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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에서 6편을 보다!

posted Oct 0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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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ness.jpg

 

<증인>

- 춤은 여성의 해방을 상징하는 몸짓

나데르 사에이바르 감독, 2024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모흐센 마흐말바프

바흐만 고바디

아스가르 파르하디

자파르 파나히

등등등.

 

이란의 대표적인 감독을 꼽자면 어떤 의미에서 한국보다 많다는 느낌이다. 한국에서 군사독재 시절 대부분의 영화가 멜로나 호스티스, 고전적인 문학작품으로 명맥을 이어갔지만, 여전히 권위주의 국가인 이란의 감독들은 명백히 사회적 리얼리즘으로 저항정신을 품고 있고 그래서 고단하게 작품 활동을 해야 한다.

 

어린이에서 출발하여 심리적이고 철학적인 영화를 만드는 키에로스타미, 서구적인 중산층의 딜레마를 다루는 파르하디에 비해, 최근 가장 활발하고 크게 주목받는 파나히는 직접적으로 저항정신을 담아내며 국제 영화제를 휩쓸지만 이란 정부의 탄압으로 외국에 나가지도 못하며 작품 활동도 극히 제한되지만 그런 와중에도 어떻게든 작품을 만들어 낸다. 가히 게릴라 영화라고 할 만하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 소개된 <증인>(The Witness)은 비교적 알려지지 않았던 사에이바르 감독 작품이지만 파나히가 시나리오를 썼다. 다른 이슬람 국가에 비하면 비교적 느슨하지만 여전히 강압적인 이란 여성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고발한 영화다. 어떤 의미에서는 영화를 투쟁의 무기로 삼았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영화가 쉽게 빠지기 쉬운 촌스러운 정형화가 아니라 보편적인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탄탄한 구성으로 짜여있다.

 

춤을 여성의 해방을 상징하는 몸짓으로 형상화한 것은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폭력(응징=살인)' 대신 춤으로 저항을 대체한 상징적 묘사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폭풍이 불어오고, 대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집을 둘러친 가림막이 쓰러져 내리는 묘사는 '상징'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왠지 촌스러운 느낌이 든다.

 

 

 

Grey_bees_1.jpg

 

<회색 벌들>

- 회색지대 사람들의 정체성

드미트로 모이세예프(Dmytro Moiseiev) 감독, 2024

 

부산국제영화제에 와서 돌아다니니 부산 방언을 쓰는 사람을 그 말투로 단박에 알 수가 있다. 아마도 <회색 벌들>(Grey Bees)을 보는 우크라이나 사람은 두 명의 주요 등장인물이 그들의 말투만으로 한 사람은 러시아 출신이고 한 사람은 우크라이나 출신임을 금방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관객은 이 두 사람이 가까운 이웃이면서 왜 처음부터 무뚝뚝한지를 알려면 좀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2022년에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기 한참 전인 2014년부터 도네츠크 지역을 중심으로 사실상 전쟁 중이었고 그때는 우크라이나 군과 친러 민병대간의 전투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영화의 내용에 대한 상황판단하기가 좀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우크라이나의 국기를 모른다면 마지막 장면의 의미를 완전히 놓치고 말 것이다. 러시아 출신의 도네츠크 거주민인 양봉업자 주인공이 자신의 누리끼리한 벌꿀을 파란색 대문의 하단에 문질러서 우크라이나 국기를 만드는 장면 말이다. 그런데 사실 이 마지막 장면이 문제다.

 

그전까지는 민족적 정체성이 사람의 행동거지를 제약하지만 그래도 이웃이라는 또 다른 정체성이 미묘하게 작용하는 다소 얽힌 플롯으로 영화가 전개되는데 영화의 마지막에 특별한 설명이나 계기도 없이 주인공이 우크라이나 정체성으로 커밍아웃함으로써 영화가 갑자기 '선전영화'가 되어버렸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만 객관적으로는 좀 뜨악한다.

 

 

 

April-Main-2024.jpg

 

<4월>

- 임신에 대한 자기 결정권

데아 클룸베가쉬빌리(Dea Kulumbegashvili) 감독, 2024

Metacritic Score - 89

Rotten Tomatoes Score -93

 

영화의 첫 장면은 살이 축축 늘어지고 얼굴도 알아볼 수 없게 뭉개진 흉측한 여성이 전라의 모습으로 모든 배경이 검은색이고 발아래는 축축한 물이 고인 장소에서 아주 느릿느릿 몸을 움직인다. 두 번째 장면은 여성의 성기가 그대로 노출된 상태에서 아이가 비집고 나와 태어나는 '실재' 장면이다. 불행히도 아이는 죽었다.

 

이 두 장면만으로도 감상하기가 만만치 않은 영화임을 느끼게 한다. 조지아의 젊은 여성 감독 쿨룸베가슈빌리는 첫 번째 장편영화 <비기닝>(2020)으로 일약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예술영화의 대표적인 감독인 헝가리의 벨라 타르 감독과 멕시코의 카를로스 레이가다스 감독을 연상시켰다. 한 컷이 1~5분 정도 되는 롱테이크, 사실상 1 Scene 1 Cut으로 편집의 최소화, 카메라의 움직임의 최소화, 그러나 카메라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핸드헬드 촬영, 그리고 무엇보다 종교적 분위기가 비슷했다. 그러나 <비기닝>은 어떤 영적인 탐색이 아니라 여성에게 가해지는 종교적 억압을 담았다.

 

그리고 이번 영화 <4월>(April)은 본격적인 여성영화로 벨기에의 샹탈 애커만의 전설적인 수작 <잔느 딜망>을 호출하기에 충분했다. 다행히 3시간 20분의 <잔느 딜망>에 비해 2시간 남짓한 길이지만 플롯의 전개는 너무나 단순하고 간혹 영문을 알 수 없는 추상적인 화면이 등장하여 2~3분 지속되니 감상하는 동안 몸이 뒤틀리기 일쑤이고 간혹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떠도 화면이 그대로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와 그것을 표현하는 화면은 쉽게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미세한 움직임의 핸드헬드는 이런 아트하우스 영화의 전매특허이다. 카메라가 단단히 고정되거나 피시체를 미끈하고 재빠르게 따라가는 일반적인 대중영화는  관객의 '몰입'을 극대화한다. 관객은 카메라의 존재를 잊고, 영화를 보는 '나'라는 주체도 잊어 두뇌는 후두엽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다. 그러나 카메라가 미세하게라도 흔들리면 관객은 본능적으로 카메라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영화를 보는 주체인 '나'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 몰입이 아니라 관찰, 대면, 사색, 비판 등이 작동하게 되어 뇌의 전체가 활발하게 작동한다. 잠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 <4월>이나, <잔느 딜망>, <토리노의 말>과 같이 어찌 보면 지루하기 그지없는 영화들이 쉽사리 잊히지 않는 것이다. 무작정 지루한 영화와 이러한 영화의 차이는 작가의 상상력과 주제의식이 얼마나 충실하게 영화 속에 발현되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의 2007년 영화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여성인권의 시각으로 낙태의 문제를 다룬 최고작 중의 하나이지만, <4월>은 그 이상이라고 생각된다. 이 영화는 낙태 문제뿐만 아니라 누군가는 해야 할 불법적인 낙태수술을 하는 산부인과 여성 의사의 주체적인 삶, 그리고 임신에 대한 자기 결정권, 남성에 의한 성폭력의 문제들까지 복합적으로 관객의 사고를 견인한다.

 

영화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매우 비호감적인 늙어 보이는 여인은 영화의 중간에도 여러 번 등장하고 특히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기도 하는데 이들 장면과 그 여인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무척 애매하고 보는 이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할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산부인과 의사인 주인공의 내면, 추상화된 실체, 미래, 고립된 심리상태 등등. 그리고 이 영화의 제목이 왜 <4월>인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그냥 이 영화의 스토리가 4월에 전개되기 때문일까?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Harvest-Main-2024.jpg

 

<하베스트>

-인간-자연-공동체-배타성

아티나 레이첼 창가리 감독, 2024

 

<랍스터>, <킬링 디어> 등의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와 함께 동시대 그리스 뉴웨이브 감독으로 주목받는 아티나 레이첼 창가리(Athina Rachel Tsangari) 감독의 <하베스트>는 앞서 만든 <아텐버그>(2010), <슈발리에>(2015)에 비하면 평범한 작품으로 보인다.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브뤼헐의 리얼리즘 풍속화이면서도 교묘한 구도와 세밀한 묘사로 마치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인 듯한 작품이 <하베스트>(Harvest)이다.

 

농지를 수입이 좋은 양목장으로 만들어 토지에 부착된 농민 공동체의 삶을 파괴한 영국의 엔클로저 운동을 기본 골격으로 삼아 영화가 전개되지만 엔클로저 운동을 고발하는 '역사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감독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토지에 부착된 농민의 삶이란 어떤 것이었던가, 그로 인해 형성된 공동체는 또한 무엇이었으며 그런 공동체에 깊숙이 배태된 잔혹할 정도의 배타성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떠나 비역사적인 공간을 상정하고 인간-자연-공동체-배타성으로 이어지는 삶의 존재론적 본질에 질문한다고 볼 수가 있다.

 

한 가지 엔클로저 운동을 위해 고용된 (발음으로 보아 프랑스인으로 보이는) 흑인 지도 제작자의 등장과 역할은 자못 흥미롭다. 불행히도 그는 이 모든 불행을 가져오는 마녀로 여겨져서 죽임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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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w856.jpg

<토요일, 아빠는 먼 길을 떠났다>(Dad Croaked on Saturday)

자카 압드라흐마노바(Zaka Abdrakhmanova) 감독, 2024, 카자흐스탄

 

 

image-w1280.jpg

<사바의 좁은 세상>(Saba)

막수드 호사인(Maksud Hossain) 감독, 2024, 방글라데시

 

 

그외에 부산에서 카자흐스탄 영화 <토요일, 아빠는 먼 길을 떠났다>, 방글라데시 영화 <사바의 좁은 세상>을 보았다. 두 편 모두 좋은 영화, 착한 영화, 재미있는 영화였다. 하지만 영화적으로는 평범한 영화로 스토리 그 자체를 감상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영화였다.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두 나라의 영화를 보게 된 것으로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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