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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정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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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백련재 정원일기 1 - 녹우당 옆집 백련재

posted Aug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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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백련재 정원일기 1 - 녹우당 옆집 백련재 

 

 

서울에서 고속도로를 타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다. 경기도에서 충청도로 넘어오자 차량 수가 줄었다. 충청도에서 전라도로 내려오면서 하늘 폭이 넓어졌다. 파란 하늘에 흰구름도 그만큼 옆으로 나란히 나란히 몽실몽실 피어올랐다. 뭉게구름이 이 정도는 돼야지, 하는 것처럼. 목포쯤 오자 중앙분리대에 배롱나무 분홍꽃이 도열해 있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해남 녹우당길로 접어들자 오른쪽 가로수가 오직 배롱나무들이었다. 여섯 시간 운전 끝에 결국은 그들이 나를 또 울렸다.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 지나 땅끝순례문학관 위 ‘백련재 문학의 집’에서 길이 끝났다. 

2021년 4기 입주작가가 된 내가 8월 10일부터 12월까지 머물 집이다.

 

입소시각인 오후 네 시, 입주작가 셋 중 둘이 도착했다. 

백련재의 방은 총 8개.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를 본따 ‘水(수), 松(송), 石(석), 蘭(난), 竹(죽), 梅(매)와 다용도실과 月(월). 그중 빈 방은 수, 매, 죽. 

도착 전에 내 마음은 죽실을 원했다. 그런데 막상 방을 둘러보니 건물 맨 끝 수실만 빼고 전부 창문이 없었다.(씽크대 위에 있는 창은 손바닥만했다.) 원래는 제비뽑기를 해서 방 배정을 하는데 먼저 온 둘이 결정하면 됐다. 나는 창이 있는 방을 원했다. 하지만 선택은 공정해야 했다. 감사하게도 먼저 온 작가님이 죽실을 선택해 주었다. 한 차 가득한 짐을 툇마루 거쳐 방까지 날랐다. 6평 방 안에는 화장실, 옷장, 책상과 의자, 냉장고, 씽크대, 전기렌지, 전기포트, 전기밥솥, 상 등 필요한 살림이 거의 있었다.

나는 맨 먼저 방문가에 있던 책상을 남서쪽 창가로 옮겼다. 책상 위를 정리하고 마당으로 나가보았다. 오호~ 정원과 텃밭이 있었다. 거기 있던 주황 메리골드와 분홍 배롱꽃에게 양해를 구하고 손으로 꺾으면 아플까봐 칼로 싹둑 잘라와 방안 꽃병에 꽂았다. 라디오 주파수를 잡아 방밖으로 소리가 나가지 않을 만큼으로 음량을 조정했다.

 

낯선 곳에서의 첫 날 밤은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촛불도 켜고 스탠드도 켜놓으니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을 뒤척이다 소등을 했는데 이번에는 보안시설장비의 형광불빛이 너무 밝았고 인터넷 공유기의 파란 불빛이 어둠속에서 심란하게 흔들렸다. 그 불안한 전자기파가 알게 모르게 밤새 잠든 사람 몸에 얼마나 무리를 줄까? 전국을 누비고 다니던 내가 옆방에 작가들도 있는데 뭐가 그리 무섭다고 결국 새벽 세 시에 깨고 말았다. 동트기를 기다렸다. 할 일이 있었다.

 

먼저 백련재 앞 땅끝순례문학관 외부를 돌아보았다. 지난 도보순례 때 생가를 방문했던 고정희 시인과 김남주 시인의 시비가 있었다. 그 옆 배롱나무 뒤로는 만화 <캔디>에 나오는 안소니의 정원처럼 색색의 장미가 가득했다. 담쟁이 덩굴로 뒤덮인 석벽 내부엔 <예쁜 손 글씨 수상작 특별전>을 하고 있었고 연못 위 누각엔 북카페가 있었다. 집필실과 책은 가까울수록 좋다. 책을 읽다 바라볼 정원과 그 뒤로 펼쳐진 고요한 마을 농지와 그 모든 것을 둘러싼 덕음산 자락까지 있으니 이보다 더 쾌적할 수 있으랴. 

새벽 산책을 마치고 백련재로 들어가는 길에서 본 은행나무에게로 갔다. 네 그루의 은행나무 중 오른쪽 둘은 연리근처럼 두 줄기씩이 바로 옆에서 났는데, 그 중 한 그루에 넝쿨이 타고 올라가는 걸 전날 눈여겨 봐두었다. 그 나무만 벌써 노란 잎으로 물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넝쿨 때문에 시들고 있었나 보다. 나는 차에서 낫과 톱을 꺼내 은행나무 구출작업에 돌입했다. 지독한 가시나무와 억센 넝쿨이 은행나무를 타고 감아 올라가고 있었다. 옷을 흠뻑 적신 땀이 눈으로 들어가 따가워서 눈을 못 뜰 때까지 작업을 했다. 넝쿨에서 벗어난 은행나무가 홀가분해 보였다. 그 외 백련재 안팎의 무궁화, 배롱나무, 동백나무 등 정원의 나무들은 깔끔하게 조경이 되어있어 손댈 데가 없었다. 

 

빨래를 해서 널고는 해남우체국까지 4km쯤 걸어갔다. 목사동우체국장에게 엽서를 부치기 위해서였다. 배롱꽃과 코스모스가 한창인 녹우당길 옆 초록논에 백합처럼 백로가 얼추 세어봐도 50여 마리나 떼지어 있었다. 청정함이 피어나는 장관이었다. 9시 넘어 출발했더니 8월의 햇살이 따가웠다. 게다가 몸자보도 없이 걷는 고산로는 인도가 없어 위험했다. 몸자보가 없으면 마음이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아무 의미 없이 걷는 게 어쩐지 아까웠다. 돌아올 때는 버스로 연동까지 왔다. 시골 버스 기사님들은 대부분 설명을 친절히 잘 해 주신다. 

 

해남의 하늘은 넓고 구름은 양감 있다. 

바람에 모양이 있다면 구름이 아닐까. 

사랑에도 모양이 있다면 밥일까 가방일까 신발일까, 아니면 방일까. 

나는 텃밭이 주는 사랑의 모양인 깻잎 다섯 장과 고추 다섯 개를 따먹었다. 

 

그리고는 방 정리를 제대로 했다. 

남서쪽 창을 보던 책상을 동남쪽 방문쪽으로 돌리니 내 시선에서 옷장과 벽으로 대문이 가려지고 좌우로 정원이 들어왔다. 에어컨을 쓰지 않으니 방충망 친 채 하루종일 방문을 열어놓아야 하는데 외부 시선을 통제할 수 있어야 내부에서 편안하다. 

검정테이프를 구해서 보안시설장비와 공유기의 불빛을 막았다. TV는 시청하지 않으니 코드를 빼버렸다. 사람 하나 사는데 얼마나 많은 전선이 필요한지, 대체 이 많은 전기는 어디서 끌어다 쓰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행히 백련재 앞 땅끝순례문학관에는 커다란 태양광 발전시설이 있다. 

 

환경은 자연조건이 아닌 이상 바꿀 수 있다. 한 달을 살거나 다섯 달을 살거나 공부하고 먹고  자기 좋은 방을 만들어야 한다. 어질러진 것을 정리하고 비울 건 비워내고 간소하되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 소박은 궁핍이 아니다. 비움은 없어서 못 쓰는 게 아니라 최소한으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다행히 가구가 많지 않아서 이렇게 저렇게 배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잠자리도 이리저리 바꿔본다. 바꾸다 보면 우리몸이 편안한 자리를 자연스럽게 느낀다. 동물은 누구나 감각기능이 있다. 그 감각기능을 계발하느냐 무시하느냐는 자신의 선택이다.  

접착 자국이 남은 옷장 옆 면을 달력뒷면과 영화포스터와 엽서들로 채웠다. 손수건은 작은 커튼이 되었고, 요가타월로 TV브라운관을 씌웠다. 비움은 자리이동으로 채움이 된다. 

흠~ 마지막으로 조명과 향을 추가하면 좋은데 거기까진 아는 바가 없다. 햇빛과 달빛에 뽀송뽀송한 이부자리 냄새나 막 씻은 살내음 정도면 족하지 않겠나.  

 

방 정리를 끝내고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 해설을 들었다. 내가 엄청난 지역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국문학과 원림(園林)문화의 최고봉인 고산 윤선도. 효종의 사부였던 그에게 왕이 하사했던 수원 집을 이건하여 복원한 녹우당(綠雨堂) 앞에는 500년 된 은행나무가 있었다. 높이 23m에 둘레가 5.9m. 넷이 손을 맞잡아야 한아름이 될 나무를 만져주며 언젠가 안아주겠다 마음을 전했다. 녹우당 당호 유래설로 ‘녹우당 앞의 은행나무 잎이 바람이 불면 비처럼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와 ‘집 뒤 대나무 숲에서 부는 바람을 표현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가을이 되면 녹우당 앞에는 노란 비가 내리겠지. 사당 쪽으로 돌아가면 300년 된 24m 해송도 있다. 수피가 근엄했다. 

 

나흘째 이른 아침, 이슬비가 살짝 내렸다. 비가 오면 할 일이 있다. 차에서 연장을 챙겨 텃밭으로 갔다. 깻잎과 대파 사이 두 군데 빈 밭을 맸다. 낫과 조선호미는 써봤는데 삼각호미는 처음이었다. 잡초맬 때 쓰는 거라는 설명을 듣고 사봤는데, 무경운 농법을 써보려고 낫질한 잡초를 긁어내는 데 좋았다. 뒤쪽 호박덩굴을 쳐내니 보이지 않던 배롱나무와 사철나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흙과 풀과 나무와 함께하는 노동은 몸과 정신을 깨운다. 그 살아있는 자연의 기운은 하루종일 앉아서 글만 쓰는 내게 정(靜)과 동(動)의 균형을 맞춰준다. 걷기에서 얻는 진취적인 생동감과는 다른 우주만물의 섭리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냄새를 땅에서 맡는다. 

 

노동 후에 보니 동남쪽 끝 방 앞 툇마루에 고양이들이 다섯 마리 모여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노란 얼룩 고양이는 따로 앉아있고 누워있는 검정 얼룩 고양이 배 위로 세 마리 아기 고양이들이 젖을 빨고 있었다. 

그날 점심 때 특별식 찜보리굴비를 꺼냈다. 젖먹이는 어미 고양이를 위해서였다. 밥을 먹기 시작하자 고양이들이 방 앞에 모여들었다. 생선 대가리와 뼈와 꼬리를 남겨 고양이 밥그릇에 가져다 주었다. 그날 저녁 식사 후 크래커에 크림치즈와 자두를 올려 먹고 있는데 노란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내 신발 위에 앉아 툇마루 위로 빼꼼히 날 쳐다보고 있었다. 벌써 내 방 소문이 났나 보다. 

 

닷새째 날은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녹우당 옆집 백련재니 같은 초록비일까? 만물을 푸르게하는 녹우를 맞고 있는 텃밭에서 가지 열매 하나와 꽃 한 송이를 따왔다. 도라지꽃과 비슷하고 좀 작은 연보라 가지꽃도 꽃잎이 원통형이었다. 보라가지와 흑토마토, 노란피망, 주황맛살, 초록대파를 현미유에 볶다가 달걀까지 풀어 익힌다. 따뜻하면 유산균이 죽는지 모르겠지만 플레인 요거트를 섞어 먹으면 물컹물컹 부드럽고 달콤하다. 

 

나는 와인에 대해 모르듯이 커피에 관해서도 문외한이다. 하지만 비오는 아침에는 커피향을 참을 수 없다. 입소 전 가장 망설였던 게 커피메이커 세트를 가져오냐 마느냐였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가진 막내동생이 오래 전에 사준 핸드글라인더, 드립포트와 드립서버, 주둥이가 가늘고 긴 주전자, 종이필터까지 다 들고오려니 가뜩이나 차가 터질 것 같은 짐에 욕심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과감히 포기하고 드립백 커피나 믹스커피로 대체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커피를 마실 때는 마시기 전 의식이 중요하다. 물을 끓이고, 원두는 못 갈아도 봉지를 뜯었을 때 최소한 향은 느낄 수 있는 커피가루를 준비하고, 92도의 가는 물줄기로 쪼로록 따르며 우려내는 시간 동안 이미 나는 커피의 반을 마신다. 그래서 막상 몇 모금 마시고 나면 번번이 남겨서 버린다. 빗소리와 커피향은 빗방울 전주곡을 쓸 당시의 쇼팽과 상드처럼 아주 잘 어울린다. 그때는 음악도 사족이다. (물론 육체노동 후 믹스커피의 꿀맛은 또 다른 차원이다.)  

 

비가 그치자, 창 옆에서 고양이 소리가 난다. 글을 쓰다 말고 몸을 일으켜 보니 어미 고양이가 입에 뭘 물고 있다. 아비 고양이가 다가왔지만 완강히 주지 않는다. 잠시 후에 아기 고양이 둘이 오니 음식을 내려놓는다. 늦게 온 노랑 아가는 어미 턱을 핥는다. 책만 읽던 가난한 가장이 등짐지러 나가는 순간처럼 돌봄이 선택에서 의무로 기우뚱한다.

하지만 동시에 원주에서 내 맘대로 ‘순둥이’라고 이름 붙이고 두 달간 매일 사료를 밥에 끼얹어 주던 할머니네 개가 떠올랐다. 할머니야 말이 통하니 이러저러해서 내가 떠난다고 인사나 할 수 있지, 아무 것도 모르는 개는 매일 와서 인사하고 밥 주던 내가 어느 날부터 오지 않으면 얼마나 기다리겠는가. 그런 못할 짓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한편으로 고양이는 쌀쌀맞으니 개처럼 정에 굶주리진 않겠지, 그러니 떠나고나면 내가 맘 아프지, 그들은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 심리를 모르니……. 

정드는 건 자연스런 일인가? 왜 때되면 밥 먹는 것처럼 이리 빈번한가. 왜 만나는 모든 생물에  이리 마음이 기우나. 비워야 하느니라, 비워야. 아무리 주문을 걸어도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그날 오후 갑작스러운 방문이 있었다. 

입소한 지 고작 닷새째, 내가 해남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는데 서울에서 정미이모과 모친이 오신 것이었다. 정미이모와는 팽목항에서 만난 6년 전 이후로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었는데 ‘조카~ 세월을 아니?’ 헌법전문 읽기에 친구 몇을 소개해 준 계기로 최근 연락이 잦았다. 그러다 내가 전국을 걸어다니는 걸 아니까 어머님 여행지를 소개해 달라고 했고, 마침 내가 해남에 있다니 온 것이었다. 정미이모는 나보다 백배는 더 낯을 가린다. 외박도 못해서 당일치기 아니면 여행도 못 한다. 그런데 어머니를 위해서 이 먼 해남까지 온 것이었다. ‘어머니와 효도여행’이라면 내게는 여생 불가능한 일 아닌가. 버선발로 마중나갈 기세였다. 

두 분과 맛있는 식사를 하고 (고양이 줄 생선을 챙겨서) 근처 민박촌을 소개해 드리고 일지암에 다녀왔다. 덕분에 보고싶던 강아지 금륜이를 다시 만났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두 분은 다시 서울로 올라가시고, 나는 그 길로 해남보건소에 갔다. 그리고 입소조건이었던 코로나19 PCR 검사를 다시 받았다. 방문객 한 분은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완료, 한 분은 1차 접종자였지만 만약을 위한 최선의 대처였다. 나 하나 때문에 공동체에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없이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그날 밤에 알았다. 그림자같이 조용하던 정미이모가 갑자기 해남에 온 진짜 이유를. 어머니를 위한 여행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전날 아침 세월호 참사 특검 CCTV 관련 발표를 보고 오열하던 그이는 갑자기 떠나온 것이었다. 그래서 하늘은 그이를 위로하기 위해 그날 저녁 일지암에서 노을빛 아래 팽목항을 보게 하신 거였다. 예정이나 계획은 하나도 없던 하루였다. 

고통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죽을 것 같으면 살기 위해 뭐든 하게 마련이다. 그것이 인간의 생명력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려는 몸부림을 하늘은 모른 척하지 않으신다. 

 

24시간 후 예상대로 음성결과가 나왔다. 

비로소 방 밖으로 나온 나는 피부과의원으로 향했다. 전날 아침부터 생긴 발목에서 다리까지 발진과 가려움증이 심해지고 있었다. 의사는 어디 갔다 왔냐고 묻더니 풀벌레 바이러스에 의한 알레르기로 접촉성 피부염이라고 했다. 풀밭엔 들어간 적도 없는데……. 주사를 맞고 닷새치 약과 바르는 약을 타왔다. 하루종일 이부자리를 마당 빨래줄에 널고 옷가지들을 세탁해 햇빛에 말렸다. 

  

정원과 텃밭 생활이 꿈인데 풀벌레 알레르기라니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성격이나 적응력은 조금씩 바꿀 수 있어도 체질은 조금 어렵다. 하지만 없던 알레르기가 생긴 것이니 언젠간 사라지겠지. 세상에 변함없는 건 없고 체질도 달라지니까. 강해질 나를 기대한다.        

 

그날밤 11시쯤, 전기 아끼느라 불도 안 켜고 들어간 욕실에서 젖은 슬리퍼를 신는 순간, 무언가가 오른쪽 엄지 옆 둘째발가락 사이를 꽉 물었다. 새끼지네였다. 덕음산 자락에 지어진 집이니 자연의 왕성한 번식력을 인간이 어찌 다 막을꼬. 발가락이 쿡쿡 쑤시기 시작했다. 왈칵 공포가 밀려들었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으~ 흐르는 물에 비누칠해 씻고 얼음찜질을 했더니 통증이 점점 가라앉았다. 불도 못 끈 채 잠자리에 누웠는데 베개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별이 뜨네 눈물 지네’ 

 

다음 날 아침, 시설관리자 분들에게 말했더니 방 주변에 풀벌레 퇴치약을 꼼꼼하게 뿌려주셨다. 나 때문에 지네는 물론 다른 풀벌레들도 죽는구나, 미안했다. 

 

오전 내내 까마귀가 울길래 소리를 좇아 나가 보았다. 집 앞으로 난 길을 따라 왼쪽으로 올라갔다. 공사길이 끝나고 풀이 무성한 길이 나오자 돌아섰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채라 풀을 보니 겁이 났다. 한두 발 걷다가 미끄러운 흙에 주르륵 자빠졌다. 다행히 휴대폰과 카메라 든 양손을 치켜올려 기계가 망가지진 않았다. “일진이 사납구만.”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반 년쯤 전부터 앞축이 벌어진 슬리퍼가 절반쯤 찢어져 있었다. 동생이 코타키나발루에서 사다준 거였는데 이 정도면 버릴 때도 됐지 싶었다. 그때까지 새 걸 사지 않고 버틴 내가 기특했다.  

 

그날 밤, 자정 즈음 억수같은 비가 내렸다. 큰맘먹고 용기내어 방문을 열어보았다. 벌써 툇마루에 앉아있는 이들이 있었다. 나도 곡성 산내음 발효차를 우려서 툇마루에 나가 앉았다. 옆에 있으되 상관하지 않는 거리와 침묵은 빗소리와 잘 어우러져 단단한 마루처럼 안정적이었다. 어둠 속에서 좌악좌악 내리는 비를 보며 소리를 듣던 그때 깨달음이 왔다. 아~ 내가 걱정하던 그 독한 약이 이 비에 다 씻겨내려가겠구나. 하늘은 나보다 풀벌레를 더 사랑하시는구나, 아니 모든 만물을 동등하게 사랑하시는구나. 

 

시련은 멈추지 않았다. 

다음 날 새벽 두 시반, 어지러워서 깼다. 세 시부터 토하기 시작했다. 원인은 저녁에 먹은 두부.  우체국 가던 날 지역경제 살리겠다고 대기업제품 대신 국산콩으로 만든 로컬푸드를 샀었다. 유통기한 마지막 날에 김치찌개를 끓였는데 살짝 이상한 걸 무시하고 먹었더니 탈이 난 것이다. 유전자조작된 콩으로 만들어 방부제 그득한 두부를 먹으면 이렇게 빨리 해로움이 드러나진 않을 것이다. 이상있는 음식을 바로 거부하는 몸이 신통했다. 서서히 독이 쌓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괴롭더라도 신속하게 배출되는 것이 낫다. 체질, 식습관, 사고방식… 대체 어디까지 게워내야 내 몸이 비워질까? 해가 뜰 때까지 토사곽란을 했다. 몸에서 더 이상 쏟아낼 게 없는 여섯 시에 잠이 들었다. 

하루종일 아파서 잠에 취해있다가 가끔 정신이 들면 피부약을 먹기 위해 매실차와 죽을 간신히 먹었다. 창밖으로 비가 내리고 햇빛이 비치는 걸 쳐다보며 멍하니 누워있는데 갑자기 서울 광화문에 있는 월드바리스타 챔피언쉽에서 우승한 호주 바리스타 이름의 카페에서 만든 아이스카페라테가 마시고 싶었다. 찬 것도 커피도 내겐 건강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건강해지고 싶다는 신호였다. 이젠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니 올해 그걸 마실 일은 없다. 그리고 난 살던 생활공간에서 너무 멀리 와버렸다. 아는 병은 두렵지 않다. 고통이 나를 휩쓸고 지나가길 기다렸다. 

 

또 아침이 되었다. 고양이들이 장난으로 댓돌 위 내 신발들을 어지럽혀 놓았다. 이부자리를 마당에 널고 텃밭에서 가지와 고추와 깻잎을 따다가 간단한 아침식사를 한다. 꽃병에 꽃도 갈았다. 진땀에 절은 몸을 씻고 책상 앞에 앉는다. 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주 오랜만에 앓고 난 몸은 새로 무장을 한듯 가뿐하다.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명당이라는 고산 윤선도의 녹우당, 그 왼편에 있는 백련재. 

정읍, 별담리, 다시 정읍 거쳐 곡성 그리고 해남이 나의 네 번째 정원이다. 여기서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지낼 것이다. 345km 올여름 18번 국도 도보순례의 출발지였던 해남이 나를 불러준 것은 운명이다. 이 땅에서 내가 할 일이 분명히 있으리라.

 

일곱째별-프로필이미지_그림.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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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꼬마 정읍댁의 정원일기 4 - 최소한으로 살기

    꼬마 정읍댁의 정원일기 4 - 최소한으로 살기 지난해 끝자락, 웬델 베리의 <포트윌리엄의 이발사>라는 절판된 책을 빌려 읽었다. 주인공은 고아로 신학을 공부하다 이발사가 되어 고향 강변 오두막을 빌려 산다. 마을 사람들은 외딴곳에 사는 그를 일부러 찾...
    Date2021.03.01 Views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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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꼬마 정읍댁의 정원일기 3 - 설원의 눈, 물

    꼬마 정읍댁의 정원일기 3 - 설원의 눈, 물 차 안은 울음으로 가득 찼다. 고이고 고이다 기어이 터져버린 눈물이었다. 마음껏 소리 내 울 수 있는 ‘자기만의 방’ 한 칸을 찾아 떠나는 길. 얼어붙은 마음은 겨울바다에서도 수리가 끝난 오층석탑 ...
    Date2021.01.31 Views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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