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질과 변심 사이
코로나19를 지나며 아들네가 교회를 안 다닌다. 어릴 때는 집이 교회 옆이라 교회에서 살았고, 객지 생활하던 청년 때도 성가대를 하며 교회 생활을 했고 결혼하고는 그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성가대 총무까지 하더니 쉼표, 이후 아직도 쉬고 있다.
다 큰 아들네야 알아서 하겠지만 그래도 손주들의 유년 시절 속에 교회가 없다니....
안타까워서 혼자 속을 끓이며 기도만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초등 6학년인 손주가 말했다.
"할머니, 저 교회 다니기로 했어요."
"어, 그래?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친구가 다니는 가까운 교회에 같이 가기로 했어요."
"다행이다. 근데 너무 열심히는 다니지 마!"
"왜요?"
"응, 교회는 일주일에 한 번 가서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다 오면 돼"
교회를 안 다니니 걱정이더니 또 교회에 간다니 다른 모양의 걱정이 생기는 것이다. 이상한 교회는 아닐까? 아이들에게 죄인이라고 엄포를 놓으며 죄악 된 세상 어쩌고... 세상에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것은 아닐까.
맨날 얘들 불러다 기도시키고 말씀 훈련이라고 일상생활을 침해하는 건 아닐까. 혹시 또 예쁘장하게 생긴 신심 깊으신 맹렬 여친을 만나 물드는 것은 아닐까 등등
차마 입 밖으로는 못 뱉고 기껏 하는 말이 열심히는 다니지 마, 였던 것이다.
옛날엔 교회만 간다면 안심이었는데 이제는 교회를 가도 걱정이니 솔직히 교회가 변질된 것인지 내가 변심을 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다행이야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 손주가 형이 쓰던 키즈폰을 물려받았다.
가끔 전화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전화하면 연결이 잘 안 돼서
내가 물었다.
"넌 왜 할머니한테 전화를 잘 안 하니? 할머니가 전화해도 안 받고."
"할머니, 제가요 노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할머니 생각이 잘 안 나요. 나중에 전화해야지 하고는 잊어버리고. 그래서 못해요."
"아이고~ 잘됐네. 다행이야. 할머니한테 전화 안 해도 되니까 재미있게 잘 놀아. "
나는 우리 손주가 건강하고 재미있게 잘 지내면 된다.
하나도 안 서운하다. 그 녀석을 앉혀놓고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고 설교할 생각도 없고 나를 절대 잊어버리지 말라고 다짐을 받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 마음이 나보다 더 작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나는 교회가 좋아서 한 시간이나 일찍 가면서도 늦었다고 뛰어가다가 넘어져 바지가 찢어진 적도 있다.
매일 새벽예배를 다니고 모든 예배에 참석하고 봉사에 안 빠지고.... 그렇게 교회 사랑이 뜨거웠던 적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교회를 안 가면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손주가 노는데 바빠서 할미 생각 좀 안 한다고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하지 않듯이.
전도사를 하면서도 교인들이 주일날 못 나온다고 하면 왜 그런지 물어보고, 교회를 다니지 않은 가족 구성원이 있어서 집안 행사나 가족 나들이를 가야 한다고 하면 마음 편히 다녀오시라고, 그곳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실 터이니 잘 만나시라고 안심을 시켰다. 교회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기는 하지만 나는 교회가 곧 하나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교회는
이렇게 신앙이 교회 중심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 섬에 올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이곳에 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내 신앙생활이 주님만을 위해서 산다고 고백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교회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고 또 내 삶의 결정과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처음 섬에 들어와서 예배당 문을 열었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가지런히 놓인 낡은 실내화와 화려하고 풍성한 꽃꽂이였다. 실내는 곳곳에 페인트가 벗겨지고 그 사이로 곰팡이가 피어있었지만 방치되어 흉물스럽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가지런히 놓인 실내화와 정성스러운 꽃꽂이가 성전을 대하는 마음이 어떠한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목회자가 없이도 이 교회의 유일한 교인인 85세 된 노부부는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고 주말이면 산으로 꽃을 찾아다니며 성전을 소중히 지키고 계셨다. 그리고 지금도 성전 청소와 꽃꽂이는 하나님이 주신 소명으로 알고 나는 손도 못 대게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이 나헌티 주신 일인께 전도사님은 전도사님헌티 주신 일하쇼. 나는 죽을 때까정 이 일을 안 놓을라요." 하시면서.
"시집올 때는 내가 몸이 약했어라. 늘 심장이 두근거리고... 약을 달고 살았제. 근디 내가 예수 믿고 건강해졌제. 배포도 생겨서 지금은 무서운 것이 없어. 우리 주님이 계신디.... 아마 나는 예수 안 믿었으면 산 등신으로 살았을 것이요."
"글고 내가 까막눈이어서 다들 성경, 찬송을 찾는디 나는 못 찾응게 챙피하고 서러워서 기도했지라. 하나님 나도 저 사람들 맹기로 성경 좀 잘 찾게 해 주세요. 그렁께 보게 해 주십디다."
꽃꽂이하시는 곁에 앉아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치 내 연인의 과거사를 듣는 것처럼 흐뭇하고 기분이 좋다. 남자 집사님은 술고래여서 맨날 큰 독아지에 술 담는 것이 일이었는데 교회 나오고 일주일 만에 딱 술 담배를 끊으셨다고 한다. 뭐,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하신 것도 아닌데 냄새도 맡기 싫어져서 지금껏 그 상태를 유지하고 계신다.
확실히 신앙이 그 이전과 이후의 경계가 분명하다는 것은 축복이고 은총이다. 그리고 본인의 노력이나 능력을 넘어서는 일들이 자기 삶에 일어나는 이 신비적인 경험을 몸에 지니고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오랜 세월, 목회자가 있든 없든, 교인이 있든 없는 한결같이 신앙을 유지하는 비결이 뭘까 생각해 보면 역시 답은 교회다.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예배당을 소중히 여기는 그 마음과 태도가 오히려 이분들의 신앙을 일관되게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
밤늦게 손주에게서 톡이 와 있다.
"할머니 저 일요일에 축구대회 나가요. 기도 많이 해 주세요."
아마도 나는 손주랑 이렇게 살고 싶어서 애가 탔었나 보다. 아니 모든 사람과 이렇게 살고 싶다. 서로 기도를 부탁하면서 사정과 형편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기도를 통해 시간과 마음을 내어주고, 우리를 창조하신 분을 인정하며 세상을 함께 걸어가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