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형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형부가 쓰러진 것을 아무도 발견을 못해 벌어진 일이었다. 그 소식을 접했을 때 너무나 갑작스러워 거짓말 같기만 했다. 슬픔도 잠시, 한창 실습 중이었던 나는 형부의 장례를 치르는 데 온전히 참여하지는 못했다. 형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염을 하는 날에도 그랬다. 실습을 마치고 장례식장에 오니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휴, 죽은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네요. 특히나 주먹을 쥔 채로 죽어 있는 모습이..."
염을 하면서 장례 지도사는 '고인이 돌아가실 때 주먹을 너무 꽉 쥐고 있어서 손가락을 펼 수 없었다'고 했다. 언니는 굳은 형부의 손을 보며 살고 싶다는 삶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져 눈물이 났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평탄치 못한 삶을 살았던 형부였기에 세상을 향한 분노를 마지막으로 표현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한강이 2002년에 쓴 두 번째 장편 소설 <그대의 차가운 손>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내가 형부의 손에서 느꼈던 감정을 소설에서 읽었기 때문이다.
"손은 온 힘을 다해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중략) 그것은 아슬아슬한 결의처럼 보이기도 했고, 패배할 것을 알지만 고집할 수밖에 없는 굴욕 섞인 오기 같기도 했다."(13쪽)
이 소설은 숨기고 싶은 상처까지도 온전히 드러내는 라이프 캐스팅을 하는 조각가 장윤형의 이야기이다. 화자인 나는 그가 실종되기 몇 달 전에 우연히 만난 적이 있는 작가이다. 장윤형은 사라지기 전에 수기 형식의 글을 스케치북에 남겨둔다. 자신의 상처 가득한 어린 시절에서부터 작업하면서 만났던 L과 E의 이야기까지 진실과 거짓에 대한 고민들이 적혀 있는 글들이었다. L은 계부 성폭력 피해자로 자포자기적인 삶을 살다 다이어트 중독자가 되고 E는 육손을 감추기 위해 완벽해 지려다 자신의 껍질 안에 갇혀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장윤형은 이들과의 작업을 통해 서로 치유받고 치유되는 순간들을 경험한다.
이야기는 손가락과 성스러운 손, 가장무도회, 3부 구성으로 그 안에 작은 소제목들이 있다.
<그대의 차가운 손>은 한강의 여느 책보다 공감이 잘되고 가독성이 높은 책이었다. 그만큼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겪을 만한 일들에다 나 역시도 L과 E와 같은 상처가 있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무리한 다이어트로 병이 난 적도 있었고 이사를 하면서 인테리어업자 때문에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적도 있었다. 소설 속 이야기처럼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다이어트로 구토하는 장면 등을 읽을 때는 속이 울렁거리기도 했다. 마치 소설이 내 안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소설 속 L과 E는 자신들의 상처가 아물면서 마침내 '따뜻한 손'을 갖게 된다.
"난…… 남의 눈에 비친 나 말구는 내가 없는 것처럼 살았어요. 만일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날 그렇게 학대했다면 진작 감옥 갔을 거야."(265쪽)
"나…… 과거는 생각 안 해요. 미래두 생각 안 해요. 상담 선생님도 그게 좋대요. 내 이빨, 내 몸이 이렇게 된 거, 내 청춘이 흙탕물처럼 떠내려가 버린 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아무 것두 생각 안 해요. 생각하려다가두 얼른 잊어버려요. 그냥, 순간순간 살아요. 그러니까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266쪽)
"네가 날 꺼냈고…… 또 난 널 꺼낸 건가?"(315쪽)
형부는 이제 세상에 없다. 하지만 형부의 말씀은 내게 남아 있다. 돌아가시기 직전, 어떤 것을 직감하신 분처럼 내게 많은 말씀들을 하셨다. 형부와 알고 지낸 지 20년도 넘었지만 그날처럼 나를 붙잡아 놓고 열정적으로 말씀하셨던 적은 없었다.
"처제, 몸도 약하면서 세상의 잔잔한 일들에 너무 신경을 쓰지 마. 그런 힘들은 오로지 자신에게만 써."
형부가 살아계셔서 변화하는 내 모습을 보여드렸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 더군다나 나는 아직 몸과 마음이 따뜻해질 방법을 모르겠다. 우리 집 앞에 쓰레기를 매일 버리는 이웃이 밉고 인테리어 업자들에게 속지 않으려 발버둥 치느라 지쳐 있다. 이제는 매일 학교 가기 싫어하는 사춘기 아들을 외면하고 싶다. 그럴 때마다 형부가 말씀하신 "자신에게 집중해"와 "지금 여기"를 끝없이 되뇌며 형부라면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생각해 본다. 또한 3월에 태어난 E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새롭게 살아갈 것을 예고했듯이 나의 3월도 이전과는 조금은 다르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이 내게 치유가 일어나는 순간이라면 순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