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VIII 노란 조끼 여덟 번째 시위: 자본에게 죽음을 요구하다
그들은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연말 지나고 2019년 첫 주말인 1월 5일 토요일의 8번째 질레죤느(jilets jaunes, 노란 조끼) 시위는 그 규모가 반등하였다. 데모의 영어 번역은 Demonstration이다. 말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보여주는 것에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 리 없다. 그런데 이 노란 조끼 시위대의 숫자가 늘어난 데 한몫을 한 것은 다름 아닌 마크롱의 태도와 프랑스 정부의 발표 때문이다. 여론조사를 보면 여전히 노란 조끼 시위에 찬성하는 비율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발표에는 시위대의 요구 사항과 과격성이 일반 국민 정서와 괴리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지난 5일 시위 때 방송기자가 취재하다 입은 상처로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주변에 있는 노란 조끼 시위대가 급하게 구급차를 부르는 상황에 방송 카메라를 피투성이가 된 자기의 얼굴을 비추며 구급차 앞에서 중계를 하는 모습이 다른 방송에 잡혔다.
기자 정신의 발현, 상처 입은 얼굴을 자신의 카메라로 비추면 방송하는 기자(출처: Media Investigation 유튜브 화면 캡처)
노란 조끼 시위의 근본적 원인은 마크롱이 주창한 개혁의 실질적 내용이 분배의 형평성을 심각하게 훼손하여 다수 대중의 삶이 더 어려워지고, 그 와중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만드는 친기업 정책과 부자들에 대한 감세가 있다. 시위가 촉발된 것이 유류세 인상이니 정부는 이 인상 방침을 철회하고 저소득층을 위한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했으니 요구 사항이 관철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마크롱은 기업과 소득 상위층에 대한 감세 혜택에 대해서는 변경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프랑스 재무장관은 시위로 인해 4사 분기 경제 성장률이 10% 감소했다고 앓는 소리를 한다. 이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자존감에 상처를 입은 대중은 마크롱 정부의 이런 태도와 발표를 듣고 난 이후 연말 시위 때부터 주된 구호를 Macron demission (마크롱은 사퇴하라)으로 변경하여 외치기 시작하였다.
일이 이쯤 되었으니 규모뿐 아니라 시위의 양상이 훨씬 과격해질 수밖에 없다. 시위대가 지게차를 이용하여 중앙 정부 건물의 문을 부수고 들어가 정부 대변인이 보안요원과 함께 급하게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일이 발생하였다. 차량을 뒤집어 불을 지르고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마침 크리스마스가 끝나 용도 폐기된 바짝 마른 트리들이 시위 현장 곳곳에서 불타오른다.
크리스마스 지나고 용도 페기된 트리들이 파리 거리 곳곳에 보인다
세느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중 가장 아름다운 다리는 오르세 미술관 앞 인도교이다. 이곳에서 전직 프로복싱 챔피언은 무장 경관을 상대로 한판의 복싱 경기를 펼쳤다. 그는 권투선수를 은퇴하고 지금 지방 정부의 공무원이라 한다. 공무원인 그는 왜 같은 공무원인 경찰에 주먹을 휘둘렀을까?
전직 권투선수가 경찰을 상대로 한판 주먹을 휘두르다(출처: 프랑스 일간지 Le Parisien 유튜브 영상 캡처)
두들겨 맞은 것은 프런트 라인에 서 있는 경찰만이 아니라 무방비 상태에 있는 시위대도 마찬가지다. 서장급 간부가 고립된 남성 시위자를 무차별 폭행한 영상도 돌아다닌다. 이뿐 아니라 고등학생들로 보이는 일군의 시위대를 연행하여 모두 무릎 꿇리고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게 한 영상은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는 테러리스트나 전범을 다루는 방법을 자신의 의견을 표출한 시위대 더구나 학생들에게 했으니 이를 본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프랑스인들이 현 마크롱 정부에 대해 어떤 반감을 갖게 될지 너무 명확하다.
학생들을 연행하여 무릎을 꿇리고 있다. 자막에서도 시위대를 테러리스트로 다룬다라고 쓰고 있다(출처: TRT World 유튜브 영상 캡처)
흔히 프랑스를 한 명의 황제를 처단하고(물론 단두대에서 처형된 사람은 한 명이 아니다) 모든 국민이 왕이 된 사회라 한다. 긍정과 부정의 의미가 모두 포함된 이 말은 충분히 곱씹을만하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관련된 공지와 일정 등 모든 연락을 ‘아직도’ 문서로 하는 프랑스 공립학교에서 드디어 2018-2019학기에는 모바일을 포함한 인터넷 서비스를 하기 시작하였다.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2018년 12월 14일 금요일 오전에 학교 모바일 앱의 알람이 울려 열어보니 아침 등교 시간에 학교 앞에서 고등학생들이 주도한 시위가 있었던 모양이다. 학교에서 시위가 있었던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나 고등학생 시위대가 중학생의 학교 출입을 막아 소란이 있었던 모양이다. 중학생인 둘째의 전언에 의하면 학교에 들어가고자 하는 아이들을 억지로 못 들어가게 강제하였던 것 같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수업을 하게 되어 좀 아쉬웠다 하였다. 언제나 무슨 이유에서나 휴강은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고등학생인 첫째는 좀 시큰둥한 표정으로 아침에 자기 반에 다섯 명 정도만 출석하였다 한다. 시위하는 이유는 알겠으나 다분히 수업을 땡땡이치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내가 놀랐던 것은 시위가 아니라 학교의 대응이다. 아침에 있었던 사건을 점심시간 되기 전에 부모들에게 알리는 신속함을 보여주다니! 프랑스의 행정은 사람을 말려서 죽일 만큼 느리다. 물론 다른 유럽 사회도 예외가 아니라고 듣긴 했지만. 이런 식의 빠른 대응은 예상 밖이었다.
각설하고 대입제도의 개편, 구체적으로 학생 선발에 대한 권한을 대학이 조금 더 가지는 개혁(이걸 개혁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싶지만)에 대해 공평하게 교육받을 기회의 박탈이라고 주장하는 고등학생들이 요즘은 심심찮게 바리케이드를 치고 시위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존감으로 똘똘 뭉친 프랑스인들은 조금이라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한이 침해받는 것을 참고 지나가지 않는다. 프랑스혁명을 잉태시킨 인본주의와 시민이 사회의 주인인 민주 공화정으로의 사회 발전은 모든 사람에게 인간이 지니는 권위와 자존감을 심어준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학교에서의 교육이 이런 자존감을 가진 시민을 양성하였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이들 프랑스인이(구체적으로 파리시민들이) 같은 종(種) 사피엔스 이민자나 난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옆 나라 독일보다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굳이 우리나라를 떠올리고 싶진 않지만 얼마 전 제주에 온 예멘 난민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를 보면 그저 막막할 따름이다.
시위대가 밴드를 조직해서 길거리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내가 이번 주 본 영상 중에서 노란 조끼 시위의 발전을 압축한 장면은 두 가지이다. 얼마 전까지는 시위대 개개인이 악기를 들고나오더니 이제는 아예 밴드를 조직해 퍼레이드를 벌인다. 역시 음악은 어디에서나 모두에게 환영을 받을만하다.
Mort au Capitalisme! ‘자본에게 죽음을’이라는 낙서가 시위대가 지나간 자리 곳곳에서 보인다(출처: Media Investigation 유튜브 화면)
이와 더불어 다른 장면은 “자본에게 죽음을! 계급을 철폐하라.(계급의 문을 열어라)”라고 손글씨로 적은 피켓을 건물 문 앞에 붙여 둔 것이다. Media Investigation 유튜브 화면에 잡힌 이 구호는 경찰로 보이는 남자 뒤 8번지 (이번 노란 조끼 시위도 여덟 번째!) 건물 문에 붙어 있다.
마크롱은 앞으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나는 그가 기업에 대한 혜택과 부유세의 철회를 두고 고민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결정하기 쉽지 않으리라 본다. 이렇게 미적거리는 동안 성난 노란 조끼들과 피로한 경찰들은 더 격한 대립을 할 것이고 프랑스 사회는 점점 폭력과 그 폭력으로 인한 더 심한 자존심의 상처 그리고 그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더 극단적이고 과격한 대응의 악순환으로 빠져들 것이다. 그의 측근 중 연설을 담당하던 기업 우호적 시각을 가진 이가 사퇴하였다 한다. 이때까지 마크롱 행정부에서 장관급의 인사가 그만둔 사례가 내 기억에 의하면 대부분 자발적이다. 자기의 소신과 맞지 않는다면 장관 자리도 걷어차는 것이다. 마크롱은 주변 측근들을 잃기 시작하였다. 이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나는 이제 주말 방콕을 벗어나 시위의 현장으로 나가고자 한다. 그들은 분노를 시위를 통해 표출하고 시위에 즐거움을 더하기 시작하였다. 앞으로 전개될 시위에서 분노와 즐거움 어디쯤에서 이들 노란조끼들이 줄타기하고 있을지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