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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겹의 보호막
우수(雨水)와 경칩(驚蟄) 사이, 극적인 기온 변화가 생겼다. 12.3 내란 이후 끝날 것 같지 않던 냉기가 어느덧 한낮의 햇살 아래 사라지고, 칩거하던 생명체들이 움트고 박차고 나올 것 같은 기운이 가득 퍼진다. 겨우내 끼고 다녔던 장갑에 구멍이 생겼다. 입... -
조용한 사랑
오후 2시, 때를 지난 시간. 어찌어찌하여 용산역 앞에 내려 끼니를 해결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찾아 들어간 식당은 한적하다. 앞 테이블엔 연인 둘, 옆에는 건장한 이십 대 남자 네 명이 홀에 인원 전부다. 네 명 식탁엔 소주병이 몇 개 보였으나 이십 대 청... -
탄핵 주일 기도문
영하 20도를 밑도는 추위와 목과 눈이 따끔거릴 정도의 대기오염을 안고 사는 한겨울 울란바토르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에 탄핵 2차 투표가 있었다. 출장 동안 낮에는 연속으로 이어지는 회의로, 밤에는 탄핵 정국의 뉴스를 몰아 보느라 기도문을 한 줄도... -
협력은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늦가을 몽골의 추위는 매서웠다. 올여름 더위가 늦은 가을까지 이어지는 와중에 느닷없이 찾아온 영하 20도의 추위는 정신을 번쩍이게 만들었다. 좋은 계절, 트레킹으로 찾았던 몽골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다. 앞으로 과제 수행을 위해 몇 차례나 ... -
짓다. 글, 밥, 집, 옷
며칠 전 교육감 선거 사전 투표하고 아파트 단지 안을 어슬렁거리다 감이 익어가는 계절이 왔다는 사실을 인지하였다. 감을 바라보다 문득 감나무 아래 식탁이 떠올랐다. 그해 가을 햇살 아래, 갓 지은 밥상을 받았던.. 운문사 가는 길에 '밥을 짓다'... -
심심 10주년 마음과 기억에 뚜렷이 새기다
어쩐 일인지 추석 전후하여 월인천강을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배운 바와 같이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세종이 부처님의 공덕을 찬송하여 지은 노래입니다. 월인이 천강하는 것처럼 부처님의 자비가 달빛처럼 모든 중생에게 비춘다는 해석도 기억 날 것... -
생명의 빵
지난 6월 말 사회적 협동조합 길목에서 압록강-두만강 북중접경지역 탐방을 다녀왔습니다. 주일을 포함하고 있는 일정이어서 지역에 있는 교회를 방문하여 예배를 드리기로 계획하였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탐방단이 자체로 조직하여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 -
수미산 유감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일행을 기다리느라 수미산 아래 한참을 앉아 있었다. 8세기 석공은 좁아지다 넓어지는 오버행 스타일로 9단을 쌓아 허공에 수미산을 구현하였다. 여름, 소나기 잠깐 사이 푸른 하늘이 언뜻 비치는 소나무 그늘에 앉아 허공으로 창조된 수... -
용머리 해변을 지나며
홍해삼이라고 적힌 문구를 보고 주저함 없이 들어와 앉았다. 5시! 아직 저녁 손님이 오기 전이다. 홍해삼 한 접시 주세요. 내장은 따로 담아서~ 서울 말씨를 쓰는 사장님으로 보이는 홀 서빙은 눈치가 빠르다. 나무젓가락 드릴까요? 왼팔 오른팔을 도화지 마냥... -
아카시아 향기와 과도한 공공서비스 - 봄비 내린 날 소회
아카시아 향기와 과도한 공공서비스 봄비 내린 날 소회 제주와 고향을 오가며 과하게 마셨다 비 내리는 창가에 앉아 몸과 맘을 돌보기로 했다. 3년 전 아카시아 꽃향기가 날릴 무렵에 쓴 글을 보니 그땐 심사가 무척 복잡했나 보다. 어린이들 덕분에 생긴 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