미국장로교선교사들은 의료와 교육을 통해 그들을 돌보았습니다. 평양신학교, 숭실학당, 오산학교 등이 이러한 배경에서 설립됩니다. 미국장로교선교사들의 서북지역 선교활동은 개신교 확산과 함께, 교육, 의료, 사회적 변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들의 활동으로 평양은 개신교의 중심지로 발전하였고, 이후 한국 교회의 성장에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평양을 중심으로 서북인들은 일제에 강하게 저항하며 의병운동을 벌였습니다. 해방 후, 국가가 둘로 나눠지면서 이들은 소련과 공산주의에 의해 다시 탄압을 받게 됩니다. 사회공산주의를 국가 이념으로 택한 북측은 기독교의 제국주의 이미지를 거부하며, 공산주의의 적으로 규정합니다. 목사와 성직자들을 구금하고 처형하였고, 교회의 부지를 빼앗으며 기독교인들을 제거하려 하였습니다.

 

결국 많은 서북지역의 개신교인들은 고향을 떠나 월남을 결정합니다. 고향을 떠나 월남한 머물 곳 없는 이들을 반겨준 이들이 남측에 자리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었습니다. 미국을 등에 업고 대통령이 된 이승만의 경우 자신의 약한 지지기반을 강화하고자 서북지역에서 온 기독교 엘리트들을 중용합니다. 그들에게 일본으로부터 되찾은 종교 부지를 나누어 주며 머물 곳을 마련해 줍니다. 고향을 떠나 설움을 안고 월남한 개신교인들은 이를 하느님께서 주신 축복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기회는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처럼 여겼고, 이를 위해 목숨도 불사하며 공산주의 제거에 앞장서게 됩니다. 개신교 지도자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을 강조하며, 이를 신의 뜻과 연결시켰습니다. 이들은 공산주의를 비윤리적이고, 신앙을 박해하는 이념으로 간주하며,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것이 종교적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두고 보면 오늘날 극우 개신교가 보이는 배타성과 폭력성의 이면에는 오랫동안 겪었던 변방의 백성들의 설움이 서려 있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극우 개신교가 과거의 서북장로교인들을 뿌리로 하고 있다는 점은 보다 다양한 역사적 해석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살펴보면 극우 개신교인들 이면에는 그들의 내면을 지배하는 거대한 두려움, 슬픔이 있음을 가늠하게 합니다.

 

서남동 선생은 '한(恨)'과 '죄'를 구분 지어 설명하였습니다. '한(恨)'은 민중의 언어이며, '죄'는 지배자의 언어입니다. 오늘의 극우화 된 개신교의 모습 이면에는 오랜 역사를 거치며 내면에 묵혀진 '한(恨)'이 있음을 살펴보게 됩니다. 이 '한(恨)'이 폭력으로 발현되는 것은 '죄'가 됩니다. 지배자의 자리에 서거나 혹은 서고자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한(恨)'은 한민족이 겪어온 집단적인 고통과 슬픔이며 이는 민족적 슬픔과 억압된 감정으로 나타납니다. 함석헌 선생은 이러한 '한(恨)'을 푸는 것이 '해방세상'을 여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 길은 용서와 화해로서 가능한 길입니다. 왜곡된 역사와 그 안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은 조금은 화해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우리에게 줍니다. 힘든 걸음도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이해하며 바라본다면 느리지만 조금씩 가능한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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