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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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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cago Botanic Garden - 다섯 동그라미 쉼터

posted Aug 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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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호수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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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Cho, "By the stream where I spent time with my younger sister", July 2024, Digital Painting

 

 

요즘도 우표가 새로 나오면 눈여겨보고 마음에 드는 우표는 여러 장 사서 간직하기도 한다. 어렸을 때처럼 적극적으로 수집하진 않지만. 편지 보낼 때 이왕이면 색다른 우표를 붙이면, 보내는 사람의 마음 씀이 느껴지는 것 같다. 팬데믹 기간에 "American Gardens" 시리즈, 미국의 아름다운 정원 10곳을 소개하는 우표가 나왔다. 뉴욕의 브루클린 식물원(Brooklyn Botanic Garden), LA의 헌팅턴 라이브러리 식물원(The Huntington), 시카고 식물원(Chicago Botanic Garden), DC에 덤바튼 오크 가든(Dumbarton Oaks) 은 가 본 곳이다. 무엇보다 시카고 식물원이 있어 반가웠다. 시카고 북쪽 서버브인 글렌코(Glencoe)에 위치한 이곳은 20년가량 시카고에 살면서 집에서 멀지 않아 자주 갔던, 추억이 깃들고 위안을 주는 친정집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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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줄 가운데가 시카고 식물원의 일본정원 (Elizabeth Hubert Malott Japanese Garden at Chicago Botanic Garden)

 

 

 

이번 여름은 시카고에 사는 딸이 아기를 낳아 많은 시간을 시카고에서 보냈다. 뉴욕으로 돌아오기 전 손녀와 첫 나들이로 시카고 식물원에 갔다. 오랜 세월, 385에이커나 되는 넓은 시카고 식물원에 오면서 나의 루틴(routine)이 되었던 산책길과 쉼터, 아끼는 비장의 "다섯 동그라미" 산책길을 공개한다.

 

 

 

동그라미 하나: Garden of Cir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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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den of Circle, 4/29/2022

 

 

오래전 남편하고 크게 다투고 나서 화해한다고 시카고 식물원에 온 적이 있다. 무엇 때문에 다투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마음이 많이 상해 있었다. 그때 동그란 정원에 앉아서 한참 있다 보니 어느덧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그 후론 시카고 식물원에 오면 일본 정원과 함께 동그라미 세 군데에서 머물렀다 가는 버릇이 생겼다. 여기와 Council Ring, Spider Island. 2022년 4월 말에 식물원을 다시 찾았을 때 옛 기억을 살려 이 동그라미 세 곳을 돌아보았었다. Garden of Circle은 꽃들로 풍성한 정원이다. 그때도 튤립, 팬지, 폭스 글러브(fox glove)가 환하게 피어있어, 분수와 함께 힘내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일본 정원으로 가는 길에 윤아가 칭얼거려 둘러보니 장미정원에 그늘진 쉼터(Cedar arbor)가 보인다. 윤아는 기저귀가 조금이라도 젖는 것을 싫어해 일단 보채면 기저귀부터 보는데 괜찮은 것 같다. 안아서 격자 틈으로 장미꽃잎 모양의 분수를 보여주었다. 뿜어 나오는 물이 햇살에 흩어지는 걸 윤아도 보았을까? 진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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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dar arbor & Rose petal fountain, 7/29/2024

 

 

일본정원은 세 개의 섬으로 되어있는데 Japanese Garden Bridge를 건너 첫 번째 섬으로 들어선다. 봄에는 진달래, 여름에는 붓꽃과 싸리꽃, 가을 단풍, 겨울 눈으로 계절마다 색이 더해져 즐거움을 주지만, 변함없이 잘 다듬어진 상록수와 정갈한 구조물들은 고즈넉한 아름다움과 평안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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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unto, the Island of the Auspicious Cloud & Japanese garden bridge, 4/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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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aleas in Japanese garden, 5/17/2023

 

 

 

동그라미 둘 : Arbor in Japanese Garden

 

https://www.chicagobotanic.org/walk/tours/japanese_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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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bor(Azumaya), 4/29/2022

 

 

윤아 우유 먹일 시간이 되어 은밀한 곳을 찾다 첫 번째 섬에서 마침 이 쉼터를 만났다. 테이블과 항아리 모양의 스툴이 있어 편히 쉴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기웃거릴 때는 비켜주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아기가 있으니 덜 미안했다. 찬찬히 보니 피라미드 모양의 지붕 안은 우산살처럼 펼쳐있었다. 동그란 창의 격자와 곡선의 나무 장식이 우아하다. 1600년대 교토에 지어진 절, 고다이지의 건축물에서 모양을 따왔다고 한다. 이곳에 머물면서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돌과 모래로 산수풍경을 표현한 dry garden을 음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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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gzag Bridge, 5/17/2023

 

 

두 번째 섬(Island of Clear, Pure Breeze)으로 갈 때는 지그재그 다리(zigzag bridge)를 건너간다. 악한 영은 똑바로만 가기 때문에 이 다리를 건너면 악한 영을 피할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 세 번째 섬(Island of Everlasting Happiness)은 건너갈 수 없고 바라보기만 하는 천국(Paradise)을 상징하는 섬이라고 한다. 서클 하는 길을 천천히 걸어가면 다른 섬들이 보였다 사라졌다 한다.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자연에 몰입하게 한다. 마음이 평화롭다.

 

 

 

동그라미 셋: Pepper pots and vista @English Walled Garden

 

https://www.chicagobotanic.org/walk/tours/english_wal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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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pper pots at English walled garden, 5/17/2023

 

 

벽으로 둘러싸인 영국 정원은 거의 30년쯤 서울서 부모님이 오셨을 때 함께 왔던 곳이다. 영국의 후추 박스 모양과 비슷하다 하여 Pepper pots라 불리는 정자에는 동그랗게 뚫린 창이 있다. 유치원에 다녔던 딸이 여기에 얼굴을 내밀고 사진을 찍었었다. 그 후론 이곳이 가족들이 즐겨 찾는 독사진 장소가 되었다.

 

아래쪽 난간에 열린 곳으로 나오면 "오!"하고 나도 모르게 환성이 나온다. 호수(Great Basin)와 풀밭과 꽃들, 또 멀리 보이는 나무들과 없는 듯 걸려있는 아치 다리, 자연스레 조화되는 모습이 편안하다. 그래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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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 Bridge

 

 

 

동그라미 넷: Council Ring at Evening Island

 

https://www.chicagobotanic.org/downloads/gardenguides/EveningIslandGuide.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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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ncil Ring & Theodore C. Butz Memorial Carillon at Evening Island,4/29/2022

 

 

Council Ring은 일부러 찾지 않으면 우연히 만나기는 힘들다. 이브닝 아일랜드 가는 초입에 왼쪽 언덕길로 올라가면 돌벽돌로 쌓아서 둥그렇게 앉을 수 있게 해 놓은 카운슬 링을 만난다. 4월에 갔을 때는 언덕 아래 들판에 수선화가 가득 피어 있었다. 프레어리 학파로 1900년대 초중반기에 미국 중서부에 큰 영향력을 끼쳤던, 조경건축가, Jens Jenson 이 공원설계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이 카운슬 링을 꼽고 있다고 한다.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 아메리카 원주민의 리튜얼, 둥글게 모여 위아래 없는 평등함을 추구했던 정신이 카운슬 링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이곳에서 동그랗게 모여 노래와 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친목을 다지는 캠프파이어의 장면이 연상된다.

 

https://www.toddhaimanlandscapedesign.com/blog/2009/12/council-ring.html

 

 

 

동그라미 다섯: Spider 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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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der Island, 4/29/2022

 

 

Spider Island는 시카고 식물원의 9개 섬 중 제일 작은 섬이다. 보드워크로 이 작은 섬을 건너가 나선형의 길이 끝나는 곳에 투박하게 다듬어진 화강암이 둥그렇게 에둘러 있다. 여기가 식물원에서 가장 은밀하고 아늑한 공간이다. 물을 바라보며 여기 앉아 있으면 이 너른 식물원에 나만의 코쿤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아마도 Cedar 잎이었던가 향기가 좋은 나뭇잎을, 지니고 있으면 좋다고 어머니가 책갈피에 넣어 주셨던 기억이 난다. 자작나무를 처음 알게 된 곳도 여기다. 겨울에 유독 하얀 나뭇가지에 사람의 눈처럼 여럿이 쳐다보고 있어 으스스했었다. 이곳뿐만 아니라 시카고 식물원에는 자작나무들이 곳곳에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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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ch tree near Regenstein Center,12/25/2023

 

 

다섯 동그라미의 산책길은 여기서 마무리한다. 앞으로도 맺힌 마음을 동그랗게 풀게 하고 고단한 몸을 달래주는 동그라미 길을 계속 찾을 것이다. 그 어디에 있던지.

 

이제 한세대가 훌쩍 지나감을 느낀다. 윤아와 산책하면서 꼭 안고 있으면 윤아가 배로 숨 쉬며 들락날락하는 감촉이 내 배로 느껴지고, 스르르 잠이 들면서 온전히 무게가 느껴질 때, 윤아의 얼굴을 보면 이것이 바로 천국이구나 하는 감동이 온다. 딸은 "윤아가 탯줄로 내게 연결이 되고 또 내가 엄마에게로 연결되니 윤아의 배와 엄마의 배가 하나로 연결이 된다" 고했다. 딸도 윤아를 낳고 "엄마가 나를 이렇게 사랑했겠구나" 하니 눈물이 난다고 한다. 윤아를 보면서 어머니가 나의 해산을 도와주러 먼 미국 땅에 오셔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또 일을 하면서 애를 키울 딸을 생각하니 시카고를 떠나면서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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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Cho, "Mother and baby Yuna", July 2024, Digital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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