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에 우리는 쉬운 삶을 위해 선택된 ‘국악’을 보았다.
“쉬운 것은 우스운 것과 동일시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우스움. 이 때의 우스움은 재미가 아닌, 하잘것없음을 뜻한다. 국악의 쓰임 ‘쉬운’ 국악은 ‘우스운’ 국악이 될 수도 있겠다.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하잘것없는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이는 없을 테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상황에 놓인 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그들은 일차적으로 자신이 그 상황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며, 눈치채더라도 자신이 무엇을 통해 스스로를 그러한 상황에 놓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더 심각한 경우는 그런 상황에 있음을 알지만 그간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 두려워 철저하게 외면하는 것이다.”
이번 지면에서 또 다른 국악의 쓰임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렇게까지 국악이 뭔지 알고자 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세상 이치가 이곳에서만 특별하게 이상스럽게 돌아가는 것은 아닐 것이라 믿으며, 무언가 배울 점을 찾아본다.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존재가 자신을 포장하는 방법. (이 글은 8월 국악의 쓰임 3. 쉬운 국악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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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른 국악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국악’은 통상 떠올리는 ‘음악’(서구음악)과 비교하면 ‘다른’ 음악이다. 그저 다르기 때문에 열심히 교회에 다니며 성가대 활동을 하면서도 무당들이 부르는 노래를 감상할 수 있고, 케이팝 노래와 춤을 가장 즐겨 듣고 좋아하면서도 국악전공자의 의무를 다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게 문제인가?
국악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굳이 찾지 않아도 어디엔가 있을 테고, 없어진다 해도 별로 놀랍지 않을 만큼 이미 없어졌을 수도 있지만 모두에게 책임은 없는, 그런 것이다. 언젠가 국악이 그저 박물관에서나 들을 수 있는 음악이 된다 할지라도 그저 그런 방식으로라도 존재하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 해당 종족의 멸종으로 모두 함께 사라진다 해도, 그 사라짐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아니. 차라리 그렇게라도 의미를 가지는 편이 국악이 그저 다르다는 이유로 틀린 것이 되고 같음과 맞음의 추구를 위해 대중화ㆍ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재단되어야 하는 지금보다는 낫다.
자신이 본 국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중 하나다. 인간의 욕망에 의해 ‘쓰임’ 받게 되며 더럽혀지고 멸시의 대상이 되는 국악을 대할 때, 내가 아는 국악과는 전혀 다른 것이 국악이 되어가는 현실을 마주할 때, 서글프다. 더럽혀졌다는 생각과 그 상황에 대한 멸시는 어쩌면 내가 알게 모르게 그 행위의 주체였기 때문에 더 잘 알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어차피 나의 사랑하는 국악이 이 세상에서 욕보이게 두느니 차라리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봤자 국악이라는 이름은 쉽게 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국악은 지금까지도 그래 왔지만 그것을 ‘자신의 다름’을 위해 쓰고자 하는 누군가에 의해 계속 부활할 것이다. 언젠가 내가 보았던 그 멋진 국악은 그것을 소중히 여기던 사람과 함께 죽고 없지만, 다른 모습의 사람과 ‘국악’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찌 됐건 국악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모두 ‘국악’이라는 이름 앞에 자신의 방식대로 진심일 것이다.
“왕부터 기생의 레퍼토리까지 포괄하는 조선의 음악문화유산, 무형문화재 또는 민족주의자들의 액세서리, 교과서에 실린 음악, 트로트, 씨름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사람 능력에 비하여 좋은 대학을 보내주는 마력의 도구, 저작권이 없어서 마구 방송되어도 되는데 인기는 없음”
마지막으로 약 500년 전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의 글을 본다. 조선 성종 24년(1493), 예조판서 성현, 장악원제조 유자광 등은 왕명에 따라 악규책(樂規冊) 『악학궤범』을 펴냈고 그 서문에 자신들의 진심을 남겼다.
“무릇 재능은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음악을 아는 것도 어려움과 쉬움이 있어서, 수법에는 오묘한 사람이 절주에는 어둡거나 절주에는 능한 사람이 음악의 근원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으며, 한 부분을 아는 사람은 많으나 전체를 두루 환히 아는 사람은 대개 드무니, 심하도다, 악의 어려움이여! 좋은 음도 귀를 지나치고 나면 없어져버리고, 없어지면 흔적도 사라져 버리니, 마치 그림자가 형상이 있으면 생기고 형상이 없으면 사라져 버리는 것과 같다. 진실로 악보가 있으면 완급을 알 수 있고 그림이 있으면 악기 형체를 분별할 수 있고, 책이 있으면 시행의 방책을 알 수 있으니, 이것이 신 등이 졸렬함을 무릅쓰고 이 책을 편찬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