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이별할 때 Time to Say Goodbye
“나는 니가 너무 마음에 들어. 니가 내 집이 되었으면 좋겠어. 내가 잘 가꾸어 줄께.”
5년 전 우리 아파트 건물 앞에 서서 우리 유니트를 바라 보면서 말했었다. 그 당시 읽고 있었던 책, 김상운의 “왓칭 : 신이 부리는 요술”을 읽다가 영감을 얻었는지, 간절한 마음을 그렇게 표현해 보았다.
뉴욕에 와서 5개월 째 마음에 드는 학교 하우징이 정해지지 않아 이삿짐을 못 풀고 트렁크가방으로 기숙사와 같은 생활을 버티고 있었다. 시카고에서 남편이 20년간 하루에 세 시간을 출퇴근으로 시간을 보내, 뉴욕에 오면 일터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자 굳게 마음먹었었다. 학교하우징이 귀해서 힘들더라도 처음에 나올 때까지 버텨야지 다른 곳으로 집을 구해 이사 나가면 나중에 돌아오기는 힘들었다.
우리의 희망사항은
“리버사이드 경치가 있는 곳, 아들과 함께 지내기 때문에 목욕탕이 2개, 해가 잘 들고 환한 곳, 부엌과 목욕탕에 창이 있는 곳, 그리고 약간 욕심을 내면 조지 워싱턴 브리지도 좀 보였으면.”
위의 것들이 단지 희망사항이었는데 이 아파트를 보았을 때 내가 원하던 모든 조건에 다 맞았다. 희한하다. 그동안 몇 개 원하던 학교 아파트들도 위의 조건들을 갖추지 못했는데 우리가 2순위에 있었기 때문에 번번이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집이 내 집이 되었다. 이 곳에서 오래오래 살 줄 알았는데…. 5년 동안 정들었던 리버사이드 아파트와 작별할 시간이 가까이 왔다. 모든 것의 진정한 가치는 이별할 때 깨닫게 되는 것일까. 맨해튼에서 이런 곳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갓 이사 와서는 잘 몰랐었다. 거실에 창이 왜 하나만 있지 좀 더 크고 두개 있었으면 좋을 텐데… 침실에 화이어 이스케이프도 눈에 거슬리고… 그런 불평들을 늘어놓았었다.
이 곳을 떠날 것을 안 다음부터 하루는 소파에 누워 온통 들어오는 하늘을 한참 보면서 무심하게 흘러가는 구름도 보고, 또 하루는 창가에서 서서 때로는 upstate 쪽으로, 때로는 바다 쪽으로 흘러가는 허드슨 강물을 보고 있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오래 전 샌디에이고를 떠나 올 무렵, 차를 타고 매일 델마비치에 가서 해지는 광경을 보고 왔던 것처럼.
지금 이 순간 창밖을 내다보니, 나와 동무를 해주곤 하던 빨간 배가 창문 앞에 와있다. 배 앞 부분에 있는 구조물이 나에겐 조지 워싱턴 브리지 아래 작은 빨간 등대를 상기시켜, 내가 “빨간 등대”라고 별명을 붙여준 배다. 가끔 와 있던 빨간 등대가 요즘은 부쩍 들어 창문 밖 강가에서 자주 정박해있다. 빨간 등대도 나와 헤어지기 섭섭한가? 아니면 그동안 그렇게 와 있었는데 내가 눈길을 주지 않았던가?
이 창문가에서 “여보! 빨리 카메라!”를 많이도 외친 것 같다. 시시각각 변하는 저녁노을을 찍느라고, 지나가는 배를 사진에 담느라고. 저녁노을처럼 아름다운 것들이 또 있을까?
“영원, 그것은
하나로 뒤섞인 태양과 바다.
온 우주를 돌고 돌아서
드디어 찾았네.”
시인 랭보는 바다에 지는 태양에서 영원을 보았다고 노래하였다.
저녁노을과 허드슨 강물이 어울러져서 펼쳐지는 광경은 온 우주에 대한 경이로움(Awe), 나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무한한 존재 앞에 지극히 작은 나, 그리고 내가 무엇이길래 감히 이런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나 생각하게 한다.
이 집에게 소리 내어 감사한 마음을 전해 본다.
“그간 너무 고마왔어, 니 덕분에 힘들었던 시간들을 견디는데 얼마나 위안이 되었던지 그리고 기쁨이 되었던지. 길 건너 리버사이드 공원 산책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집 앞 은행나무 가로수 길… 그리고 눈에 거슬리던 화이어 이스케이프까지 오드리 헵번의 문리버를 생각하면서 꿈을 꾸게 되었지. 이사 가기 전에 거기서 노래를 불러야 할텐데… 함께하는 동안 행복했어.”
PS. 이제 뉴욕변두리에서 뉴욕 중심가로 간다. 새로운 곳도 나에게 또 다른 기쁨과 삶의 경험을 주리라 위로해본다. 어떤 도전이 기다리고 있을지 내 자신도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