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雨水)와 경칩(驚蟄) 사이, 극적인 기온 변화가 생겼다. 12.3 내란 이후 끝날 것 같지 않던 냉기가 어느덧 한낮의 햇살 아래 사라지고, 칩거하던 생명체들이 움트고 박차고 나올 것 같은 기운이 가득 퍼진다.
겨우내 끼고 다녔던 장갑에 구멍이 생겼다. 입을 것 걸치고 다닐 것이 풍부하다 못해 넘쳐나는 시절이건만 한 겹으로 추위에 맞서게 해준 장갑에 생긴 구멍으로 갖가지 상상과 연민이 밀려왔다.
그 밤에 우리의 양심을 지켜온, 우리의 도덕을 간직해온 한 겹의 보호막이 없었더라면 어쩔뻔했을까. 4.3, 4.19, 5.18을 거쳐 6월 항쟁과 촛불의 기억이 우리를 감싸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 밤에 우리는 계엄선포와 해제의 강을 헤쳐 나올 수 있었을까. 세월이 흘러 한 겹의 보호막이 군데군데 헤질지라도 꿰매고 덧대어 유지하자. 덧대고 덧대어 모자이크 될지언정 기득권과 사익 추구와 신자유주의 유혹에 굴하지 말자. 한 겹의 보호막을 벗어던지고 매국의 길로 투항한 이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자.
하... 그래도 저들의 자가당착 언사를 매일매일 듣는 건 끝없이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의 신화 같이 부조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