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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국의 걸으며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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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 10주년 마음과 기억에 뚜렷이 새기다

posted Oct 0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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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호수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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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 일인지 추석 전후하여 월인천강을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배운 바와 같이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세종이 부처님의 공덕을 찬송하여 지은 노래입니다. 월인이 천강하는 것처럼 부처님의 자비가 달빛처럼 모든 중생에게 비춘다는 해석도 기억 날 것입니다. 월인(月印)이면 달 도장인데 달이 도장처럼 강물에 찍힌다고 하지 왜 달빛이 비친다라고 했을까 하며 추석에 떠오른 달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고, 저 인(印)이 도장이기만 할까 하며 의문을 품었으나 또렷해지지 않고 안개처럼 뿌옇기만 합니다.

 

성서에 인을 치다라는 표현이 여러 곳에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 고린도후서 1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를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 튼튼히 서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사명을 맡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를 자기의 것이라는 표로 인을 치시고, 그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말로는 인을 치다로 번역하였고 영어로는 sealed us라고 표현합니다. 편지를 써서 봉투에 넣고 촛농을 떨어뜨리고 도장으로 찍어 자신이 보낸 것임을 확인시키는 전통이 있습니다. 불에 달군 금속으로 피부에 화상을 입혀 표식을 남기는 낙인도 소유권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널리 오랫동안 사용된 방법입니다. 모두 인을 치는 것입니다.

 

최재천 교수가 다윈 이론의 대가들과 대담하여 만든 책 다윈의 사도들 첫 번째 장에는 피터 그랜트와 로즈매리 그랜트 부부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들 부부는 1973년부터 갈라파고스 제도의 다프네섬에 들어가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50년간 매년 6개월씩 섬에 머물며 핀치라는 새를 잡아 인식표를 붙이고 혈액 시료를 채취하고 풀어주는 방법으로 다윈의 이론을 증명해 가는 연구를 하는 학자들입니다. 로즈메리의 대담 내용 일부를 옮겨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랜 시간 동안 연구한 덕분에 우리는 자연 선택의 궤적을 짚어 볼 수 있었어요. 먹이 공급의 변화로 인한 부리와 몸의 크기에 대한 자연 선택 과정의 변동과 그에 대한 진화적 반응까지도 볼 수 있었어요. 예를 들어, 큰 씨앗이 압도적으로 많고 다른 대체 먹이가 거의 없을 때는 그런 씨앗을 깨 먹을 수 있는 큰 부리의 새들이 살아남았어요. 이듬해 또다시 우기가 돌아오자 이 큰 부리 새들은 큰 부리를 가진 새끼들을 낳아 기를 수 있었죠. 가뭄이 닥쳤을 때는 작은 씨앗들이 훨씬 많아졌고, 부리 작은 새들이 살아남고 부리 큰 새들이 죽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개체군의 이 같은 부리 크기의 변화는 부리와 몸의 크기가 유전성이 매우 강한 형질이기 때문에 일어났죠."

 

새들은 태어난 지 10일에서 40일 되는 짧은 민감기 동안에 노래를 배웁니다. 이때가 부모에게서 먹이를 받아먹으며 어미 새의 노래를 배우는 시기라고 하네요. 아주 어렸을 때 배운 노래는 일단 익히면 평생을 간직하는데, 길게는 십 수년을 사용하며 배운 노래로 짝을 고르고 또 대를 이어 노래를 가르친다고 합니다. 이른바 노래가 각인(刻印)되는 것이지요. 몸과 마음에 아프지 않은 칼, 칼이 적절하지 않나요 우아한 말로 새겨 넣는다고 할까요.

 

여기서 각인 앞에 genetic이라는 단어를 덧붙여 genetic imprinting 유전적 각인이라고 표현합니다. 유전자에 새겨 넣는다는 뜻이 되는데 이 구절을 읽으며 월인의 인의 의미와 성서의 인을 치다는 표현이 조금 더 명료하게 이해가 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살아가는 일을 마음에 새겨 넣는 것이지요.

 

물론 자연에는 복잡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어떤 새는 둥지를 뺏고 그 안에 알들을 죄다 내다 버리고 자기 알을 낳는데 가끔 원래 알이 하나 남아 부화하면서 그 어린 새는 다른 종 어미의 노래를 배우기도 합니다. 그렇게 잡종이 생겨나고 유전자가 이입되어 자연선택되어 다른 종으로 남기도 하지요. 더 흥미로운 내용이 무궁무진하게 펼쳐지니 이쯤에서 그치겠습니다.

 

새는 노래로 새겨 넣습니다. 그 노래를 다음 세대로 전승하며 삶을 유지합니다. 지난 10년간 심심은 아프고 다치고 외롭고 허전한 마음과 마음을 이으며 지탱해 왔습니다. 달이 떠 천 개의 강에 비추고 우리의 마음에 인을 치시고 성령을 보내시어 이끄신 것처럼 앞으로의 10년도 따뜻한 말과 마음으로 세상을 위로하며 나아갈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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