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34 - 아메리카 원주민의 기도
Sue Cho, ”Ceremony for the Lost Lands”, 2020, Digital Painting
연일 올라가고 있는 코비드 19 감염률로 2020 Thanksgiving Day는 가족들이 모이지 않고 각자 조용히 보내기로 했다. 터키 대신 통닭 한 마리를 구울까 하다 간단하게 에어 프라이어에 닭 다리를 바싹하게 구워 먹는 거로 낙착을 보았다. 아침나절 넉넉한 시간을 카톡으로 손가락 인사 주고받느라 분주하다. 가족들이나, 때론 홀로 있는 친지들과 함께 음식을 차리고 즐기면서, 감사의 인사를 나누던 예전의 추수감사절은 이젠 다른 빛깔로 다가온다. 코비드 때문이라기보다는 작년 이맘때의 아하 모먼트(Aha moment)로.
작년 추수감사절 즈음 National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 아메리카 원주민 뮤지엄)에 들렸다. 뉴욕시에는 웹사이트에 따라서 83개 내지 100개나 되는 많은 뮤지엄이 있고, 유명 뮤지엄에는 시즌별로 다양한 전시가 있어, 이곳에 와 보고 싶었지만, 번번이 뒷전으로 밀렸었다. 문 닫기 한 시간 남짓 시간이 있어, 건물과 전시를 둘러보려 했는데 마침 “아메리카 원주민 관점에서 본 추수감사절” 강의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https://americanindian.si.edu/sites/1/files/pdf/education/thanksgiving_poster.pdf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감사의 날을 따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그리고 수확 철마다 감사의 생활이 배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지키는 “Thanksgiving Day”는 그들에게는 삶의 터전인 땅을 빼앗기고 수백만이 학살당한, 죽음을 애도하는 날 “National Day of Mourning”이다. 처음 유럽에서 와 굶어 죽어가는 정착자에게 음식을 나누었던 원주민들이 그 땅에서 내몰리고 학살당하고 강제이주한 역사, 몰랐던 사실이 아니었는데 원주민 강사 Perry Ground씨가 분노와 공격의 톤이 아니라 차분하게 그들의 입장에서 이야길 할 때, 처음으로 그들의 아픔이 내 안에 들어와 나의 아픔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추수감사절’에 내가 부여했던 의미들이 무너져 버렸다. 한해를 감사하고,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명절이라는 기다림, 즐거움이 퇴색되고 한편에는 인디언 원주민의 아픔이 물들었다.
조지 캐틀린(George Catlin, 1796-1872)은 1830년대에 서부개척 당시, 5차례 여행을 하면서 아메리칸 원주민의 초상과 삶을 그린 화가이다. 그의 많은 작품이 현재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에 소장되어 있다. 위엄있고 용맹스러운 원주민의 모습과 생활상을 그린 작품들을 아래 사이트에 들어가면 감상할 수 있다.
https://americanart.si.edu/artist/george-catlin-782
George Catlin, Stu-mick-o-súcks, Buffalo Bull's Back Fat, Head Chief, Blood Tribe, 1832, oil on canvas,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조지 캐틀린은 원주민에 관해 책도 썼는데 “언제나 그들이 가진 가장 좋은 것으로 나를 맞아 준 인디언들을 사랑한다. 법 없이도 정직하고, 감옥도 없으며, 가난한 집도 없는 그들을 사랑한다. 성경책을 읽거나 설교를 듣지 않아도 신의 계명을 지키는 그들을 사랑한다….”라고 증언한다.(From “ Last Rambles Amongst the Indians of the Rocky Mountains and the Andes”)
오래전 Santa Fe에 방문했을 때 근처 푸에블로 공방에서 만난 추장이 떠오른다. 그분이 손으로 빚어 구운 조그만 작품을 사고 싶었는데, 현금만 받는다고 한다. 마음에 들지만 가진 돈이 모자란다고 하니, 주소를 적어주면서 나머지 돈을 부칠 수 있으면 부쳐달라고 하였다. 일반 상인의 거래, 돈 계산과 이윤과는 다른 세계가 느껴졌다. 조지 캐틀린이 증언에서 보여주듯 위엄과 지혜,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이 배불뚝이 피겨린을 볼 때 함께 기억된다.
뉴욕시에서 흥미로운 아메리카 원주민의 조각상을 St. Mark’s Church in-the-Bowery 입구에서 볼 수 있다. Solon Borglum의 작품, Aspiration과 Inspiration, 대리석으로 만든 실물 크기의 조각이다. 1920년대에 목사 Norman William Guthrie 재임 기간에 사들인 것인데, 어떤 의미로 인디언 동상을 교회 문 앞에 세웠을까? 그들에 대한 사죄일까? 아니면 그들이 인디언이라는 것과는 상관없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하늘을 우러르는 경건한 예술적 표현이 아름다워서였을까?
자연이 착취되고 환경이 오염되어,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오늘날, 자연을 돌보고 만물과 함께하는 그들의 포용력과 지혜를 생각한다. 통나무 집이 있는 Stering Forest도 오래전 원주민들이 살았던 곳이라 한다. 잘 보존된 이곳의 자연을 보며 평화롭던 시절, 그들의 삶을 그려본다. 뗏목으로 배를 만들어 호숫가에서 낚시하고, 모카신을 신고 살금살금 검은 곰과 사슴, 와일드 터키를 사냥하던 그들. 티피 속에 아기를 잠재우며, 코로 숨을 쉬나 확인하며 입을 다물어 주는 어머니들. (조지 케틀린은 원주민의 경험을 바탕으로 1870년에 ‘Shut your Mouth and Save your Life’란 책을 썼다.) 세 자매(Three sisters)라 불리는 옥수수(Maze), 콩(Bean), 호박(Squash)을 함께 심어 상생하게 하는 지혜, 매일의 삶이 감사의 기도가 되는 그들을 생각한다. 석양의 지는 해를 바라보며 오래전, 친구 테레사가 나에게 가르쳐 준 ‘수우족 노란 종달새의 기도문’을 읊어본다.
바람 속에 당신의 목소리가 있고
당신의 숨결이 세상 만물에게 생명을 줍니다.
나는 당신의 많은 자식들 가운데
작고 힘없는 아이입니다.
내게 당신의 힘과 지혜를 주소서.
내가 늘 아름다움 안에서 걷게 하시고
내 두 눈이 오래도록 석양을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이 만든 물건들을 소중하게 여기도록 하시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내 귀가 늘 열려 있도록 하소서.
당신이 다른 많은 사람에게 가르쳐 준 것들을
나 또한 알게 하시고
당신이 모든 나뭇잎, 모든 돌 틈에 감춰 둔 교훈들을
나 또한 배우게 하소서.
내 형제들보다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나 자신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나로 하여 깨끗한 손, 똑바른 눈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소서.
그래서 저 노을이 지듯이 내 목숨이 사라질 때
내 혼이 부끄럼 없이
당신에게 갈 수 있게 하소서.
PS 1. National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
1 Bowling Green, New York, NY 10004
워싱턴 DC의Smithsonian Instition과 연계된 뮤지엄으로 입장료는 무료이다. 아메리칸 원주민들의 문화, 예술품 전시뿐 아니라, 영화, 공연, 학교 그룹 프로젝트, 강연을 한다. 해밀턴 관세청으로 쓰였던 이 건물은 보자르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로 이층 로탄다는 압권이다.
작가소개
수 조( Sue Cho) :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서양화, 판화를 전공하고, 부르클린 칼리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뉴욕 해리슨 공립 도서관, 코네디컷주 다리엔의 아트리아 갤러리 등지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뉴욕 한국 문화원 그룹전(1986, 2009), 리버사이드갤러리(NJ), Kacal 그룹전에 참가했다. 2020년 K and P Gallery에서 ‘Blooming’이란 타이틀로 온라인 전시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