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서
온몸이 간질간질
죽을 것 같다
꽃이 피려나.
<開花> 전문
우리 섬에는 네 가구 여섯 명이 산다.
위, 아래, 옆집.
워낙 조용하고 부지런해서 하루 종일 어디서 뭐 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다 말소리가 나면 반가워서 저절로 몸이 나가게 되는 그런 곳이다.
아마 '너 맨날 사람 없이 조용한 데 찾더니만
실컷 살아봐라' 그러시는 것 같기도 하다.
작년 딱 요만 때 두런거리는 말소리에 나가니
두 여인네가 앉아서 1년 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기다는 뭐 심고, 여그는 옥수수 심어야 되고..."
그 모습이 참 좋아서 아무 상관도 없는데 계속 앉아 있었다.
정작 아는 게 없으니, 대화에 끼지도 못하면서.
그런데 왜 좋았을까? 생각해 보면
봄이 되니, 어디 놀러 간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봄옷 세일 정보를 나누는 것도 아니고... 그게 신선한 충격이지 않았을까 싶다.
마치 봄이 제대로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이었으니.
그런데 아쉽게도 올해는 이 모습을 볼 수 없다.
사진 속 한 여인네가 허리 수술받으러 외지로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리 한 겨울에 온 집안 밖을 들쑤시듯이 쓸고 닦는가 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수술받으러 가는 준비였다. 그렇게 집 정리를 하며 무슨 생각들이 오갔을까
늘 말없이 일하며 오가던 모습,
웃을 때면 어린애처럼 천진함이 묻어나던 그 표정이 갑자기 빈자리에 생생하게 살아나며
그 마음이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그리고 또 한 분, 이분은 구정을 자식들하고 잘 지내고 섬으로 들어오는 길, 짐을 배에 다 실어놓고, 출발대기 중 갑자기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났다. 다행히 119를 부르고 응급실로 직행하셨는데 병명은 뇌출혈이었고 만약 섬에서 이런 일이 생겼으면 위험했을 거라고 했다.
나 역시나 본가에 갔다가 섬에 들어오는 길, 그 이야기를 듣는데 갑자기 내 발이 쓱 뒤로 밀리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본능적으로 섬에 들어가기가 겁났던 모양이다.
물론 그런다고 배에서 즉각 내리는 일은 없었지만, 대신 기도가 하나 추가 되었다.
"주님 우리 섬에 위급한 일이 생기지 않게 해 주세요."
이렇게 6명이 살던 섬에 두 사람이 빠지고 나니 섬이 휑해진 느낌이다.
모여 밥을 먹어도 빈자리만 보이고 음식이 줄어들지 않는다.
고작 4년을 함께 산 내 마음이 이런데 5~60년 세월을 말 그대로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이분들은 어쩌실까, 생각하니 짠하고 자꾸 신경이 쓰였다.
나도 모르게 날마다 집들을 들락거리며 얼굴을 봐야 안심이고 걸어가는 뒷모습만 봐도 마음이 애잔했다. 그동안은 해 주시는 밥 잘 먹고 –잘 먹어야 좋아하시니 설거지만 하면 됐는데.
이제는 내가 식사를 챙기고 뭘 해드릴까 고심한다.
늘 옆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내가 웃기려고 아무 말이나 막 던지기도 한다.
이러는 나를 보자니 뭔가 조짐이 이상해 혼잣말로 묻는다.
'야, 너 뭐냐 왜 그래?'
나는 원래 잘 빠지는 편이다. 사람한테도 빠지고, 고양이한테도 빠지고 약간 일편단심형이다. 그러다 보니 이별고생이 극심하다. 특히나 교회에서 잘리고 교인들하고 헤어질 때면 직장을 잃는 게 문제가 아니라 교인들을 못 보는 게 힘이 들었다. 사실은 아직도 10년, 20년이 지났는데도 생각나면 그립고 아쉽고 보고 싶어서 가슴이 아린다.
그래서 섬에 들어오면서 나는 마음을 안 주려고 나름 선을 그었다. 언제든 나갈 수 있으니 걸리는 것 없이 살자고 단도리를 하고 살았다.
그런데 이 덩그러니 남겨진 노인들을 보니, 또 이분들을 보는 내 마음 상태를 보니 아무래도 나는 빠진 것 같다. 아, 이 봄에 다시 사랑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