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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연재] 정선영의 영화로 세상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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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룩 업(Don't look up) - '미국적인 것'에 대한 조롱

posted Mar 14, 2025

돈 룩 업(Don't look up)

-'미국적인 것'에 대한 조롱

 

 

 

영화 <돈 룩 업>은 달달하고 쌉싸름한 블랙 코미디이다.

 

에베레스트산 크기의 혜성이 지구를 향해 달려오고 있고 이 혜성과 충돌해 6개월 후에 지구가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과학자들이 경고한다.

자, 전통적인 할리우드 영화 문법에 따르면 이렇게 전개될 것이다. 대통령은 지구방위사령부의 총사령관이 되어 진두지휘에 나서고 수많은 미국의 '맨'들 중 한 명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세계인들을 이 위기로부터 구하겠다며 나선다.

이때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 등장하는데, 이 집에는 징그럽게도 말을 안 들어먹는 십 대의 자식들이 있고 부부 사이는 이혼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러저러한 좌충우돌과 우여곡절과 위기를 겪으며 마침내 미국의 영웅은 전 세계를 파멸의 위기에서 구해내고, 위기 앞에서 사랑을 확인하는 가족은 극적으로 화해한다. 그리고 영웅은 홀연히 사라져 다시 자기만의 방구석으로 숨는다.

 

정선영-영화1.png

 

 

영화 <돈룩업>은 이 모든 클리셰들을 전복한다.

지구의 종말을 알리러 간 과학자들 앞에서 대통령은 자신의 재선에 대해서만 걱정한다(이 대통령들의 이미지는 명백하게 트럼프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오바마와 클린턴의 특징도 한 가지씩 합쳐 놓았다).

대통령이 움직이지 않자 과학자들은 방송에 나가 직접 대중들을 향해 심각성을 알리려고 한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지구 종말 경고는 연예인의 스캔들 뉴스보다 못하게 취급되고, 그런 그들을 보다 못해 울부짖는 여성 과학자는 순식간에 전 국민 사이에 미친 여자로 조롱당한다.

결국 정치적 위기에 처한 대통령은 혜성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 영웅을 만들어 우주로 보낸다. 자, 기존 할리우드 영화라면 이 영웅이 우주에서 멋지게 임무를 완수해 지구로 귀환하고 애인과 감격스러운 포옹과 키스를 나눌 것이다.

 

그런데… 오, 이런! 이 영웅을 태운 우주선이 도중에 지구로 돌아와 버리는 황당무계한 일이 벌어진다.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혜성에 어마어마한 금전적 가치를 가진 광물들이 묻혀 있다며 미국 최고의 부자 사업가가 이것을 개발하겠다고 나선 것. 과학자들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데 대통령은 위험천만하게도 이 사업가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정선영-영화2.png

 

 

간단한 줄거리만 봐도 이 영화가 얼마나 '미국적인 것'에 대한 조롱과 힐난으로 가득 차 있는지 알 수 있다.

주연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인터뷰를 통해 말했듯이, '혜성과의 충돌'에 의한 지구 종말이란 소재에서 따옴표 안에 '기후 위기'를 넣어도 무방하다. 과학자들이 아무리 그 심각성과 절박함을 호소해도 지구 온난화는 사기라고 조롱했던 희대의 문제 인물 트럼프.

방송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유머와 재치를 최고의 가치 중 하나로 여기는 미국 문화(심각하고 진지해야 할 때조차 유머와 재치만 찾아대는 한없이 가벼운).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떼돈을 벌어야겠다는 천박하고 욕심 사나운 자본가.

정부가 자신들을 속였다는 것을 알게 되자 순식간에 폭도로 변해 약탈과 폭력을 저지르는 미국 시민들.

 

정선영-영화3.png

 

 

결국 우리 머리 위로 혜성이 날아오는 것을 보라는(look up) 과학자들의 외침조차 대형 콘서트로 만들어 소비하는 미국 대중문화.

대통령과 정부는 그런 대중들을 향해 올려다보지 말라(Don't look up)고 종용한다.

영어 표현 look up은 올려다본다는 뜻도 있지만 '무엇으로부터 정보를 찾아본다(seek information from)는 뜻도 있다. 한마디로 국민에게 뭔가를 스스로 알아보려 하지 말고 정부가 알려주는 대로만 믿는 바보가 되라고 하는 것이다.

 

2시간 내내 킬킬대며 보다가 결국 씁쓸하고 서늘한 결말에 이르러 묵직한 잔상이 남는 영화, <돈 룩 업>. '쌍 따봉(two thumbs up)'을 들어 강추하는 수작(秀作)이다.

정선영 프로필.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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