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e Cho, "We heard Secret Chord to Praise God", 2023, April. Digital Painting
아파트 마당 주변에 추위도 가시기 전 제일 먼저 피어나는 꽃이 있다. 크로커스나 수선화보다도 더 먼저 흰색, 노란색, 자주색, 분홍색으로. 최근 꽃 이름이 Lantern Rose(사순절 장미)라는 것을 알았다. 사순절이 끝나가는 지금까지 그 꽃이 아래로 다소곳이 피어있는 걸 보니 참 이름에 걸맞기도 하다.
문득 지난겨울 크리스마스 즈음이 떠오른다. 힘든 일이 있어 마음을 추스르려고 워싱턴 스퀘어 파크 주변을 걸었다. 깜깜한 가운데 유리창에 환히 비추어진 십자가 상을 마주하게 되었다. 창에 머리를 대고 잠시 기도를 하려 하는데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예수님을 보고 마음이 '쿵' 했다. 그 순간 나의 기도를 멈추고 예수님의 아픔을 비로소 볼 수 있었다. 반사빛으로 건너편 워싱톤 스퀘어 파크 아치에 번쩍거리는 크리스마스트리와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 절묘한 대치이다.
이번 사순절 기간을 보내면서 뉴욕시의 Sacred Space를 찾아보았다. 기도하고, 묵상하고, 찬양하고, 예배드리는 이 공간이 때로는 지역사회의 문화예술과 협업하여, 음악, 미술, 춤과 연극을 통해 위로와 기쁨을 경험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비언어적인 표현들, 소리와 몸짓, 표정을 통해 불러일으키는 정서는 종교와 신념을 떠나서 우리의 마음을 열기만 한다면 깊은 영혼의 울림을 준다. 뉴욕시에 소개하고 싶은 Sacred Space가 많은데, 그중 세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Sue Cho, "Sweet Hour of Prayer", 2023, April. Digital Painting
St. Paul's Chapel(Trinity Church Wall Street 교구), Broadway & Fulton St
1766년 Trinity Church(트리니티 교회)의 아웃리치 채플로 지어진 성공회 교회는, 1776년 대화재 때도, 2001년 9월 11일, 길 건너편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붕괴하었을 때도 기적같이 보존된 교회이다. 그래서 별명이 " the little chapel that stood (굳센 꼬마 교회)"라고 한다. 1789년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하고 예배를 본 역사적 교회이기도 하다. 이민자와 일하는 여성, 노숙인을 위한 서비스에 주력했던 이 교회는 2001년 9-11 이후 구조대를 위한 쉼터를 제공하기도 했다.
세인트 폴 교회는 오후 1시에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음악 프로그램이 있다. 재즈, 파이프 오르간, 바흐, 현대음악을 돌아가면서 한다. 수요일에 하는 Bach at One(March 15-May 3)에 가보았다. 음악을 잘 모르는 내가 음악을 평가하는 기준은 30분이 지나 집에 가고 싶은가이다. 자리가 꽉 차서 한 시간 내내 서서 들으면서 버틴 걸 보면 꽤 좋았던 것 같다. 바흐의 음악은 마음을 정돈하고 평온하게 하는 것 같다. 누가 농담으로 "우리는 신을 찬미하는 바흐의 음악을 듣지만, 신들은 자신들이 놀 때는 모차르트 음악을 듣는다"는 말이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날의 영상을 아래에서 볼 수 있다.
https://trinitywallstreet.org/videos/bach-one-67 ▶
음악회가 끝나고 교회 주변을 돌아보았다. 교회 둘레와 후문 뒤에는 묘지가 있고 길 건너로 Santiago Calatrava의 아름다운 Oculus와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보인다. 교회 옆쪽 벤치에 한동안 앉아 있었다. 이곳에 앉아 있으면 존재하고,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긴 세월을 한순간에 느끼게 해 준다. 한때 이곳에 100년 된 American Sycamore(양버즘나무, 플라타너스)가 서 있었다고 한다. 길 건너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붕괴할 때 날아오는 파편들을 이 나무가 몸으로 막아 작은 교회가 상하지 않고 견디어 낼 수 있었다고 한다. 다음에 올 때는 근처의 Takahashi Bakery에서 녹차 팥빵(Green tea Mochi An Pan)과 반쪽 샌드위치를 미리 사서 이 벤치에 앉아 먹어야겠다고 점을 찍었다.
St Mark Church in-the -Bowery(Stuyvesant St. & 2nd Ave)
이 교회와의 인연은 묘하다. 전에 이스트 빌리지 투어를 하려고 만남의 장소인 이 교회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날 특별히 교회 투어가 있다고 다른 그룹도 모여있었다. 이스트 빌리지 투어는 또 다른 때 하면 되지하고 우연히 이 교회 투어를 하게 되었다. 뉴 암스테르담 총독인 Petrus Stuyvesant(피터 스타이븐슨)이 1660년 가족교회를 세웠던 터에 1795 년 성공회 교회가 세워졌다. 화재 등으로 여러 차례 교회 중축을 해서 한 건물에 여러 양식(Georgian, Greek revival, Egyptian)이 공존하는 유서 깊은 교회이다.
20세기가 되면서 성장하던 이 교회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으로 유지들이 이 동네를 떠나고 예술가들이 주위에 들어오게 되었다. 교회는 시, 영화, 무용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사회와 함께 문화예술에 힘썼다. 1919년에는 칼릴 지브란 (Kahlil Gibran)이 예술 위원으로 이 교회에서 글과 그림을 발표했다. 이곳을 통해 William Carlos Williams를 비롯해 유수한 시인의 강연과 Martha Grahame 등, 예술인들의 공연, 전시가 이루어졌다.
이 교회에 가면 의자가 동그랗게 배치가 되어,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주인공처럼 느끼게 한다. 종려주일 (Palm Sunday)에 이 교회에서 예배를 보게 되었다. 종려나무 가지와 작은 십자가를 나누어 주고 찬양하면서 교회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긴 설교는 없고, 연극을 하듯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이 날의 예전(Liturgy)은 특별하였다. 예배 끝에는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과 죽은 날을 쓴 티셔츠를 교인에게 나누어 주고 마당에 세워 놓은 나무 십자가에 각각 옷을 입히고 추모했다. 음악과 연극, 댄스와 함께하는 Good Friday Blues (성금요일 예배)는 몸으로 표현하는 춤으로, 찬양하는 사람의 표정으로, 리튜얼에서 어떤 말보다 더 깊게 우리의 정서를 건드린다.
세인트 피터 교회(Saint Peter's Church)
여행할 때 눈에 띄는 교회가 있으면 들어가 보곤 한다. Boston에 갔을 때 Old South Church에서 목요일 저녁에 하는 재즈 예배를 본 적이 있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저녁에 긴 설교보다는 간단한 묵상을 하고 재즈 연주를 듣는 시간이 좋았다. 뉴욕시에도 이런 곳이 있나 찾아보니 Saint Peter's Church(세인트 피터 교회)에서 1964년부터 재즈 예배를 시작했다고 한다. 공연장을 연상하는 천장이 높은 예배당에서 피아노 반주자의 찬양과 함께 재즈 뮤지션의 연주는 특별한 선물 같았다.
일 층에는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과 자그마한 기도하는 공간, 네벨슨 채플이 있다. 조각가 루이즈 네벨슨(Loise Nevelson)의 나무 조각으로 만든 작품이 벽에 설치되어 있다. 사람들이 작품을 감상하느라 기도에 집중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태리타운(Tarry town)에 있는 유니온 교회(Union Church of Pocantico Hills)에서는 샤갈과 마티스의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에 시선이 자꾸 가서 예배에 집중할 수 없는 것처럼.
워싱턴 스퀘어에서 만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고통이 내 안에 들어온 후에 이제는 십자가의 의미와 고통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게 되었다. 오래전 오빠가 들어보라고 CD로 구워 주었던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한 번도 듣지 않고 장롱에 넣어 두었었다. 그땐 아마도 "수난"의 어두운 음악으로 내 마음에 부담을 주기가 싫었던 거였을지 모른다. 이번 고난주간에 그 "마태 수난곡"을 여러 번 들었다. 이 곡을 듣고는 종교와는 상관없이 눈물을 안 흘리기가 힘들다고 한다.
이제 고난을 건너뛰지 않고 부활의 아침을 기다린다.
Sue Cho, "Precious Lord Take my Hand", 2023, April, Digital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