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25 -Donald Judd 의 의자가 보인다
The art of a chair is not its resemblance to art, but is partly its reasonableness, usefulness and scale as a chair. These are proportion, which is visible reasonableness. The art in art is partly the assertion of someone's interest regardless of other considerations. A work of art exists as itself; a chair exists as a chair itself. And the idea of a chair isn't a chair. Donald Judd.
4th Floor, 101 Spring Street, New York Image: Charlie Rubin ⓒJudd Foundation
뉴욕에 와서 다양한 사람들, 문화와 예술을 만나고 경험하다 보니 나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된다. 사소하게는 의자를 고르는 시각도.
얼마 전 오랫동안 묵혔던 숙제를 하나 해결하니 홀가분하다.
사람은 두 종류인 것 같다. 아주 맘에 들지 않아도 주어진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일을 마무리 짓는 사람과 자기 맘에 드는 것을 찾다가, 결국 맨날 미완성으로 지내는 사람. (아 가물에 콩나듯 맘에 안 들면 자기가 만들어 버리는 사람도 있구나. Donald Judd처럼 시중에 파는 가구가 맘에 안 들어 자신이 애들 침대를 만들다 가구를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난, 그러지 않으려고 하지만, 후자에 가깝다. 차라리 없이 불편하게 살지 맘에 안 드는 것을 대충 사기를 싫어한다. 뉴욕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모던한 테이블을 사놓고 그에 걸맞은 의자를 고르지 못하고 있었다. 때마침 누가 아파트에 멀쩡한 의자를 버려, 가져다 천갈이를 하고 새 의자를 살 때까지 임시로 쓴다는 것이 5년이나 흘러가 버렸다.
의자 사기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디자인이 맘에 드는 것은 앉아보면 불편하고, 편한 의자는 너무 모양이 없고, 요즘 의자들은 왜 이렇게 높이 나오는지 발이 땅에 닿지 않고, 값은 쓸데없이 비싼지.
얼마 전 친구가 놀러 왔을 때, 구석에다 밀어둔 골동품 의자 한 쌍을 보더니 식탁에 놓아보라고 했다. 유리와 메탈로 된 테이블과는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마호가니 나무 프레임에 하늘색 헝겊 의자가 놀랍게도 어울려, 따뜻하고 유니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전에는 메탈 휘니시에 심플한 가죽 의자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엉뚱한 조합을 보고 나선, 내가 생각하던 이런 의자가 삭막하고 차갑게 보였고, 이런 의자라는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나무 의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잊고 있었던 식탁 의자를 다시 찾아볼까 생각이 들었다.
Exterior, 101 Spring Street, New York Image: Joshua White ⓒJudd Foundation
그러던 참에 소호 101 Spring Street에 위치한 져드 파운데이션(Judd Foundation )을 방문하게 되었다. 져드 파운데이션은 1967년 아티스트 도날드 져드( Donald Judd)가 주철(cast iron)로 된 5층 직물공장 건물을 사서 개조해, 스튜디오와 가족들과 지내는 주거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그는 직접 집에 필요한 가구들, 철제 싱크대, 작업 테이블, 침대. 식탁, 의자 등을 디자인하였다. 그의 사후에 져드 화운데이션이 이곳을 영구 보전하여, 그의 공간, 작업실, 식당, 거실, 침실에, 그가 설치하였던 가구, 그가 컬렉트한 작품들을 그가 살던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다.
비교적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곳은 1층 전시관을 제외하고는, 예약을 하고 가이드 투어로만 들어갈 수 있다. 과거 많은 아티스트의 거주지였던 소호에서 이젠 사라진 예술가의 삶의 공간을 거의 그대로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고, 져드의 절제되고, 뛰어난 공간의 미학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곳이다.
져드 작품을 처음 만난 곳은 디아 비컨에서였다. 작품 자체는 지나치게 단순한 형태의 집합들이지만, 넓은 공간의 활용과 공간과 가구의 비례, 배치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미니멀리즘의 선구라고 불리지만 그렇게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미니멀리스트로 불리는 그룹과의 공통점보다는 자신의 유니크한 점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2nd Floor, 101 Spring Street, New York Image: Charlie Rubin ⓒJudd Foundation
이곳에서 제일 먼저 내 눈에 들어 온 것은, 나의 관심사였던 식탁 의자들이었다. 얼핏 보면 널빤지를 잘라 투박하게 적당히 만든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자세히 보면 의자의 높이가 테이블 높이와 같고 수직으로 디자인된 의자는 테이블에 쏙 들어가 숨어 정제된 라인을 보인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테이블의 크기는 유리창의 크기와 비례를 하고 공간의 탁월한 비움과 채움을 보여준다.
위의 사진에는 의자 뒷면만 보여 똑같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의자의 앞면과 옆면은 각기 다르게 디자인이 되어 있다. 옆면이 막히거나 열리고 아랫부분은 보관함이나 선반처럼 보이기도하고, 기울어져 있고, 제각각의 디테일이 흥미로웠다. 의자에 앉아보거나 만지는 것은 허락되지 않고 사진도 금지되어 있어 아카이브에 있는 사진만 허락받고 올릴 수가 있었다. 글머리에서 인용한 져드의 말처럼, 의자는 아트와는 달리 기능적인 면도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등이 수직으로 디자인되어서 불편할 것 같은데 앉아 보질 못해서 확인할 수는 없었다.
요즘 아카데미 수상으로 화제가 되는 영화 기생충에 박 사장 집이 유명 건축가의 집으로 소개가 된다. 건축이나 가구들의 멋진 공간 감각이 져드를 생각나게 한다. 역시나 식탁 의자에 시선이 갔는데, 텍사스 마파(Marfa)에 있는 져드의 라이브러리 의자와 디자인이 흡사하다. 그는 1973년 텍사스 마파( Marfa)의 부지를 사서 그와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 특히 대 규모의 작품들을 영구 전시하였다.
South Library, La Mansana de Chianti/ The Block, Marfa, TX
Image: Elizabeth Felicella/Estro ⓒJudd Foundation
져드 파운데이션에 다녀온 지 얼마 안되어 드디어 나의 식탁 의자를 사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뉴욕 와서 첫 번째 갔던 가구점을 그때는 "아 여긴 다 나무 의자네" 하고 지나쳤는데, 우연히 다시 들어가 보니 맘에 드는 의자를 찾게 되었다. 처음 내가 생각했던 이런 의자와는 아주 달리 나무 의자에 키가 나지막하여 테이블에 쏙 들어가는 그리고 등이 열려 갑갑하지 않은 의자를 샀다. 한 걸음 진도를 나아가, 똑같은 의자를 사지 않고 두 종류의 의자를 사서 믹스 앤 매치를 하였다. 져드와 친구가 알려 준 한수들이 5년간 미루어 왔던 숙제를 끝내게 도와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