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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체 너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간혹 반농반진으로 내게 하셨던 질문이었다. 뭐 생각해 보면 그리 물어보시는 것이 당연했지 싶다. 생전, 목사와 무엇이 다른 것인지 끝내 이해하기 어려워하셨던 '준목'이라는 직책도 그러거니와,1) 교회에서 일한다는 인간이 거리에서 뭘 하다가 경찰서 유치장에 있었다질 않나, 또 성소수자 무슨 단체를 만들었다고 하질 않나, 아 맞다! 생계 때문에 얼마간은 입시학원에서 논술과 첨삭지도 알바를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청소년기까지 감리교회를 다니셨던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였던 아버지는 목사인 듯 목사 아닌, 교역자인지 활동가인지 애매모호했던 그 당시의 나를 이해하긴 쉽지 않으셨을 것이다. 거기에 애당초 큰돈 버는 건 바라지도 않으셨지만, 좀 자리를 잡고 안정적으로 살길 바라셨던 마음이 더해진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자그마치 십 년이 흘렀건만,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여전히 저 질문을 들을 법한 삶을 살고 있으니, 문득 이건 질문을 넘어 예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최근 수년 동안의 삶을 아신다면 이 질문이 더해질 듯싶다.
'남자청소년성교육? 아이고! 그건 또 너랑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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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N번방 사건'으로 명명되었던 디지털 성폭력이 사회에 큰 충격을 몰고 왔던 2020년 봄....... 평소 월 1회 오전에 만나 김밥을 나눠먹던 성평등운동 활동가들 사이에선 깊은 절망감을 뚫고 '뭔가 해 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공감대가 일었다, 그들 사이에서 언제나 그렇듯 남은 김밥 한 줄을 더 오물거리며 그 치열한 활동이야길 휘둥그레 뜬 눈으로 듣고만 있던 나는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그 자리의 결의로 시작한 남자청소년성교육연구소 창립모임에 참여하고 있었던 거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제비의 실상 역시 나처럼 '우와 멋지다!' 이러면서 넋을 놓고 있다가 양쯔강 이남이나 베트남까지 간 게 아닐까?
아무튼 그로부터 지금까지 시민사회단체, 청소년성문화센터, 학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분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면서 프로그램 개발, 연구소 출범과 할 일 구상 등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회의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와 함께 중학교 1-2학년 남자청소년 성/평등교육 강의안을 개발한 2019년 후반기부터 매해 서울 소재 남자 중학교에서 성/평등교육을 진행하고 있고, 이를 위한 강사 앙성 및 성평등 활동가 워크숍 등을 시행했다. 성/평등교육계에서 '남자청소년'은 접촉면을 만들기 어려운 면이 많다 여겨지는 영역인지라 우리의 준비보다 더 많은 분들의 관심이 모이곤 한다. 이 밖에도 후기 청소년 캠프, 청소년 문화의 집 및 비 수도권 지역 소재 학교현장 요청에 따른 맞춤형 교육, 가해 남자청소년 교육 및 상담 등 여러 분야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3-고1 남자청소년 성/평등교육 강의안 개발 완료를 앞두고 있으며, 후반기에는 시범 교육이 진행될 예정이다. 연구소는 앞으로도 남자청소년의 성평등 인식향상을 돕고,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의 한구석을 일궈나가는 일들을 해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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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구소 내적으로 매우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그 첫 번째는 (비영리)임의단체 등록을 한 것이고, 두 번째는 엄청 고맙고 개념 꽉 찬 기업의 후원이 연결된 것이다. 아무나 대충 하면 되는 임의단체가 뭐 그리 대단한 것이냐 반문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그런 걸 직접 해 본 내겐 일단 엄청 대단한 일이고, 남다른청소년성교육연구소라는 이름에 대한 첫 공인이라는 점에서 또한 의의가 크다 하겠고, 무엇보다 이제 연구소 이름으로 통장을 개설할 수 있으니, 여기저기에 도와 달라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엄청 큰 성과라 하겠다.(나중에 어디에선가 필자를 만나게 되면 제발 모른 척 말고 이야기 한 번 들어주시길!)
평등과 다양성 존중의 기치를 내건 기업과의 만남은 적토마를 만난 관우처럼 연구소 전문위원들을 용기백배하게 했다. 연구소의 여러 활동과 가치들을 배우고 싶다는 기업, 기업로고나 이름을 적지 않아도 아무 문제없다는 회사, 업무가 아니라 참여자나 학습자로 연구소와 함께 하고 싶다는 담당자를 만나며 '야훼 이레(예비하시는 하나(느)님)'라는 종교적 언어가 생각나기도 했다. 이런저런 현장에 슬쩍 가 있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목사인가 보다.
남다른청소년성교육연구소는 이제 막 시작한 모임이라 불비한 것도, 어설픈 것도 많다...정도가 아니라 거의 다 사실 그렇다. 하지만 해야 할 일들을 분명히 알고 있고, 또 함께 하고 싶은 벗들도 있으니, 할 수 있는 것들을 재미있게 해보려 한다.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리는 마음 간절하다. 아직은 이 말을 쓰기가 감히 부족하지만, 만약 아버지께서 살아계셔서 또 내게 '넌 대체 뭐 하는 사람이냐?' 물으신다면 이제는 조심스레 말씀드릴 수 있을 듯하다.
예, 저는 남자청소년 성/평등교육에 관심이 많은 개신교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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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기독교장로회가 가지고 있는 직책 중 하나로, '목사에 준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목사 안수를 받기 전의 단계로 교회법상 성찬과 축도가 제한된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수 개 월 후 안수를 받았으니, 끝내 이 둘의 차이를 명확히 느끼지 못하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