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VI & VII_노란조끼 여섯번 & 일곱번째 시위
그들은 유쾌하고 발칙한 시위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
세상일 치고 강제적인 것이 달콤할 리가 만무하다. 다만 예외적으로 휴식이 강제된다면 이는 받아들일 만 하다. 연말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일주일간 OECD 사무실 문을 닫았다. 모두에게 강제로 휴가가 주어진 셈이다. 크리스마스 전인 12월 22일 토요일부터 1월 1일 화요일까지 무려 11일을 연속으로 쉬게 되었다. 한국에선 휴가 기간에도 언감생심 꿈꾸어 볼 수 없는 긴 휴가가 뜻하지 않게 주어졌다. 연휴의 마지막 날 그러니 새해가 시작하는 날 페르라쉐즈 묘지를 다녀온 것 빼고는 집 주변 도보권역 이상을 벗어나지 않고 열하루를 보냈다. 이는 잘된 일인가, 잘못된 일인가?
수그러들기를 고대했던 이들도 있었겠으나 이전 글에도 이야기하였듯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프랑스 대중은 자신들이 받은 모욕을 되돌려 놓을 때까지 그들의 요구를 철회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내 예상이었다. 연휴가 이어지는 크리스마스 그리고 연말을 맞아 시위대의 규모는 줄어들었다. 그러나 노랑조끼는 12월 22일 6번째, 그리고 29일 7번째 시위를 프랑스 전역에서 벌였다.
스트라스부르에서 총기 테러가 일어나 경계가 한층 강화되는 바람에 애초 계획했던 론지방으로의 여행은 연말 선택지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게다가 노랑조끼 시위가 어느 정도 규모를 지닌 도시에서는 일상인 상황이라 어디를 다닌다는 것이 무척 골치 아픈 상황이 되었다. 공립학교에서 불어를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적응반에서의 공부가 끝난 아이들은 올 가을부터 정규반에서 파리의 여느 학생과 같은 수업과정을 듣게 되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수업이 양과 질에서 현격히 어려워진 첫째, 한국 있었으면 아직 초등학교 졸업반이었으나 여기서는 중 2 수업을 들어야 하는 둘째(프랑스는 5, 4, 3 학제이다), 그리고 여기 초등학교는 다닐 만 하지만 한국 친구들이 그리운 막내까지 아이들 모두 불어로 이어지는 학업에 지쳐 이구동성 방콕이 이번 방학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란다. 깨우지 않으면 오후 2시까지 일어나지 않는 잠의 신공을 셋 모두 보여주고 있었으니. 허허 이것 참하고 기가 막혀 하다가 옛 기억 더듬어 보면 나도 그러하였으리니 십대 셋이 유럽의 긴 겨울을 잠으로 보내는 것을 보고 넘기기로 한다.
6차, 7차에 걸친 시위의 양상을 보면 처음에 보였던 폭력 양상이 감소해 가고 있으나 풍자와 유머 그리고 놀이로 바뀌어 가고 있는 장면들이 보인다. 그중 눈에 띄는 대목이 변기 뚜껑에 마크롱 대통령 사진을 붙여서 매고 다니는 청년, 들고 다닐 수 있는 악기를 가지고 나오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지는 것과 웨딩사진 찍으러 나온 신혼부부와 시위대가 서로 엄지를 치켜들며 공감하는 모습이 앞으로 이 노랑조끼 시위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암시하고 있다. 집 앞의 비르아켐 다리는 복층 구조의 유려한 철제 기둥이 열주로 늘어서 있어 신혼부부들의 단골 야외 촬영장소이다. 29일에 있었던 7차 시위에서는 집 앞이 소란하여 창밖을 내다보았더니 일군의 시위대가 집 앞까지 밀려왔다. 언제부터인가 집 앞 도로에 주차해 있던 맥클라렌 차주가 번개같이 나와 차를 몰고 사라진다. 좋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삶에 어떤 의미인지 잠시 생각하게 된다.
집 앞 비르아켐 다리까지 몰려온 시위대, 멀리 에펠탑이 보인다
변기뚜껑에 마크롱 사진을 붙이고 나온 시위대
악기를 들고나온 시위대의 연주에 맞춰 춤추고 있는 노란조끼
세상살이 결국 관계와 인연으로 시작하고 끝이 날 것이다. 파리에서 사귄 사람들과의 송년회를 3번에 나누어 저녁 초대로 치러 내었다. 이는 분명 노동다운 일이다. 결혼 초기 유학시절 그렇게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 어부인 속을 썩이던 나였으나, 이제 집으로 사람들 초대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건 오히려 안주인이 되었다. 덕분에 대서양에서 길러진 굴도 먹고, 샴페인도 종류별로 마시고, 나무망치로 깨서 먹는 초코릿도 먹어보고 늦은 시간까지 세상사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연말을 마무리하였다. 덕분에 장보고 음식 만들고 설거지까지 내 몫이 상당하였지만 강제로 주어진 휴식이 아니었으면 꿈꾸지 못할 일이로다.
초대받았던 친구가 한국음식 너무 오랜만이라면서 파티가 끝나고 난 뒤 사진을 편집해서 보내주었다
이쯤 되었으니 앞으로 노랑조끼 시위에 대해 다시 한번 전망한다. 입장은 두 가지다. 노랑조끼들은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자신들의 자존감을 회복할 때까지 노랑조끼 입기를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연휴가 끝나고 새해가 시작되는 이번 주 토요일, 1월 5일 시위는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판단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그들의 자존심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짐작 가는 바가 있으나 아직 생각이 여물지 않았으므로 이에 대한 언급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대통령인 마크롱은 그의 신년사에서 밝혔듯이 노랑조끼에 대해 무관용으로 대처하겠다고 하였고 개혁을 지속하겠다고 한다. 그는 확신에 찬 사람이다. 그 확신으로 표를 얻고 당선되었다. 프랑스 사회는 분명 개혁이 필요하고 이는 정체된 프랑스를 역동시키는데 불가결한 요소이다. 그런데 그 개혁의 대상이 다수 대중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뺏는 것과 같은 경유세 인상으로 단추를 꿰기 시작한 것이 패착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그는 노랑조끼 시위대가 과도한 주장을 하는 집단으로 보고 있으며 이들을 경찰력을 통해 장악하려 한다.
'첫번째 폭력은 시민에 대한 국가의 폭력이다. 마크롱 퇴진!' 이라고 쓴 피켓을 시위대가 들고 있다
노란조끼 시위대의 눈앞에서 과격한 양상을 보이는 일부 선두대원들이 잡혀가는 폭력이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된다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될지 명약관화하다. 앞으로 당분간 나는 토요일 방콕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