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은 심심풀이 안주일 뿐, 상황을 바꿀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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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전에 한쪽지기를 하늘 길로 떠나보낸 후, 홀로 팔순을 넘기신 노모께서는 범접할 수 없는 스킬 한 가지를 가지고 계시다. 그건 어떤 대화든 본인이 집중하시는 주제로 연결시키기 신공!
'어머니, 건강은 좀 어떠세요?'
'건강, 내가 좋을 일이 뭐가 있다고 건강하고 그러겠냐? 네 형은 그 나이 먹도록 장가도 못 가고, 너는 결혼 한지 십 년이 넘도록 애도 없고, 내가 조상들 볼 낯이 없구나. 에휴.......'
'네, 네(화제전환 암시 건성 대답), 그나저나 이제 곧 입춘이네요. 엄청 춥더니 봄이 오긴 오려나 봐요.'
'그렇지. 때가 되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게 인생사 이치니까....... 그런데 우리 애들은 왜 남들이 다 밟아가는 인생사 이치를 몰라라 하는지 원, 네 형은 그 나이 먹도록 장가도 못 가고, 너는 결혼 한지 십 년이 넘도록 애도 없고, 내가 조상들 볼 낯이 없구나. 에휴.......'
'아이고 네, 네(강력저지 염원 대답), 오늘 오후엔 복지관에 가시죠? 오늘이 서예 하는 날인가요?'
'오늘이 목요일이니 서예 하는 날 맞네. 내가 붓글씨를 쓰면서 무슨 생각하는지 아니? 네 형은 그 나이 먹도록 장가도 못 가고, 너는 결혼 한지 십 년이 넘도록 애도 없고.......'
형의 결혼과 우리 가정의 출산을 독려해야 되겠다고 마음먹은 듯, 재작년부터 어머니는 안부전화나 뵙게 될 때, 수산시장 활어처럼 라임이 살아있는 말씀을 래퍼이신 양, 본인의 신공을 전가의 보도처럼 쓱쓱 시전 하신다.
이 같은 대화가 이어지다 보면 대개 웃고 말지만, 때론 지치거나,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내게 되기도 한다. 80년이 넘는 내공을 넘어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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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말씀에서는 평소 가지고 계신 생각.......을 넘어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는 선입견을 발견하게 된다. 그건 '성인사람이란 이성애 중심적 결혼을 통해 출산을 해야 한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것 같다. 이 대전제에 대해선 내가 아는 한, 삶에서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는 이 확고부동한 입장은 어머니에게 있어 상황과 정보에 대한 준거 틀로 작용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아무리 교황성하께서 훌륭한 분이라 해도, '결혼도 못해 본 사람은 어른이 아니'므로 한계가 있고, 이혼율이 높아지는 것은 '가정의 위기를 극복하게 해 줄 아이'를 낳지 않기 때문이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드 '고독한 미식가'는 결혼도 안 한 것 같은 남자가 청승맞게 혼자 밥 먹고 있어서 보기 싫고, 같은 의미에서 송은이, 김숙, 이영자 등 비혼 연예인들이 떼로 나오는 프로그램 역시 어머니에겐 '별로'다.
비단 어머니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선입견은 이처럼 무언가를 분명하고 강력하게 판단할 수 있게 해 주는 반면, 그 판단의 비합리성이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점차 선입견을 확고부동한 '사실'로 믿게 되는 문제점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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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청소년 혹은 그 집단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어떨까? 중2병자, 말이 통하지 않는 존재, 인간과 비슷한 어떤 생명체, 성평등 인식 결여집단 등등.......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특히 사회적 진보를 지지하는 이들 중 많은 경우에 이 같은 판단 어디엔가 위치하지 않을까 한다. 현실적으로,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은 디지털 성범죄의 가해자들, 한국사회에서 흔히 신 보수 세력으로 명명되는 소위 '이대남' 등 상기와 같은 선입견에 이르는데 충분함직한 사건과 이야길 접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선입견은 확고한 입장정리에 도움이 될 순 있지만, 현실을 바로 인식하게 하는 데는 어려움을 끼치는 것이니! 판단 전에 우리가 남자청소년을 바로 알고자 하는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에 내몰린 채 청소년시기를 맞이한 이들, 아무리 발버둥 쳐 본들 이전 세대보다 가난할 것이 자명한 세대, 더 나아지긴 어려우니 주어진 것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몰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 '돈 많고 힘세고 강한 것이 남성이자 가장'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주입받았으되, 이를 실현할 방법도 가능성도 없는 존재들.......
사실 이 같은 문제의 근원은 대부분 이 살인적이고 비정한 사회를 공고히 해온 기성세대들의 문제가 아니던가? 아주 어릴 적부터 울거나, 말수가 적거나, 많이 웃거나, 조곤조곤 말을 잘하거나 아무튼 '터프'하지 않은 모든 행동이 눈에 띄기만 하면, '남자답지 못하게', '여자애 같이'라는 말을 들었던 이들에게 정상적인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 아닐까? 아버지와 같아야 한다고 배웠지만 정작 그 삶은 아버지를 따를 수 없는 이들에게 그 아버지의 사회가 이상한 생명체 취급하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이 아닐까? 그들을 이대남으로 규정하며 동일연령의 다른 성과 갈라치기를 한 것도 정작 본인들이 아니라 이를 정치세력으로 이용하려는 기득권세력들, 즉 '어른들'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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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면죄부를 주자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앞선 이유들이 모든 것의 이유라고 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너무 쉽게 피아를 구분하는 방식, 선과 악의 구도 속에서 특정 연령대의 특정 성을 모두 싸잡아 손쉽게 불의한 존재로 규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보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성/평등교육 현장에서 적지 않은 남자청소년들은 저항하고 무시하려든다. 그런데 또한 많은 경우 그 같은 참여인들의 질문에 답을 해 나가는 동안 그들은 점차 집중하거나, 자기가 가졌던 생각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사실 강의 시간 내내 '섹스'라는 단어를 중얼거리는 참여인을 보면서는 '한 대만 쥐어박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해 보면 어떨까 한다.
① 이후 세대에 대해 부정적 생각이 든다면 단정하기 전에 알아보자.
② 또 이후 세대에 영향을 끼쳐왔던 이전 세대의 문제를 먼저 짚어보자.
③ 남자청소년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해 보자.
선입견은 심심풀이 안주일 뿐, 상황을 바꿀 순 없다. 대한민국이 지금보다 좀 더 성평등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내가 지닌 선입견을 직시하고 그 해체를 시작해 보는 것이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