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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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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 센트럴 파크

posted Jan 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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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Cho, "Winter in the Cental Park, New York City", 2024, Nov. Digital Painting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코비드로, 연말에는 식중독인지 스토마크 플루(Stomach Flu)인지 알 수 없는 구토와 복통으로 2024년을 맥없이 흘려보내고, 2025년을 맞이했다. Sue Cho가 일찌감치 그려 준 크리스마스카드가 연하장이 되었다.

 

얼마 전 지인이 센트럴파크 울먼 링크(Wollman Rink)에서 어둑할 무렵, 불빛 속에 가족과 함께 스케이트를 탔는데 뉴욕서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고 한다. 나는 이제 넘어지면 뼈가 부러질 것 같아 아예 스케이트 탈 생각조차 못한다고 했더니 넘어지지 않게 잡고 타는 기구도 빌려준다고 한다. 이 그림을 보니 다시 귀가 솔깃해진다.

 

오늘은 기다리던 바로 그날이다. 살짝 눈이 뿌린다고 했는데 지속적으로 내려 눈이 제법 쌓였다. 눈 오는 날 센트럴 파크를 걷고 싶은 바람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뉴욕시에 눈이 많이 오지 않는다. 막상 눈이 온 날도 미끄러져 넘어질까 봐, 또 그 눈이 녹지 않고 있으려면 몹시 추울 텐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늘도 집에 있었더라면 아마 나오지 못했을 텐데 물리치료를 받으러 센트럴 파크 근처에 왔다. 그동안 운동도 못하고 많이 누워 있었는데, 오히려 힙 주변의 통증이 사라지고 물리치료사가 더 이상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때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것이 약인 것 같다. 코비드와 식중독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하나? 센트럴 파크에 갈지 망설였는데, 용기를 얻어 공원으로 직진했다.

 

silver.jpg

Silver

 

 

59가 공원 입구에 마차를 끄는 말들이 쉬고 있었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말들이 파리해 보인다. 한 마부는 말에게 담요를 씌워주고 있다. 말 이름을 물어보았다. Silver라고 한다. "Happy New Year, Sliver. Be Happy and Healthy!"라고 인사를 건넸더니 마부가 씩 웃는다. 마부에게 추워도 말이 마차를 끌 수 있냐고 물어보니 겨울엔 18°F(-8°C) 보다 추우면, 여름엔 90°F(32°C) 보다 더우면 센트럴 파크에 말들은 일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전에 팬데믹 기간 동안 통나무집에 머물면서 경험상 날씨가 19°F 보다 추우면 집으로 돌아오기로 정했는데 그 온도가 비슷해서 놀라웠다.

 

제일 선두에 있는 말의 이름은 Dream이라고 한다. 세 번째 있던 말이 발굽으로 바닥을 치면서 딱딱 소리를 낸다. 마부가 "Stop it!"라고 소리를 지르니 멈춘다. 이름이 Junior라고 한다. 말이 이렇게 말을 잘 듣나? 갑자기 말(word)과 말(horse)에 대한 농담이 떠오른다. 말 바꾸지 마, 말 꼬리 잡지 마, 말 돌리지 마, 말허리 자르지 마… 더 있었던 것 같은데 뭐였더라? … 나중에 마차를 타게 돼서 Sliver, Dream, Junior를 다시 만나면 무척 반가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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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ry Visitor Center & Gift Shop

 

 

저만치 65가 근처 눈에 살포시 덮인 데어리(The Dairy)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겨울동화 속에서 나온 것 같다. 이곳은 칼버트 복스(Calvert Vaux)의 설계로 1871년 완공되었는데 그 후 여러 번의 복구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옴스테드(Fredirick Law Olmstead)와 복스가 처음 데어리를 구상했을 때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곳을 염두에 뒀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그 당시 부정부패로 악명 높았던 트위드(Wiliam M. Tweed) 의원의 압력에 의해 뉴욕시는 많은 비리가 이루어졌고 이곳도 음식점으로 쓰였다고 한다. 한동안 방치도 되었다가 지금은 방문자 안내 센터와 선물가게로 탈바꿈했다. 센트럴 파크의 기념품을 사고 싶다면 이곳에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많다. 남쪽을 바라보는 회랑 발코니에서 보면 Sue Cho의 그림에서 보듯, 울만 링크의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추위에 잠시 따뜻하게 몸을 녹였다 갈까 하다 지체하지 않고 몰로 향했다.

 

20250106_153935.jpg

American Elm Trees in The Mall and Literary Walk,1/06/2025

 

 

몰(The Mall)은 동서로는 공원 중간쯤 위치하고 남북으로 66가에 시작하여 72가 베데스다 테라스(Bethesda Terrace)까지 이어진다. 몰의 남쪽에는 셰익스피어를 비롯해 문학가들의 동상이 있어 문학의 길(Literary Walk)로 불리고 있다. 한때는 무성했지만, 더치 엘름 병(Dutch elm disease)으로 대부분 사라진 미국 느릅나무(American elm)가 이곳에 제일 많이 보존된 곳이고, 여기 나무들이 위대한 나무(Great Tree)로 선정되었다.

https://www.nyculturebeat.com/index.php?mid=NYStory2&category=3963997&document_srl=4074994

 

제멋대로 자유분방하게 휘어진 나뭇가지 위에 하얗게 눈이 쌓이고 길 양옆으로 나무들이 아치를 만드는 바로 이 광경을 크리스마스카드에서 보고 눈이 오는 날 걸어 보고 싶었다. 둘씩, 삼삼오오, 제법 많은 사람들이 눈길에 걸어가면서 사진을 찍는다. 누군가 함께 걸어도 좋겠지만, 혼자 걸어도 충분히 행복한 길이다. 이 길을 걷다 보니 감기 걸리면 어쩌지, 눈길에 넘어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어느덧 사라지고 환한 웃음이 내 눈과 입에 번져나갔다.

 

catalpa tree.jpg

My Friend Tree, Catalpa Tree(개오동 나무) @ 6/12/2024 & 1/06/2025

 

 

베데스다 테라스까지 왔을 때 지하철을 타려고 서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서둘러 가는 길에 반가운 친구 나무를 만났다. 여름에 하트 모양의 큰 잎사귀가 무성하게 달렸을 때, 잎과 바크 사진을 찍어 Plant Net 앱에 물어보았더니 카탈파 나무(Catalpa tree)라고 알려주었다. 한국 이름은 개오동나무라고 한다. 이 나무를 보니 얼마 전 에곤 실레(Egon Schiele)의 "Living Landscapes" 전시회에서 본 글귀가 생각난다. 초상화로 알려졌지만, 풍경화, 특히 가을의 앙상한 나무 그림도 많이 그렸던 실레는 모든 나무는 각자의 얼굴을 갖고 있다고 했다.

 

"Every tree has its face; I recognize its kind of eyes, its kind of arms, its components, its organism. I want to be addressed by everything!"

https://www.neuegalerie.org/exhibitions/schielelandscapes

 

이 나무도 한 번 보면 잊지 못할 얼굴을 가지고 있다. 부엉이를 닮은 모습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투쟁의 훈장이다. 나무의 벌(burl)은 가지가 잘려 나간 곳이나 상처 입은 곳을 보호하기 위해 캘러스를 만들고 때론 주변 조직을 혹처럼 부풀려 병균으로부터 지킨다고 한다. 오늘 내 친구, 카탈파 나무는 다람쥐에게 눈을 피해 도토리를 먹을 수 있는 아늑한 쉼터가 되어준다. 다람쥐는 목이 말랐는지 나뭇가지에 쌓인 눈을 팝시클처럼 핥아먹는다.

 

strawberry field.jpg

Strawberry Field

 

 

센트럴 파크의 삶은 추위에도 계속된다. 스트로베리 필드에 이매진 모자이크 앞에선 언제나 그렇듯 비틀스의 노래가 연주되고 있었다. 거리의 시인이 입구 쪽에 외로이 앉아 있었다. 전에 포틀랜드 여행 중에 파웰즈(Powell's) 책방 앞에서도 이 같은 시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즉석에서 손님을 보고 직접 타이프라이터로 톡톡 쳐서 써주는 시는 조금 비싸서, 유리병 속에 이미 써 놓은 시를 하나 골라 5불인가 주고 산 적이 있다. 버리지 않고 서랍 어딘가에 보관해 놓은 것 같은데... 집에 와서 찾아보니 책상 왼쪽 서랍에 초록색 종이가 접혀 아직 있었다. "rather than fear"가 후렴구처럼 나온다. 아 바로 이 구절이었지. 2016년 여름 그 시인이 나에게 말을 건다. 두려워하지 말고, 삶의 경이로움을 많이 경험하는 2025년이 되라고.

홍영혜_프로필.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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