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세 이모에게 방문진료를 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니까, “아하, 왕진?”하고 대답하신다. 아마 ‘방문진료’, ‘방문의료’나 ‘재택의료’ 등의 단어보다 어르신들은 ‘왕진’이라는 말이 더 익숙하신가 보다. 옛날 전국민 의료보험제도 정착 전에는 집안 노인이나 아이가 아프면 동네 의사를 불러서 진찰하게 하곤 했다고 한다. 현재는 전국적으로 시행되지 못하고, 방문진료 시범사업을 3년째 하고 있는데, 시범사업에 참가하기로 신청한 의료기관에 한정하여 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K-방역’이라고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높은 수준의 방역은 철저한 검사와 위치추적 및 관리,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특징 지워진다. 그러나 이러한 K-방역의 이면에는 공공병원에만 가해지는 무리한 부담과 의료진의 과로와 소진, 보건소와 일선 공무원들의 밤낮을 가리지 않은 근무와 희생이 있다. 필자가 근무했던 파주시 문산보건소의 경우만 봐도, 간호 8급직 공무원은 본래 진료 보조 업무는 중단하고 격리기간 동안 코로나 양성이 나온 사람들에게 전화로 수시로 통화하고 격리 중 음식이나 생활용품 배달하고 확진자가 나온 가게에 역학조사 나가서 cctv 확인하고 카드영수증 확인해서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들을 추적하는 데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으로 격무에 시달렸다. 물론 보건소에서 일상 이루어지던 지역사회 건강 돌봄 활동(운동 및 춤 강의, 만성질환 관리, 금연 상담 및 건강 강좌 등)이 모두 중단되었다.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보다 제대로 처치와 돌봄을 받지 못해 일반 질환으로 사망한 초과사망자에 대한 통계가 제대로 나와서 이 현실을 직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고립과 고통, 일선 자영업자들의 경제적 부담, 그럼에도 일해야 했던 배달노동자와 필수 노동자들의 삶의 질에 대해 얼마나 배려했던 시스템이었나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성찰이 필요하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 병원체는 이 지구상의 인간사회를 흔들어 놓았다. 미국, 프랑스, 독일보다 우리나라의 코로나로 인한 사망률이 더 낮아 소위 선진국보다 K-방역이 효과적이었다고 자랑할 만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망률이 일본보다 더 높았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우리는 종종 뉴스에서 일본의 무방비한 코로나 대비와 유행에 대한 보도를 보고 일본이 저 정도로 방역 수준이 엉망인가 하고 무시하지 않았던가?
<시사인> 김연희 기자가 일본 방문진료를 해온 의료기관과 요양원을 다녀와서 방문진료를 하는 의원과 사회적 협동조합이 모이는 단톡방에서 발표하였다. 김연희 기자는 “사람을 살리는 일과 그들 삶의 질을 지켜주는 데 방문의료가 큰 역할을 했다”라고 말했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노인인구가 많은 초고령사회로 고령자에게 더 위험이 큰 코로나에 매우 취약할 거라고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을 다녀온 <시사인> 김연희 기자의 발표를 듣고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방문의료를 시행하는 의사가 주치의가 되어 간호사와 함께 2주에 한 번 노인들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체계가 운영되고 있었다. 그래서 노인들의 질병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친 돌봄, 식사 및 영양상태, 청소나 위생관리, 가족관계의 변화나 정신적 심리적 변화 등에 대한 파악이 이루어지는 총체적인 돌봄이 가능한 활동이었다. 따라서 이상 징후가 있거나 코로나 감염이 의심되는 상황이면 바로 검사나 신고를 할 수 있어서 효율적으로 코로나 방역관리가 가능했다. 또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는 정부에서 방문진료 수가를 올려서 더 원활하게 방문진료가 이루어지도록 동기부여를 했다고 한다.
이러한 일본 사례를 보면, 우리나라도 뒤늦게 일선 지역사회 개원의들이 검사도 시행하고 전화상담이나 비대면 처방이 가능하게 하는 한시적인 조치도 있었지만, 방문의료사업을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방문의료와 지역사회 주치의제도를 정착하는 것이 팬데믹 시대의 효과적인 의료제도라고 생각된다. 초고령사회, 통합돌봄의 시대에 방문의료가 필수적이다. 의료기관 접근성에서 소외된 이들, 즉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말기 암 환자, 장애인, 수술 후 처치가 필요한 환자들 뿐 아니라, 만성질환자나 건강한 지역주민도 지역에 가까운 자신의 주치의로부터 정기적인 진료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