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 훌륭한 영화, 위대한 영화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아마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 영화를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된다는 생각을 하면 절망감이 드는 영화. 그렇다. 두 번 이상 그 영화를 볼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결코 위대한 영화라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영화는 인류가 만든 최고의, 최후의 예술이다. 다빈치가 20세기에 살았다면 그는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고, 셰익스피어가 오늘을 산다면 필시 영화 시나리오를 만들고 또한 연출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TV 드라마를 다시 찾아보지 않는 이유는 스토리를 알면 더 볼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보통의 TV 드라마의 경우 사실상 스토리가 전부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 이상이다. 스토리를 알면 더 볼 필요가 없어지는 영화는 훌륭한 영화라고 말하기 힘들다. 스토리를 알기에 그 영화를 더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마치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의 화성과 리듬을 알고 있기에 더 이상 감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나는 ‘스포일러’라는 말이 좀 우스꽝스럽게 생각된다. 물론 아주 효과적인 반전(reversal) 영화는 좀 다르겠지만 말이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1979년 영화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은 영화 역사상 가장 기념비적인 작품 중 하나이다. 위대한 영화를 꼽는 어떠한 리스트에도 이 영화는 상위에 그 자리를 차지한다. 영화의 제작 과정을 다룬 책도 여러 권 나왔고,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Hearts of Darkness: A Filmmaker's Apocalypse>, 1991)도 만들어져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이 영화에 대한 메타 콘텐츠가 등장하는 이유는 <지옥의 묵시록>이 무엇에 ‘대한’, 무엇을 ‘표현한’, 무엇을 ‘담아낸’ 영화라기보다는 그냥 ‘무엇’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그것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는 측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지만 <지옥의 묵시록>은 단순한 반전(Anti-war) 영화 그 이상이다. 도리어 이 영화에서 전쟁은 인간의 본성을 비일상적 형태로 표출하는 축제의 코드까지 함축하고 있다. 전쟁의 참상 그 자체를 드러내기보다는 전쟁이 들추어낸 인간의 왜소하고 추악하고 역겨운 본질을 Apocalypse(묵시록, 종말)란 단어를 빌려서 빚어낸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그렇기에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도 쉽게 스토리를 떠올릴 수가 없다. 이 영화를 머리로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또한 가슴이 뭉클해지기를 기대해서도 안 된다. 굳이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지옥의 묵시록>이라는 이물질(異物質)에 몸의 세포가 반응하게 내맡기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인 조지프 콘래드(Joseph Conrad)의 <어둠의 핵심>(Heart of Darkeness, 1902)은 베트남전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내용으로 아프리카 콩고의 오지로 들어가 신처럼 군림하는 유럽인 커츠(주인공의 이름은 영화에서와 같다)를 다루었다. 인간의 문명이 화해할 수 없는, 문명화된 이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압도적인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 스스로 자신의 부조리한 악마적 본성을 노출한다는 면에서 이 소설은 영화 <지옥의 묵시록>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원작을 각색하는데 열렬한 전쟁 옹호론자인 존 밀리어스(John Milius)가 참여했다는 점은 이 영화를 중층적이고 다면적으로 만드는데 일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의 감독으로 본래 조지 루카스(그는 각색 작업해 참여했다)가 물망에 올랐다고 한다. 좀 섬뜩한 느낌이 든다. 만약 그가 메가폰을 잡았다면 <스타 워즈>나 <레이더스>류의 멋진 활극을 만들어 냈을지도 모른다. 주인공 윌러드(마틴 쉰)는 비밀작전을 수행하는 뛰어난 요원이고 그의 임무는 전쟁의 광기에 휩쓸려 들어가 스스로 미쳐버린 커츠 대령(말론 브랜도)을 암살하는 것인 만큼 스릴 넘치는 액션물로 만들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미술사로 친다면 아마도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삭제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지옥의 묵시록>은 여러 개의 편집본이 있다. 칸영화제 상영본(이 영화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극장 개봉본, ‘파이널컷’이라 이름 붙인 편집본, 그리고 ‘리덕스’라고 이름 붙인 편집본 등. <대부>를 비롯한 코폴라 감독의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지옥의 묵시록>도 첫 시퀀스와 마지막 시퀀스에 감독의 온갖 정성과 치밀함이 빚어낸 밀도 높은 장면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지옥의 묵시록>에서 코폴라는 영화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할지를 놓고 우왕좌왕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건대 이 영화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가는 사실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지옥의 언저리를 맴돌았다는 체험만으로도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커츠 대령이 어둠 속을 어슬렁거리면서 들릴 듯 말 듯 읊조리는 T. S. 엘리엇의 시 <공허한 사람들>의 시작과 끝을 소개한다.(이 엘리엇의 시는 다른 문학 작품과 영화에서도 종종 인용되곤 한다.)
우리는 공허한 사람들
우리는 박제된 사람들
모두 기대고 있으며
머릿속은 짚으로 가득 찼다
슬프다, 우리의 메마른 음성은
우리가 함께 속삭일 때조차
마른 풀잎을 스치는 바람처럼 건조한 지하실
깨진 유리 위를 달리는 쥐들의 발자국처럼
소리도 의미도 없다.
………
인생은 길다
욕망과 충동 사이
발생능과 존재 사이
본질과 그에서 파생된 것들 사이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왕국은 그대들의 것
그대의 삶은 그대의 것
세상은 이렇게 끝나는구나
세상은 이렇게 끝나는구나
세상은 이렇게 끝나는구나
쾅 소리가 아닌 훌쩍임과 함께
로로(길목 조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