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국악이 알고 싶다]

d6d2c8

헬조선과 경토리 상2

posted Jun 02, 2022
Extra Form
글쓴이 이태원
발행호수 5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null.png

 

조선은 정치적으로 일제에 의해 끝났지만, 사회적으로는 기독교에 의해 끝나고 있다. 

 

그렇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의 대한민국 정체는 조선을 필요로 한다. 한국은 아직도 조선을 뒷발질로 밀어내어 전진하고 있다. 기독교만 조선을 밀어내 온 것은 아니다. 멀쩡한 대한민국을 두고 헬’조선’이다. 헬대한이 아니라 헬조선. 조선 밀어내기가 아직도 작동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틈새다. 여기가 헬이라면 대한민국일 수 없고 아마 조선 따위일 것이라는 인식. 대한민국은 아직도 미래에 있고. 이런 인식의 배는 순풍이나 조류에 의해 흘러가지 않는다. 의식의 아래층, 역사적 무의식이 부단히 노를 젓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꾸 조선의 지배층이 실패했다고 말하지만 우리의 무의식은 조선의 지배계급이 성공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고 싶은 걸 다 했다. 수탈, 도주, 매국, 전쟁, 학살. 그처럼 대한민국도 성공한다. 독재, 수탈, 매국, 사면, 내부 총질, 내부 식민까지. 대한민국은 자기가 아직도 미래에 있다며 자기가 아직 조선임을 양해해 달라고 한다. 조선은 대한민국에 의해 청산되지 않았고 오히려 대한민국은, 조선의 적자다.

 

청산되어야 마땅하다던 조선은 대한민국 화폐에 각인되어 기념된다. 율곡과 퇴계, 사임당을 보는 대한민국의 시각은 전혀 조선적이며 이는, 내심이랄 것도 없이, 노골적인, 조선의 대한민국에 대한 지배다. 대한민국은 조선을 뒷발로 걷어차서 그 이데올로기적 동력을 얻으면서도 사실상 조선을 유지한다. 여기가 ‘헬’, 바로 ‘조선’이라는 인식은 그것의 간파다.

 

청산의 거부와 함께, 계승해야 마땅한 가치들은 걷어 차여왔다. 여기가 조선이기에,  여기가 걷어차는 가치들은 당연 조선도 걷어차 왔던 것들이다. 조선이 걷어찼던 자생적 언어, 자생적 문자, 자생적 음악 문법, 자생적 음악 문자들은, 명에서 청으로, 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미국으로 자신들의 숙주를 바꿔온 조선의 지배계급에 의해, 조선 당대에 이미 비하되었고, 지금까지 비하되어 온다. 온갖 다양성의 가치, 인류학적 인식, 인류애적 철학들이 긍정되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절대, 조선 시대를 관통하며 생성된 자생적 문법만은 긍정하지 않는다. 아니, 알아야 부정도 하므로,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ㄹ이 R이냐 L이냐라는 로마자 표기법 문제는, 겉모습만 한국인으로 바뀐 그 조선인들에 의해 표기법 문제가 아니라 랑그 문제로 치달았다. 지배적 대중음악을 들여다보면, ㄹ은 R이다, ㄹ은 L이다 식의 간절한 바람이 켜켜이 읽힌다. R파와 L파는 누가 ㄹ의 본래 정체인지를 두고 경합한다. 모두 조선인이다. 한 대중음악 가수는 어떤 실연을 당해도 절대 ‘아프지’ 않다. 다만, 아-f-으다.

 

이제 음악 얘기다. 경토리의 상2.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현학적이라거나 전문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건 어떤가? 장조의 세 번째 음. 현학적이거나 전문적인가. 도와 레 위의 음, 미.

 

국악이라는 개념적 장막 안엔 청각적 조명이 없다. 그 아래에선 아무도 들어볼 수 없게 되어 있는 어떤 조의 저 두 번째 음. 자생적 음악 문법을 배제하는 조선의 대한민국적 계승은 바로 저 장막, 즉 국악이다.

 

음악에 대한 조선의 범전인 악학궤범은 그와 달리 음악적 문법을 구분했다. 그러나 국악이라는 말을 정치적으로 채택한 포스트조선인들은 국악이라는 말을 정의하면서, 서로 다른 음악 문법을 통폐합한다. 국악은, 마치 대한민국이 조선을 밀어내면서 자신의 정체를 형성하지만 그로써 조선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보존하듯이, 현실적으로 만개하고 또 여전히 생존하는 음악 문법에 대한 조선의 위선을 그로써 계승한다. 국악은, 조선이 조선한 것이고, 계급이 계급 한 것이라고 할까.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한 것이라고 말 하지 못 할 이유는 있을까?

 

통폐합의 논리이자, 수백 년 전 조선에 통보되어 음악 정치적 법률이 되어 있던 중국의 음악 체계는,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당대에도 조선을 부정한 자들, 그들의 후예에 의해, 국악의 왕관이 되어 있다. 그 체계는 실용화 정도만 다를 뿐 실제적으로는 또한 서양음악적, 수학적 아이디어여서, 조선 음악문화의 실질인 언어학적 음악 재료들, 다시 말해, 언어적이 아니라 언어학적 음악 재료들, 즉, 경토리, 서도토리, 그들의 각종 혼종, 남도, 동부 등의 음악 문법들을 모두 서양음악 체계로 환원하는 매개가 된다.

 

‘오나라’를 복면가왕이 판소리라고 호명할 때, 이 환원은 실제적 효용성을 확인하는데, 이러한 현재진행형 환원 작업은 20세기 초에 본격화되며, 조선 후기 네이티브들의 고유한 문법이 만개하여, 풍류, 가곡, 판소리, 각종 경서 소리 등을 낳은 역사에 맞서, 세종 대 아악주의자 박연 이후 다시 시작된, 대대적인 멸종 작업이다.

 

일본어가 공용어인 시대를 지나, 이제, 한국어 내부까지 공략당하여, ㄹ을 R이나 L로 발음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가면을 쓰고 부러움 받는 이 시대에, 유구한 그 환원주의는 압도적으로 이 문화의 자생적 질서를 세탁하고 초등교육해 오고 있다. ㄹ을 R이나 L로 발음하는 건 예술적인 행위나 문화다양성 추구가 아니고, 문화정치적 정책이다. 영문학 상 어떤 작가도 그 급을 막론하고 자신의 작품을 읽을 때 동양식 사투리로 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에선 한국어의 ㄹ을 R이나 L로, ㅍ을 F로 발음하면, 누구도 간과할 수 없는 문화정치적 메시지, 부드러운 협박이 된다. 이런 예술적 허용은 대한민국적 허용이 아니라 조선적 허영이 아닐까. 이 한국인들은 아직 조선인들이 아닐까.

 

ㄹ처럼, 경토리 상2는 바흐의 평균율 위에도 국악개론의 중국 12율 중에도 없으나, 조선음악 유산의 가장 방대한 분량의 가장 핵심적인 음악적 문법성을 지탱하고 있다. 경토리 상2가 전문적인 영역 같지만, 우리가 어디까지 왔냐 하면, 대한민국의 조선음악유산 전공자들이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며, 다만, 아직도 경기소리와 서도소리의 가장 아름다운 대목에서 그 정체는, 전공자가 아니라, 네이티브들에 의해 스스로 꽃피어 있다. 지금 현재에도, 대한민국의 음악 관련 국가 기관과 주요 교육 기관이 바로 그 꽃들을 벌초하는 담당 기관이다.

 

  1. 전통음악과 국악찬송

    일반적으로 국악은 전통음악을 의미하는 용어로 통용되지만 실상은 전통음악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전통음악을 흉내 내거나 전통악기로 연주한 모든 음악 예컨대 가요, 락, 재즈, 팝 등을 내포하며 혼용된다. 이러한 면에서 국악찬송은 국악이 맞다. 정확히...
    Date2022.12.04 Views208 file
    Read More
  2. '국악'의 쓰임 | 넷째 이야기 - 다른 국악

    지난 8월에 우리는 쉬운 삶을 위해 선택된 ‘국악’을 보았다. “쉬운 것은 우스운 것과 동일시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우스움. 이 때의 우스움은 재미가 아닌, 하잘것없음을 뜻한다. 국악의 쓰임 ‘쉬운’ 국악은 ‘우스운...
    Date2022.11.02 Views112
    Read More
  3. 국악과 교육, 그리고 국악교육

    정치와 종교는 ‘실천’의 영역에서 논의된다는 점에서 다른 학문과 구분되는 경우가 있다. 최근 ‘교육’에 관한 다양한 접근 중 하나가 바로 실천적 교육, 삶의 형식으로서 교육에 관한 논의들이다. 교육적 삶을 실천하는 것, 가르침과...
    Date2022.10.03 Views111
    Read More
  4. 오른 음악, 왼 음악

    조선의 음악 전통이 카피라이트가 아니라 카피레프트인 것은 음악 자체의 속성으로부터 나온다. 카피라이트는 정확히는 사용권이고 사용권에 근거한 사용금지권이다. 사용을 금지하려면 금지의 대상을 한정해야 한다. 한정이 되지 않는다면 금지에 실패할 것...
    Date2022.09.03 Views137 file
    Read More
  5. '국악'의 쓰임 | 셋째 이야기

    “왕부터 기생의 레퍼토리까지 포괄하는 조선의 음악문화유산, 무형문화재 또는 민족주의자들의 액세서리, 교과서에 실린 음악, 트로트, 씨름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사람 능력에 비하여 좋은 대학을 보내주는 마력의 도구, 저작권이 없어서 마구 방송...
    Date2022.08.04 Views135
    Read More
  6. 대면공연 소개

    <국악이 알고 싶다> 연재 첫 번째 글로 비대면시대, <온라인 국악으로 만나는 국악공연>을 소개했었다. 그 글에서 “대면공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코로나 시대의 시대상을 반영하고자 하였으나, 불과 6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대면...
    Date2022.07.05 Views169 file
    Read More
  7. 헬조선과 경토리 상2

    조선은 정치적으로 일제에 의해 끝났지만, 사회적으로는 기독교에 의해 끝나고 있다. 그렇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의 대한민국 정체는 조선을 필요로 한다. 한국은 아직도 조선을 뒷발질로 밀어내어 전진하고 있다. 기독교만 조선을 밀어내 온 것은 아니...
    Date2022.06.02 Views206 file
    Read More
  8. '국악'의 쓰임 | 둘째 이야기

    지난 2월에 우리는 국악의 소개를 보았다. “왕부터 기생의 레퍼토리까지 포괄하는 조선의 음악문화유산, 무형문화재 또는 민족주의자들의 액세서리, 교과서에 실린 음악, 트로트, 씨름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사람 능력에 비하여 좋은 대학을 보내주는...
    Date2022.05.03 Views144 file
    Read More
  9. 거창한 제목: 국악의 본질을 찾아서

    거창한 제목: 국악의 본질을 찾아서 본질적 제목: 서울우리소리박물관 소개 2018년, 추석을 즈음하여 회자된 글 한편이 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가 쓴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라는 경향신문의 칼럼이다. 그는 “사람들...
    Date2022.04.05 Views230 file
    Read More
  10. 대화의 (불)가능성

    대화의 (불)가능성 세상에는 여러 음악이 있다. 악보가 아닌 신체로부터 출발해 완성되는 음악, 신체에서 신체로 전승되는 음악, 음의 떨림과 이동이 중요한 음악, 음색이나 텍스쳐가 중심이 되는 음악, 심지어 문학, 춤, 연극, 의례의 경계에 놓여 특정 장르...
    Date2022.03.01 Views131 file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Next
/ 2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