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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최후의 밤> 외 5편을 봤네

posted Nov 0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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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최후의 밤>

- 꿈과 기억의 교향곡

필감(비간) 감독, 2018

Metacritic Score - 88

Rotten Tomatoes Score -93


필감 감독의 <지구 최후의 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10편의 영화에 들게 될 것이 분명하다.


도대체 스토리를 따라가기도, 나중에 재구성하기도 어려운 이 영화는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분위기에 취하는 것만으로 족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제 3번째로 이 영화를 보았지만 여전히 플롯을 정확히 알지 못하겠다. 결국 위키피디아가 정리한 플롯을 읽어보았지만, 휴~~ 여기에도 오류가 여기저기 보였다. 그래서 결국 영화를 여기저기 앞으로 뒤로 돌리며 자세히 살펴보았다.


<화양연화>의 경우 플롯과 시간을 따라가려면 장만옥이 입은 옷과 여러 소품들까지 정신 바짝 차리고 보아야만 가능하다. 그러니 한두 번 봐서 모든 내용을 정확히 알기가 힘들다. <지구 최후의 밤>은 이보다 더한 경우이다.


일단 이 영화는 거의 정확히 반반으로 전반과 후반으로 나뉘는데, 전반은 '기억'이고 후반은 '꿈'이다. 전반은 시간이 마구 뒤섞여 있어서 주인공 뤄홍우의 머리카락(검은 머리인지, 새치가 있는 머리인지)과 구레나룻을 보면서 대략 10년쯤으로 생각되는 시간상의 전후를 구분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뤄홍후가 탕웨이를 만나 사랑하게 되는 시간대와 사라진 탕웨이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는 시간대를 분명히 구분해야 조금이라도 스토리를 제대로 구성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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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후, 새치가 있는 머리카락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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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검은색 머리카락의 주인공



그런데 이러한 정교한 관찰에도 불구하고 앞뒤가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불로 그을린 주인공 어머니의 사진이다. 이 사진을 주인공이 손에 넣은 것은 10년 후 아버지의 죽음 이후인데 어찌 된 일인지 10년 전 탕웨이를 만났을 때 주인공은 탕웨이에게 이 사진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해 보려고 씨름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아마도 감독은 영화의 전반부가 '기억'이기 때문에 잘못된 기억을 일부러 넣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중요한 키포인트 중 하나는 주인공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기억)이다. 그녀는 애인과 함께하던 공간에 불을 지르고 애인과 함께 어린 주인공과 남편을 버리고 떠난 것으로 보인다. 이 기억은 주인공의 심리에 강력하게 남아 있어서 탕웨이와의 관계에 침투해 들어온다. 그래서 후반부의 꿈에서도 주요한 시퀀스를 구성한다. 그 외에도 살해된 친구에 대한 기억 또한 중요한 요소이다. 위키피다아의 플롯 설명에는 친구의 죽음이 주인공에게 일정한 책임이 있었던 것으로 설명되는데 그것이 그럴듯한 설명인 것은 분명한데 영화에 어떻게 표현되는지 나는 확인하지 못했다. 아마도 5~6번을 보게 되면 눈에 들어올지도 모르겠다.


영화에는 상징적인지 기억의 파편인지 모르겠지만, 탕웨이의 손목시계, 자몽, 사과, 총, 탁구, 초록색 책, 빙빙 도는 방 등이 키포인트로 등장하는데 이들 여러 요소들의 정확한 의미와 자리해야 할 위치를 파악하려면 애를 써야 한다.


자~~ 여기서부터가 더 중요하다. 영화의 거의 정확히 반이 지나면 영화의 제목이 등장한다. 그리고 후반부로 넘어가는데 이것은 59분 동안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이어지는 '3D 리얼 원 테이크'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시간이 왔다갔다 할 이유가 없고 실시간 59분이지만 사실 꿈이기에 시간 자체가 의미가 없다. 놀랍게도 영화의 후반부는 3D로 촬영을 하였기에 영화관에서 관람하지 못하면 그 맛을 제대로 만끽하기가 힘든다. 주인공이 포르노 영화관에서 3D 안경을 쓰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이때 실제 영화관의 관객은 3D 안경을 쓰면 된다. 이 부분만큼은 약간의 미소가 감돌만큼 친절하다. 여기서 '리얼 원 테이크'라고 한 이유는 샘 멘데스 감독의 2019년 영화 <1917>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2014년 영화 <버드맨>의 경우에는 영화 전체가 하나의 롱 테이크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중간중간 관객이 눈치채기 어려운 순간에 테이크가 나뉜다. 물론 '리얼 원 테이크' 영화도 종종 있지만 <지구 최후의 밤> 후반부의 롱테이크처럼 유려하고 효과적인 경우는 찾기가 힘들다.


이 59분은 꿈이기에 주인공의 무의식에 알알이 박힌 기억들이 부분적으로 선명하게 되고, 과장되기도 하고, 뒤틀리기도 한다. 사과를 파는 친구가 말에 실은 사과를 길에 마구 떨어뜨리는 장면은 친구를 돕지 못한 주인공의 죄책감이 고스란히 표현된다. 애인과 함께 도망치려는 주인공의 어머니를 돕는 장면은 주인공 무의식에 깊이 파인 어머니에 대한 애증이 깔려 있고 어머니를 용서하고 싶은 심리가 담겨 있다. 톡톡 튕기면서도 주인공과 가까워지는 꿈속의 탕웨이는 전반부의 기억 속의 탕웨이와 유사하지만 어쩐지 멀어져만 갈 것 같은 거리감은 주인공이 품은 탕웨이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다. 그리고 탁구를 치는 어린 소년은 영화 전반부에서 탕웨이가 주인공의 아이를 임신했다가 몰래 지웠다는 이야기의 변조된 연장인데, 태어나지 못하고 죽은 아이에 대한 주인공의 아련한 아픔이 담겨 있다.


파편화된 '기억'과 그것에 무의식이 개입되어 변조된 '꿈'으로 구성된 이 영화의 치밀한 구성과 영화 전체를 감싸는 형언하기 힘든 분위기는 이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앞으로 또 몇 번이나 이 영화를 보게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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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Mr. 폭스>

- 호감가지 않는 스타일리스트

필감(비간) 감독, 2018

Metacritic Score - 83

Rotten Tomatoes Score -93


1~2분 정도 카메라의 움직임과 흘러나오는 철학적 대사로 그 영화의 감독을 금방 알 수 있는 사람은 <씬 레드 라인>, <뉴 월드>, <트리 오브 라이프> 등을 만든 테렌스 맬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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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렌스 맬릭 감독의 <트리 오브 라이프>



단 10초 동안만 밝고 미묘한 색감과 공허한 미장센만으로 그 영화의 감독을 알 수가 있는 사람은 <2층에서 들려오는 노래>, <비둘기, 가지에 앉아 존재를 성찰하다>, <끝없음에 관하여> 등을 만든 스웨덴의 로이 안데르손이다. 아니 이 감독은 영화의 제목만 보아도 알 수가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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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안데르손 감독의 <2층에서 들려오는 노래>



약 1분 정도 카메라가 잡아내는 독특한 구도만으로도 충분히 그 감독을 알 수가 있는 경우는 <문라이즈 킹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프렌치 디스패치> 등을 만든 웨스 앤더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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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 감독의 <프렌치 디스패치>



앞의 두 감독은 내가 좋아하지만 웨스 앤더슨은 왠지 애정이 가지 않는다. 굳이 그 이유를 말하라면 그의 영화에는 메시지가 없기 때문이다. 웨스 앤더슨은 좀처럼 '대칭 구도'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마치 대칭이 깨지면 영화가 망가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실 그의 대칭에 대한 사랑은 특별한 메시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영화 전체가 즐거운 스토리와 정교한 플롯 이외에는 어떤 메시지도 가지지 않는 것처럼. 웨스 앤더슨은 철저한 형식주의자이다.


2009년 애니메이션 영화 <판타스틱 Mr. 폭스>를 보았다. 이 영화에서도 웨스 앤더슨의 트레이드마크는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대칭의 형식미와 공허한 무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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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 감독의 <판타스틱 Mr. 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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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여자 주인공>

- 연쇄살인마의 공범들

안나 켄드릭 감독, 2023

Metacritic Score - 76

Rotten Tomatoes Score -91


이 영화의 원제는 "Woman of the Hour"이다. 영화는 1970년대 여성의 상황에 대한 고통스러운 고발을 담고 있다. 그러니 한글 제목은 엉뚱한 번역이다. 제대로 한다면 "그 시절의 여성"쯤이 적절할 것이다.


이 영화는 실화에 기반한 영화다. 여성들은 연쇄살인마에 하릴없이 당한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 당하는 여자들의 어리석음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여성들이 당하게 되는 사회적 관계망에 주목하지 못한다면 미친 살인마와 허세에 쉽게 유혹되는 여성만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를 만든 안나 켄드릭 감독은 피눈물 나는 심정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데이트쇼의 진행자와 연쇄살인마와 피해 여성들의 신고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경찰은 모두 공범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그물망을 영화를 통해 제대로 보지 못하면 나도 잠재적 공범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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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쥬스 비틀쥬스>

- 팀 버튼류의 위대한 상상력

팀 버튼 감독, 2024

Metacritic Score - 62

Rotten Tomatoes Score -77


<비틀쥬스>

팀 버튼 감독, 1988

Metacritic Score - 71

Rotten Tomatoes Score -86



캘리포니아 예술대학교(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 CalArts)는 종종 "팀 버튼이 나온 대학"으로 소개되곤 한다. 그만큼 팀 버튼이 구축한 "상상하기 힘든 상상력"의 영화들은 영화사에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보통 팀 버튼의 등장을 알리는 영화로 <가위손>과 <배트맨> 등을 생각하기 쉽지만 그를 세상에 알린 첫 영화는 <비틀쥬스>(1988)이다. 이 영화는 적은 제작비 때문인지 지금 보면 매우 촌스러운 컴퓨터 그래픽이 눈에 띄지만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상상력의 세상은 그 후 팀 버튼의 모든 영화에 스며들었다고 할 수 있다.


30세에 <비틀쥬스>를 만든 팀 버튼은 무려 36년 후에 <비틀쥬스 비틀쥬스>를 속편으로 내놓았다. 팀 버튼만 늙은 것이 아니었다. 1편에서 깜찍한 청소년으로 등장했던 위노나 라이더는 중년이 넘은 나이가 되었고, '비틀쥬스'의 역을 맡은 마이클 키튼은 완전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2편에서 그 역 그대로 등장하며 영화사에 전무후무한 36년 만의 2편 제작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 영화는 유령영화다. 그러나 공포영화는 아니다. 흔한 유령영화와는 비교하기 힘든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사실 <비틀쥬스 비틀쥬스>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36년 전의 영화 <비틀쥬스>를 찾아봐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2편이 1편에 비해 더 잘 만들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컴퓨터 그래픽은 놀랄 만큼 유려해졌지만 상상력은 새로운 점이 딱히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최근 10년간의 팀 버튼 작품들(<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덤보>)에 실망하던 차에 '재탕'이긴 하지만 팀 버튼스러운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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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색깔: 레드>

- 폴란드판 연쇄살인 영화

아드리안 파네크 감독, 2024


영화의 포스터에 피해 여성의 입을 검은색으로 가린 이유는 실제 영화 속의 이미지가 너무나 끔찍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특별한 점이 있다면 바로 그 끔찍한 이미지, 연쇄 살임마의 도착적인 행동뿐이다.


물론 스토리와 영화의 전개는 제법 흥미롭고 긴장감을 잘 끌고 나간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자면 흔한 연쇄살인 영화의 폴란드판이라고 하겠다. 꿋꿋한 젊은 검사의 행보는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기는 하지만 말이다.


근데 조금은 인위적으로 생각되는 영화 마지막의 반전이 굳이 필요했던 것일까? 물론 반전의 내용은 흥미로운 점이 있지만 영화의 품격을 떨어뜨린다. 자본주의화된 폴란드의 현 모습을 담아낸 것일까? 그건 잘 모르겠다. 그냥 틀어놓고 자도 된다는 생각으로 넷플릭스 영화를 보곤 하지만 늘 후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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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

- 왜 그랬니? 박찬욱!

김상만 감독, 2024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이 영화를 감상한 후에 2024년 개막작으로 정한 것일까? 정말 의심이 든다. 그냥 박찬욱 감독이 제작과 각본에 참여했다는 말만으로 선정한 것은 아닐까?


이 영화를 본 후에는 이런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영화를 보기 시작한 지 10분이 지났을 때쯤, 이건 무슨 TV 드라마 수준의 연출에 뻔한 스토리가 직감적으로 들었다. 그래도 뭔가 있겠지, 하고 꾹 참으면서 봤다. 40분쯤 보고 나니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뒤가 궁금하지 않은 스토리, TV 사극 드라마보다 못한 연출, 갑작스럽게 1:100 검술 대결이 펼쳐지는 싸구려 중국식 시퀀스, 어울리지 않는 차승원의 코믹 연기.


격 떨어진다. 부산국제영화제!

왜 그랬니? 박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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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로(길목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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