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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정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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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백련재 정원일기 2 - 식식주의묘(食植住衣猫)

posted Sep 2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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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백련재 정원일기 2 - 식식주의(食植住衣猫)

 

 

8월의 백련재 텃밭은 나를 먹여 살렸다. 

고추와 깻잎은 늦여름 내내 따다 먹을 수 있었고, 어느 날은 낫으로 잡초를 베다 둥근 호박이 툭 떨어져서 호박전과 된장국을 해 먹었다. 호우주의보 다음 날은 들깻단을 모조리 뽑은 후 깻잎을 양념간장에 재두었다가 먹었다. 유기농매장에서 서너 뿌리에 2천 원 남짓 하는 대파도 지천이었다. 

 

해남에 온 지 두 주된 첫 월요 도보순례 후 농협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보았다. 보름에 한 번 정도 장을 본다. 15개들이 달걀을 사기 때문이다. 달걀, 두부, 우유, 치즈, 버터, 요거트, 주스, 사과, 떡국떡, 냉동만두, 훈제오리고기……. 큰고모가 떨어지지 않게 사다 놓으라고 신신당부하신 것들을 사서 올려놓고 계산대를 유심히 쳐다보는데 현금카드 잔고가 부족할 것 같았다. 머스터드소스와 스파게티면을 취소했다. 해남에 있는 동안 신용카드를 쓰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얼마를 쓰는지 가늠도 못하고 긁어대는 신용카드는 다음 달 결제일이 돌아오면 잔고를 채우느라 불안케 하고 출금과 동시에 텅빈 통장은 또다시 신용카드를 쓰게 한다. 빈곤감의 악순환을 끊고자 십 년 전쯤 한 일 년간 시도했다가 실패했는데 단기간이기에 재시도해 보기로 했다. 투명한 상거래가 보장된다면 현금카드보다 현금만 쓰는 게 훨씬 더 절약하는 방법이다.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돈과 카드 상의 돈은 지출 시 현격한 차이가 있다.  

 

올 초, 정읍에 내려오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내일배움카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은행현금카드를 새로 만들어야 했다. 농협과 국민 중 택일이었는데 지역엔 농협은행이 많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기존 주거래은행 카드를 쓰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대형마트를 멀리하던 내가 포인트제도 때문에 농협마트를 이용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산업의 톱니바퀴란 그런 식으로 연결돼 있다. 요양보호사 급여는 농협은행으로 입금되었다. 첫 달치는 선물비와 관리비로, 나머지 한 달반 치는 두 주간의 도보순례비용으로 전부 써버렸다. 방송 일을 할 때는 가끔 벌어도 제작기간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나름 고소득이었다. 그러나 순수문학을 하면서는 독립적으로 먹고 살 길이 요원했다. 최저시급 받는 요양보호사를 해 보고는 내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았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간 몸에 밴 지출 규모를 줄이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사는 훈련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날 전화가 왔다. 사진학교 오 선생님이셨다. 잘 지내냐고, 잘 먹고있냐고, 아픈 덴 없냐고, 필요한 건 없냐고. 나는 망설임 없이 과일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구체적으로 복숭아, 포도, 사과. 그날 마트에서 가장 많이 망설였던 품목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오후, 백련재 수실로 배달이 왔다. 해남읍 과일가게에서 특상품 영천 복숭아 한 상자와 지리산 고랭지 포도 한 상자. 오 선생님이 보내주신 거였다. 밤에 잠자리에 누웠는데 포도향이 방안 가득해서 행복했다. 그 이틀 후에는 소포가 하나 왔다. 정미이모 모친이 손수 만드신 누룽지 한 통. 밥을 해서 꾹꾹 눌리고 말리셨을 정성이 아련했다. 누룽지는 도보순례 때 아침 주식이었다. 추억이 물씬물씬 솟아올랐다. 큰고모가 챙겨주신 찜보리굴비, 레토르트(조리가공밀봉)식품들이 다 떨어져갈 무렵 생각지도 못한 도움의 손길이 왔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해 도와주신 아합이나 사르밧 과부처럼 굶주린 적이 없었다. 쌀 한 컵에 잡곡 한 주먹 넣고 밥을 하면 이틀은 먹는다. 청명이 6월 말에 퍼 준 쌀이 떨어질 무렵 한국방송작가협회에서 해마다 추석이면 보내주는 참 맛있는 햅쌀 10kg을 받았다. 잡곡을 섞으면 일 년도 먹을 수 있다. 김치와 달걀, 두부 외엔 반찬도 많이 필요 없고 식빵과 과일 외엔 간식을 그다지 하지 않으니 식비가 별로 들지 않는다. 

마침 피부 알레르기 때문에 순한 세제를 사러 해남의 유기농매장을 찾아 가보니 제품가격이 일반매장과 별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저렴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지 않은 협동조합의 미덕이었다. 나는 다시 ‘좋은 것을 적게 먹고 생산자와 땅을 살리자’는 취지에 부합하는 삶을 이어가기로 한다.   

 

육체노동이 거의 없으니 오전 11시 전후와 오후 6시 전후로 하루 두 끼만 먹어도 충분하다. 아침에는 누룽지탕이나 식물성버터에 구운 식빵에 치즈 얹고 딸기잼 발라 커피믹스에 물과 우유를 반반 섞은 데다 삶거나 부친 달걀까지 있으면 세상 흐뭇하고, 저녁에는 밥과 김치에 반찬 한두 가지에 국이나 찌개가 있으면 금상첨화다.   

 

비가 온 다음 날인 8월의 마지막 토요일, 새벽부터 잡초를 매고 배롱나무를 넝쿨과 가시나무로부터 구출해 주었다. 오전에 텃밭에다 여름참맛적치마 상추씨와 무씨를 뿌렸다. 상추씨는 흩뿌리고 무씨앗은 작년 경험을 바탕으로 고랑을 판 후 10cm 간격으로 서너 알씩 넣고 흙을 덮었다. 이틀이 지나자 싹이 하나둘 나왔다. 가을 내내 그것들이 자라면서 기쁘게 해 주고 먹여주면서 고맙게 해 줄 걸 기대한다.  

 

8월 말부터 코로나19의 지역확산세가 위험하여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과 땅끝순례문학관이 임시휴관에 들어갔다. 백련재 역시 입주작가 외 출입금지가 되었다. 고립이었다. 생활이 달라진 건 없는데 괜히 위축이 되었다. 

 

때마침 9월 초에 선물이 하나 배달돼 왔다. 가끔 “지금은 어디세요?”하고 전화로 안부를 묻는 20년지기 둘째 남자(인)친구가 독립기념선물로 보내준 커피포트였다. 지금은 짐 늘일 때가 아니라 여차저차해서 받게 되었는데 막상 받기로 하고는 민망함을 무릅쓰고 제품명을 알려준 그것이었다. 친구도 당황했을 것이다. 하지만 20년이면 내가 어느 정도 까탈스러운지는 그도 이미 알고 있다. 게다가 나는 지금 비움실천 중이라 버려도 시원치 않는데 뭘 들일 때는 상당한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일단 들이면 아끼는 데다 쉽게 버리지 않기에 그동안도 물건들을 10년, 20년은 예사로 써왔다. 그러니 내 나이를 감안해 보면 앞으로 들이는 물건은 남은 평생 쓰게 될 수도 있다. 물건이 많으면 골라 써도 되지만 내 경우는 용도 당 한 개씩이니 늘 쓰게 된다. 마음에 안 드는 물건으로 쓸 때마다 스트레스 받느니 차라리 없는 게 낫다. 그래서 염치없지만 솔직하게 요청했다. 대신 상당한 고가품이었기에 리퍼브상품을 요구했다. 그래야 이미 생산된 제품을 폐기하지 않을 수 있고 소비에서 오는 죄책감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내 방에 들어온, 손잡이는 강아지 꼬리 같고 주둥이는 가늘고 긴 백조목 같은데 (이렇게 우아한 걸 어찌 거위목이라고 하는지...) 600ml 이상 끓일 수 없이 작아서 더 좋은 가을빛 커피포트. 덕분에 작은 방이 아주 호화로워졌다. 

 

물건은 고르고 기다리고 처음 사용하는 며칠간 반짝 행복하게 해준다. 그건 디자인의 힘이다. 커피 문외한인 내가 인터넷 어디서 스쳐 본 디자인에 반해 다른 건 눈에 차지 않는 그런. 하지만 물건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첫인상보다는 오래오래 두고두고 볼수록 진국인 게 좋다. 그것은 디자인을 넘어서는 품질에서 온다. 그간 쓰던 포트처럼 냄새 나지 않는 물로 차와 커피를 마시니 한결 안심이 되고 다양한 온도 조절과 타이머 기능에 커피용 드립포트를 따로 사지 않아도 되니 절약과 편리함을 동시에 누릴 수 있어 전기포트로는 최고 사양이다. 자~ 내 것으로 삼고 나서는 다른 것에 눈독 들이지 않는다. 신제품은 무한하다. 그러나 손때 묻고 함께 옮겨다닌 시간이 길어질수록 쨍한 햇빛보다 은은한 달빛같은 정이 들 것이다. 그러므로 써서 사라지는 게 아닌 선물은 마음대로 할 것도 함부로 받을 것도 아니다. 연관된 기억들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볼 때마다 기분 좋아지는 물건들이 있다. 언젠가 그것들에 대해 따로 쓸 날이 있겠지만 요즘 내가 제일 애용하는 건 다시 간 하동에서 선물 받은 봄가을 꽃밭에 둘러싸인 듯한 잔잔한 꽃무늬 앞치마. 챙겨먹기 귀찮을 때, 설거지하기 싫을 때 예쁜 앞치마를 입으면 싱크대 앞에 서게 된다. 기왕에 하는 일, 할 때마다 기분 좋아짐은 얼마나 능률적인가. 대체 입주작가가 새댁처럼 걸핏하면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모습이 의아하겠지만 나는 일을 할 때도 앞치마를 두른다. 내가 만든 작업용 앞치마로 허리를 동이고 책상 앞에 앉으면 경건한 긴장감이 감돈다. 일할 때는 작업복을, 잘 때는 잠옷을, 도보순례에는 등산복을, 격식 있는 자리엔 단정하고 세련된 옷을, 주방에선 앞치마를. 나의 복식 기본이다. 몇 벌 없는 옷이지만 매일 갈아입는다. 날마다 기분이 다르고 또 억지로라도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맞기 위해서다. 아래 위를 이렇게 저렇게 바꿔 입다 보면 경우의 수처럼 다양한 옷차림을 연출해 낼 수 있다. 

 

정읍에 비해 살림이 조금 늘었다. 하동 앞치마, 구례 화엄사 대추나무 초소형 국자와 뒤집개. 발리 나무포크스푼세트, 휴대용 베개와 빨랫줄, 해남 커피포트. 그 외에도 생필품으로 필요한 건 많지만 이 대신 잇몸으로 살고 있다. 차차 하나씩 하나씩 마련하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1+1 대용량을 권유하는 사회에서 작고 알찬 물건으로 생활규모를 줄여나가고 싶다. 6평 방 한 칸에서 의식주 모든 생활이 가능한 백련재 살이는 그런 면에서 나를 자연스럽게 훈련시킨다. 

  

 

  “별님~, 별님~”

입주자 모두 선생님이자 작가님인 백련재에서 내가 불러달라는대로 불러주시는 관리여사님이다. 

  “네에~” 

대답과 동시에 나가보니 손에 금잔화 모종 한 판을 들고 계신다. 마을에서 꽃 심고 남은 것 가져왔는데 나더러 심으라고 하셨다. 잽싸게 옷을 갈아입고 목장갑에 등산화로 무장하고 연장을 들고 갔다. 텃밭 앞에 호미로 딱딱한 땅을 파고 31개의 꽃모종을 심었다. 그 뒤로 2주 전에 심은 무와 상추 싹이 오밀조밀 나오고 있다. 가을에도 파종을 하고 꽃을 심다니 예전엔 모르던 일이다. 나는 식물은 봄에 심고 가을에 거두는 줄로만 알았다. 사람을 꽃에 비유한다면 나는 가을에 심는 꽃이 아닐까. 반평생 온실 속에 있다가 막 정원으로 나온 꽃. 아직 야생에 나갈 자신은 없고 가꿔진 정원 정도에서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여리고 비실비실한 꽃.  

 

백련재에 온 지 한 달이 막 넘은 날, 녹우당 앞 500살 넘은 은행나무를 보러 갔다. 초록잎에 노랑이 아주 조금씩 섞여가고 있었다. 녹우당을 도는 산책로 초입에 붉은 더듬이를 좍좍 펼친 꽃무릇 한 무더기를 올해 처음으로 보았다. 고창 선운사도 아닌 해남에서 이렇게 선물처럼 보다니 화들짝 반갑고 고마웠다. 산책로를 한 바퀴 돌아 나오는데 날카롭게 잘린 꽃무릇이 풀과 함께 널부러져 있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읽고 있던 참이라 그랬는지 1532년 야비한 피사로를 위시한 스페인 군대 168명에 의해 무참히 쓰러진 마지막 황제 아타우알파의 잉카제국 대군 8만여 명이 떠올랐다. 꽃 세 줄기를 안아올렸다. 

  ‘우리 방으로 가자. 적어도 며칠은 더 살 테니…. 그리고 내가 네 마지막을 아름답게 기억할게.’ 

기다란 꽃무릇 한 줄기를 1000ml 요거트 빈병에 물을 넣고 담아 TV 브라운관을 씌운 초록 요가 타월 앞에 세워두니 대조되는 색이 고왔다. 짧은 두 송이는 꽃병에 꽂아 창가에 두니 손수건 커튼 색과 비슷해서 잘 어울렸다. 

잠시 후 예초기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렸다. 벌초였다. 추석이 다가오고 있었다. 풀 비린내가 진동하는데 마음이 아렸다. 나는 ‘피안(彼岸)’의 세계로 가듯 방바닥에 쓰러져버렸다. 

 

그 날 밤 샤워를 하다가 남서쪽 욕실 작은 창 밖 초승달과 눈이 딱 마주쳤다. 아니 언제 거기로 와 날 대놓고 보고 있었을까? 옷을 입고 방으로 나와 처음으로 창문 블라인드를 올렸다. 밤이면 밖에서 보일까봐 꼭꼭 닫고 살았었다. 대체 이 산 속에서 누가 날 본다고. 달의 정기를 받기 위해 잠시 달을 마주하고 있는 사이 밤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동안 나는 무얼 두려워한 것일까? 달은 금세 숲 속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어둠을 응시한다. 전기스탠드를 끄고 촛불을 켠다. 밖은 풀벌레 소리가 가득하다. 그들에게 밤은 인간으로 치면 낮이다. 전날 밤, 별이 떴나 하고 마당에 잠깐 나가서 백련재 지붕 뒤 숲 위쪽에서 본 게 도깨비불이 아니라면 반딧불이었을 것이다. 깜빡, 하고는 사라졌다. 작년에 반딧불을 처음 보지 않았더라면 난 그게 반딧불인지 몰랐을 거다. 있는 지 없는 지도 모를 만큼 작지만 반짝거리는 반딧불처럼 살고 싶다. 나 잡아봐라 하며 어둠 속 숲을 누비고 싶다. 

 

시멘트, 콘크리트, 아스팔트가 흙보다 더 많은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그렇게 반평생 살아온 내가 이제 와 자연으로 돌아가겠다는 건 천둥벌거숭이 어린아이가 냇가로 뛰어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가뜩이나 예민한 몸이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표준말 쓰는 지방 사람이 급할 때는 방언 튀어나오는 것처럼 나도 평소에 친환경 친자연을 표방해도 순간순간 야생의 겁에 질리고 위생 면에서는 온갖 방어를 한다. 내 정원은 어디에 있을까? 생긴다 해도 그 생활을 해 나갈 수 있을까? 가렵고 따끔따끔한 피부를 찬물로 진정시키며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는 미래가 다가오는 걸 잠잠히 지켜본다.   

 

추석 연휴 며칠 전, 새벽 5시까지 글을 쓰고 동트기 직전에 잠이 들었는데 아침 9시에 “별님”을 부른다. 여사님이 배추 모종을 심잖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이었다. 평소에 늘 깔끔히 지내던 내가 이부자리도 못 개고 주섬주섬 나갔다. 멀칭 비닐 구멍으로 배추 모종을 심었다. 해남 배추는 김장용으로 유명하다. 어떤 맛일지 벌써 기대된다. 

한숨 잘까 했는데 얼결에 오일장 행렬에 동행해 작업복 차림에 세수도 안 한 채로 추석 직전 대목 해남 장을 구경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텃밭을 일궈 키운 농작물을 장에 나가 색다르게 파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맹렬한 상인들의 펄떡이는 기운을 보니 나같은 한량은 낄 틈이 없었다. 

장에서 돌아오자 백련재가 휑했다. 여섯 명 중 세 명이 집으로 갔다. 공간에도 연휴가 시작됐다. 

 

다음 날 초저녁에 녹우당 앞 잎이 다 떨어진 배롱나무들과 어서 노란빛으로 물들길 기다리는 은행나무와 땅끝순례문학관 앞을 가득 메운 진홍 꽃무릇을 돌아 산책하고 들어오는 길이었다. 

막 대문을 돌아서자마자 그물자루로 된 재활용 쓰레기통 위에 있던 까맣고 하얀(이하 내 맘대로 ‘까하’) 아기고양이가 내 발소리에 놀랐는지 발을 헛디뎌 그물망 안으로 텀벙 떨어졌다. 연휴 전날이라 쓰레기통엔 쓰레기가 없었고 그래서 고양이는 깊은 바닥에서 올라오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쳤다. 나도 덩달아 놀라 허둥지둥했다. 그때 그물 안 까하의 달라진 눈동자를 보았다. 평소에 가늘고 길게 1자가 선 날카로운 노란 눈동자가 아닌 까맣고 동그란 눈동자였다. 동공이 최대한 확장된 상태 같았다. 그 눈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간절히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까하는 아기고양이 세 마리 중 제일 먹성이 좋아 먹이를 던져주면 다른 고양이 제치고 가장 많이 먹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골고루 주려는 내가 마음으로 가장 멀리하던 고양이였다. 그런데 자루 속 까하의 눈은 그 식탐 많고 날쌘 까하가 아니었다. 내 눈도 그 눈에 정면으로 답했다.  

  “내가 구해줄게. 걱정 마. 내가 구해줄게.” 

접힌 종이박스를 자루 밑에 대다가 안돼서 그물을 잡아 올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온가족 고양이들이 모여들었다. 모두 걱정스런 눈으로 쳐다보는 가운데 어설픈 내 손이 그물을 엄벙덤벙 들어 올리자 재바른 까하가 폴딱 튀어나왔다. 까하는 툇마루 아래로 쏜살같이 들어가 나오질 않았고 나머지 형제인지 자매인지들도 쪼로록 따라 갔다. 그런데 어미 고양이만 가지 않고 내 앞에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고맙다고 하는 것 같았다. 뻘쭘해진 나는 툇마루로 가서 납작 엎드린 까하에게 “놀랐지? 이젠 괜찮아.”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설마 저것들이 내가 처넣었다는 오해는 안 하겠지 하며. 그나저나 밉상이던 까하마저도 각별해졌으니 이를 어쩐담. 

 

추석이 되었다. 

백련재 깜깜한 뜨락에서 달을 기다렸다. 다른 곳엔 벌써 떴을 달이 동쪽 덕음산 등성이를 넘어 오르는 데 한 시간이나 걸렸다. 대문 바깥에서 기다리다 몇 cm라도 일찍 보려고 툇마루에 올라서서 기다렸다. 바알간 여명이 서서히 번지더니 마침내 휘영청 보름달이 둥싯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소원을 빌었다. 언제나 내 소원은 단 하나. 그런데 전래동화의 주인공처럼 달에게 비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정화수 떠놓고 빈다고 정화수에 아무 능력이 없듯이 달에게도 무슨 힘은 없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달은 금화로 보일 테고 사랑을 하는 사람에게 달은 님의 얼굴로 보일 것이다. 달은 이루지 못한 꿈이나 그리운 대상의 투영. 혹은 전할 수 없는 마음을 똑같은 달님을 보고 있을 누군가에게 전해주길 바라는 전령사. 터무니없이. 차라리 심령술을 배우지 글이나 말로도 온전히 전할 수 없는 마음을 어떻게……. 세상이 내 맘같지 않다는 걸 그렇게 겪고도 나는 또 헛된 꿈을 꾸고 있었다.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듯 매일 뜨는 달이 추석이라고 뭐 그리 다를라고. 더는 아무에게도 내 꿈을 빌지 않기로 했다. 꿈은 자신이 이루는 것이다. 백련재 텃밭에 심은 상추와 무와 정원의 금잔화가 저절로 자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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