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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연재-終] 고상균의 男다른 성교육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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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의 친구

posted Apr 1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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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호수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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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쌤은 페미예요?

 

필자가 속한 '남다른청소년성교육연구소'(이쯤에서 '왜 연제 제목이 男다른 성교육인가 했더니 결국 자기가 속한 단체 홍보였고만!'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듯! 사실 맞다!)는 2년 전부터 자체 개발한 중학교 1・2학년 남자청소년 성/평등교육프로그램을 이용한 강의를 학교현장에서 진행하고 있다. 한정된 시간 동안 중요한 내용을 다뤄야 하니 참여인들의 집중력을 유지할 교육학적 방법론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지만 아무튼 그런 게 많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전체 4차시로 구성되어 있는 프로그램은 남자상자 만들기, 텔레파시 게임, 욕구피라미드 만들기, 나의 이상형 찾기와 만나기, 대화와 의사소통 실습 등이 모두 참여인들의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뭐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딱딱한 강의가 아니기에 대부분은 참으로 황감하게도 흥미 있게 참여해 주는 편이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라는 식으로 자지! 자지! 자지!를 나직이 되뇌거나 전 쉬는 시간부터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참여인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강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주제, '당신도 페미니스트가 아닐까요?', '세상을 바꾸는 페미니즘' 얘길 꺼낼라치면 훈훈하던 분위기가 일순간 바뀌는 것을 느낄 때가 적지 않다.

 

2

 

적의? 의구심? 실망? 뭐라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그 분위기에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기지 않나 싶다.

 

결국 페미니즘 약 팔러 온 것이고만.......

왜 남자가 페미니즘을 말해? 그건 여자들만 관심 있는 거 아닌가?

 

한 세기가 넘게 진행되었던 프랑스대혁명 동안 사회적 분위기가 늘 진보하지 않았다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 시민의 권리가 크게 대두되는가 하면 갑자기 독재 권력에 의해 과거로 회귀하는 등 사회적 진보는 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곤 한다. 성 평등을 향한 걸음도 그럴 것이다. 미투, 페미니즘 리부팅과 같은 노력과 성찰로 어렵사리 한 걸음 뗄라치면 역차별, 잠재적 가해자 이데올로기 등으로 중무장한 남성연대에 의해 역풍을 맞는다. 그 와중에 '페미는 나쁜 X', '페미니즘은 여자우월주의', '페미는.......뭔지 모르지만 암튼 나빠'와 같이 근거도 내용도 부실하지만 입에 착 붙고 힘이 강한 구호는 남초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넘실거리고, 급기야 페미니즘을 명분으로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이들까지 등장하게 되면서 그야말로 페미니즘이 참 억울한 시대를 지나고 있다. 강의현장에서 만나는 남자청소년들이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보이는 반응은 이 같은 상황의 방증일 것이다. 물론 여가부 폐지론에 진심인 남자청소년 대다수는 게임접속을 어렵게 했던 것에 대한 분노로 친다 하더라도 말이다. 게다가 소위 기성정치권에서 '이대남'을 운운하며 후기남자청소년들을 서로 자신들의 정치적 홍위병으로 만들기에 급급하니 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

 

3

 

그러나 아무리 추워도 봄은 오듯(뭐 사실 요즘엔 봄이 너무 빨리 와서 걱정이긴 하지만 아무튼!) 현장을 지키며,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나가다 보면 작은 숲길이 열리고, 그리 시작된 길을 통해 사회는 또 한 발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 믿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의구심 감도는 얼굴로 쳐다보는 참여인들을 향해 말한다.

 

청소년인권이 존중받는 학교, 인권을 보장받는 군대, 적어도 성별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 세상에 동의한다면 여러분은 이미 페미니즘의 많은 부분을 공감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페미니즘은 여성, 여성이슈로 대표되는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고민하고 이의 해결을 통해 삶의 자리가 더욱 평등하게 될 것을 희망하는 생각입니다.

 

교육 후 받는 설문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적혀있다. 소수긴 하나 '강사가 정해진 답을 향해 우리는 너무 끌고 가려해서 기분 나쁘다'와 같이 부정적 답변도 여럿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페미니즘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남자다움이 아니라 사람다움, 나다움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남자에게도 페미니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등과 같은 느낌을 전해준다, 엄청 보람이 차오르고 수 시간의 힘듦이 싹 씻겨가는 순간이다. 어느 날은 강의가 끝나고 정리 중인 내게 다가와

 

그래서 쌤은 페미예요?

 

라고 묻는 참여인이 있었다. 짧지만 어려운 질문이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물어봐 준 그 이가 참 고마웠다. 그리고 나는 평소의 내 생각을 말했다.

 

페미니스트? 음....... 솔직히 나는 감히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진 못하겠어요. 잘못한 것도 많고 더 달라져야 할 것도 많으니까요. 하지만 이렇게는 말하고 싶어요, 나는 페미니스트의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고요. 그래서 소중한 생각과 활동을 이어가는 이들이 외롭지 않도록 주변에서 열심히 소리를 내는 사람, 연대인이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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