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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연재] 하죽도에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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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우리는

posted Sep 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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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호수 관지
글쓴이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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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으로 에어컨을 틀지 않고 새벽예배를 드렸다. 여름이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미역 작업을 돕기 위해 섬에 들어왔던 사람들도 하나, 둘 떠나고 다시 섬에는 적막과 고요가 스며들고 있다. 무엇보다 무사히 미역 작업을 마치게 되어서 다행이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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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은 우리 섬 주민들의 1년 농사이고 생계 수단이다. 나로서는 3년 차 이 작업을 지켜보는데 이제는 어느 대목에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나름 파악이 되어서 그런지, 올해는 좀 수월하게 지나간 느낌이다. 솔직히 안 해 본 일이라 힘이 들어서 어여 지나갔으면 하면서도 한편 지나고 나면 아쉬운 건 이 미역 작업 속에는 내가 좋아하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바다출판사에서 펴낸 <이 세상 끝에 있는 섬, 세인트킬다 이야기>는 이가타 게이코라는 일본인이 쓰신 책이다. 영국령의 작은 섬에 살았던 소박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오래전 우연히 이 책을 만났다. 그리고는 그 섬에 가보고 싶어서, 그때 그 시절의 사람들이 보고 싶어서 한동안 꿈 아닌 꿈에 시달렸다. 그런데 섬이라는 환경의 공통점 때문인지 어딘가 그 책에 담긴 풍경들이 우리 섬 주민들의 삶 속에서 보이곤 한다.

 

"세인트킬다와 같은 외딴섬에서는 누구든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모든 원시사회가 그렇듯 이곳 사람들에게서도 산다는 것은 서로에게 의지하는 것을 의미했다. 기쁨과 슬픔, 삶과 죽음을 모두가 함께 했다. 이런 삶이 번거롭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면 이 섬에 직접 가보자 이 섬에 발을 내딛는 순간,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을 함께 나눈다고 해서 기쁨은 두 배로, 슬픔과 고통은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그런 기대는 돈만 내면 필요한 것을 손에 쥘 수 있는 영국 본토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이야기다 "

- 세인트킬다 이야기, 23쪽

 

"세인트킬다에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그날 할 일만을 생각했다. 이 작은 사회는 섬사람들에 의해 평화롭게 운영되고 있었다. 본토에서 온 말 많은 정치가나 복잡한 법률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섬사람들은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아침, 비가 오든 눈이 내리든 관계없이 길거리 벽에 기대서서 혹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그날그날 생활에 관한 다양한 문제들을 논의했다. 세인트킬다 길거리의회라 불리는 이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는 그날 해야 할 일과 방법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 세인트킬다 이야기, 25쪽

 

"세인트킬다 사람들은 언제나 아이들처럼 솔직하고 순수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조심스러웠고 그것 때문에 쉽게 놀림을 받거나 무례한 대우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대우를 받는다 해도 그들의 천성은 변하지 않았다. 자의식이나 골치 아픈 고민은 문명세계 사람들의 몫이었다. 세인트킬다 사람들은 웃음거리가 되든 바보 취급을 받든 개의치 않았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살아온 그들에게 '지금 보이는 것, 지금 나누고 있는 대화'의 이면을 복잡하게 따지고 들려는 의도 따위는 전혀 없었다."

- 세인트킬다 이야기, 28쪽

 

무엇보다 이들은 생선보다는 바닷새를 주식으로 하였기에 바위 절벽타기를 하며 위험을 무릅쓰고 어렵게 먹거리를 장만해야 했지만 그렇다고 내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을 마을 공동의 몫으로 여겼고 그래서 나이가 들거나 몸이 아파서 작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모두 똑같이 나눠주었다. 그야말로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하지 않은 만나의 법칙이 적용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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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우리는 그렇게 살았다. 함께 배를 타고 섬 주위를 돌며 낫으로 미역을 베고 그것을 가구 수대로 저울에 달아 똑같이 나누고 또 개인의 몫으로 분배받은 미역을 건조하는 작업을 할 때도 누구든 먼저 일을 마친 사람은 아직 남아있는 사람의 일을 거들어주며 모두 같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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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사이좋게 지내야 하지만 동시에 경쟁과 비교 대상이라는 이중구조를 지니고 있는 이 자본의 세상에서 그저 이웃으로 서로 어울리고 돌보는 이 지점이 나는 좋다. 사랑이나 친절이 관념이나 이유, 혹은 조건에 걸리지 않고 삶의 물결로써 자연스럽게 파장을 일으키며 흘러가는 모습이 반갑고 이쁜 것이다.

 

나는 물론 구경꾼의 입장이지만 그런들 어떠랴. 보는 것만으로도, 그 현장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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