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e Cho, 'My father and I – you pick apple orchard farm', 2020, Digital Painting
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32 - 가을은 참 예쁘다, 'Big Apple' 사과 따기
가을은 참 예쁘다
가을은 참 예쁘다 하루하루가
코스모스 바람을 친구라고 부르네
가을은 참 예쁘다 파란 하늘이
너도 나도 하늘의 구름같이 흐르네
…..
https://www.youtube.com/watch?v=MXBJxlLItIQ&feature=share
누군가 보내준 박강수의 노래를 듣다가, “아! 가을이 참 예쁘지, 산들바람도….” 혼잣말을 한다. 마치 잊어버렸던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듯. 가을을 어떻게 잊고 있었을까? 코로나 19 이후 집에 틀어박혀 비대면 줌(Zoom) 생활이 비교적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 블루에 시나브로 물들었나 보다. 안되겠다. 대문을 박차고 나가서, 이 가을의 소소한 행복을 되찾아야겠다.
사과 따기
뉴욕주 오랜지 카운티 와윅(Warwick)에는 와윅밸리 사과밭길(The Warwick Valley Apple Trail)이 생길 정도로 사과밭이 많다. Masker Orchards, Apple Ridge Orchards, Apple Dave’s Orchards(Applewood orchards가 이름이 바뀜)는Thrillist나 Time Out에서 뉴욕 근교 사과 따기 좋은 10곳으로 추천된 과수원이다. 거리가 뉴욕시에서 좀 더 가까운 매스커 사과밭(Masker Orchards)을 찾아갔다.
입구에 들어가면서 양옆으로 쭉 서 있는 고색창연한 불루 스푸르스가 100년 넘은 과수원의 세월을 말해 주고 있다. 이 귀한 나무들이 안타깝게도 코로나 주의사항이나 안내 팻말을 가슴에 하나씩 박고 있었다. 200에이커가 되는 과수원은 언덕으로 올라가는데, 입구에서 나누어준 플라스틱 봉지에 사과 종류별 지도가 잘 표시돼있다. 원하는 종류의 사과나무 앞까지 차를 타고 가서 주차할 수 있다.
사과나무가 이렇게 나지막한 난쟁이 같고, 주렁주렁 많이 달려 있었는지 전에는 몰랐다. 사과밭에 온 지 꽤 오래되었는데, 그동안 농사법이 바뀌었나? 예쁜 사과나무들이 일렬로 서서, 주렁주렁 달린 것을 보면 마치 사과 공장에 들어온 것 같다. 9월이어서 그런지 아직은 곳곳에 “ Unripe”, 익지 않았다는 표시가 많다. 엠파이어, 레드 딜리셔스, 무쭈(Mutsu)등을 골고루 따서 봉지에 담았다. 딸이 어렸을 때 했던 말이 생각나 피식 웃었다. “조그만 과일은 큰 것이 맛있고, 큰 과일은 조그만 것이 맛있다.” 생각해 볼수록 명언인 것 같다. 또 누군가는 “사과 고를 때 들어봐서 묵직한 놈으로 고르라”고 했다.
향긋하고 꿀맛 같은 애플사이다 도넛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농장 가게에 들어가 사도되지만, 미리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트렁크에 넣어둔 사과와 함께 나갈 때 차에서 계산한다. 코비드 19의 안전을 생각해서 최소한 사람과 접촉을 하고 드라이브 인, 드라이브 아웃 할 수 있도록 준비가 잘 돼 있었다. 많이 걷지 않아도 되니, 어린이들이나 연장자들과 함께 오기 좋은 과수원인 것 같다.
아빠하고 나하고
30년 전쯤, 아버지께서 뉴욕에 오셨을 때 함께 Yorktown Heights에 있는 Wilkens Fruit & Fir Farm에 사과 따러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끝물이어서 그랬던지, 지금처럼 손이 닿을 나지막한 곳에 달리지 않고, 높이 달린 사과를 아버지께서 장대로 따셨었다. 장대 끝에 주머니가 달려 사과가 쏙 들어갔던가, 아니면 땅에 떨어뜨려 주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때 함께 찍었던 사진을 아버지 회고록에 실으셨다. 좋은 사진도 많은데, 하필 허름한 차림의 이 사진을 고르셨을까 그때는 의아했었다. 이 글을 쓰면서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 고향, 황해도 황주는 사과로 유명한 곳이다. 흥수원에서 할아버지께서 사과밭을 하셨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을 떠나 학교에 다녀, 방학 때만 갈 수 있는 과수원집을 그리워하셨다. 남북이 분단되어 이제는 가 볼 수 없는 고향, 가족들이 함께한 그리운 그곳이 아버지께는 사과밭이었다.
Applewood Orchards & Winery에서 뜬금없이 본 38선을 넘어간다는 표시
아버지가 보고 싶다. 가을 이맘때, 어머니 기일에 맞춰 서울에 갔는데, 코비드 19로 올해는 어려울 것 같다. 고향 생각이 나면 아버지처럼 사과밭에 와야겠다. Masker Orchards에서 따온 사과가 5알이 남았다. 주말에 Warwick Valley Apple Trail에 있는 다른 사과밭을 둘러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새콤달콤하고도, 아삭한 Arlet 사과가 있으려나. 뉴욕의 별명이 빅 애플(Big Apple)이란 것이 뉴욕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PS 1. 사과밭 완전정복을 하고 싶다면 Warwick Valley Apple Trail을 드라이브하면서, 각기 특징이 있는 6개의 사과밭, 농장, 목장, 와이너리, 양조장, 농장상점(farm stand )을 들리면서 예쁘게 물들어 가는 가을 단풍과 시골의 목가적이고 평온한 풍광을 즐겨도 좋다.
https://www.warwickvalleyappletrail.com/
PS 2. 매스커 사과밭에 왔다가 함께 들리면 좋을 곳을 소개한다.
Bellvale Farm Creamery: 사과밭 가는 길에 지나가는 아이스크림집, 이곳의 명소다. 야외 의자에 앉아서 보는 탁 트인 밸리의 경치가 아름답다. 맨해튼 맛집처럼 줄이 길다.
Sterling Forest State Park: Lakeville Ironworks Trail은 오래된 철광산의 흔적과 건물들이 남아있어 묘하고 흥미로운 트레일이다. Visitor center에서 맵과 안내를 받고 시간 여유가 있으면 호숫가를 돌아도 좋다.
Thomas Morahan Waterfront park: Greenwood Lake 의 전경을 보면서 피크닉하기 좋다. 오래된 소나무 한그루는 근래에 본 가장 멋진 나무다. 아마도 이 곳을 보면, 낚시나 물놀이를 하러 다시 오고 싶어질 것 같다.
작가소개 : 수 조( Sue Cho)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서양화, 판화를 전공하고, 부르클린 칼리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뉴욕 해리슨 공립 도서관, 코네디컷주 다리엔의 아트리아 갤러리 등지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뉴욕 한국 문화원 그룹전( 1986, 2009), 리버사이드갤러리(NJ), Kacal 그룹전에 참가했다. 2020년 K and P Gallery에서 “ Blooming”이란 제목으로 온라인 전시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