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Ⅹ 노란조끼 10번째 시위: 거리는 텅 비었다. 나는 조바심으로 읽혔다
다시 돌아온 토요일 오후,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개선문 광장을 향하였다.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한 지난주 9번째 시위 장소인 개선문 광장에 모여든 노란조끼 시위대 위로 터지며 우아한 브라운 운동으로 최루 가스가 퍼져가던 모양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던 탓일까? 아니면, 파리의 도시 공간을 들먹이며 역사의 축 이야기를 끄적거렸던 기억이 남아 있어서일까? 어쨌든 시위를 조망하러 나서긴 했다지만 어디서 사람들이 모여서 시위를 할지에 대한 확인도 없이 그저 휘적휘적 나섰다. 샹젤리제 거리에 이르러서야 노란조끼를 입은 시위대는 보이질 않고 관광객들만 오가는 모습을 보곤 나의 아둔함을 탓한다.
그제야 유튜브로 실시간 송출되는 시위대의 영상을 찾아보고 오늘 노란조끼들은 앵발리드 근처에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젠 화면에 나오는 거리만 봐도 대충 어디쯤인지 짐작이 가는 정도의 반쯤의 파리지앵이 되었나 보다. 지난번 이야기한 파리 역사의 축에 루브르박물관과 개선문 사이에 콩코드 광장이 있다. 앵발리드는 콩코드 광장 맞은편에 있다. 따라서 앵발리드를 가려면 개선문 광장에서 샹젤리제 거리를 걸어서 콩코드 광장까지 가서 세느강을 건너기만 하면 된다. 오랜만에 샹젤리제 거리를 걸으며 이방인 관람객 기분이 되어 보기로 하고 슬슬 걷기 시작하였다.
텅 빈 가로, 나는 이 텅 빈 가로에서 프랑스 정부의 조바심을 보았다
앵발리드(Les invalids, the injured), 부상병 진료를 위해 병원이 세워진 이후 군사 관련 시설들이 근처에 입지하였고, 지금은 군사박물관, 나폴레옹 묘소, 육군 군사학교 그리고 파리라면 빼놓을 수 없는 공원 등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앵발리드 역시 파리의 중심에 위치한 상징적 공간이고 남북 방향으로 축이 설정되어 샹젤리제의 동서축과 서로 직각으로 만난다. 오늘 시위대의 위치는 파악되었고 나는 샹젤리제에서 세느강을 건너는 알레산드 3세 다리에서 앵발리드 지구로 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중간 중간 앵발리드로 향하는 길목 마다 텅 빈 거리만 보이고 세느강 보행로에서 앵발리드로 올라가는 모든 계단은 경찰이 설치한 바리케이드로 막혀 끝내 나는 시위대와는 조우하지 못하였다.
세느강변에서 올라가는 다리는 원천 봉쇄 중
멀리서 최루탄 쏘는 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앵발리드 근처로 가는 가로에 가까워지자 경찰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사람들 접근을 막는다. 몇 군데 시도해 보았으나 한결같이 단호한 표정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아마도 단단히 교육들을 받은 모양이다. 하는 수 없이 세느강변으로 내려와 다른 다리로 우회하여 앵발리드로 접근하려 하였으나 어림없는 수작이다. 개미만 지나다닐 수 있을 뿐이다.
세느강변 보행로에 우수관으로 보이는 입구에 ‘마크롱은 물러나라’라고 시위대가 외치는 구호가 씌어있다
자동차가 사라진 넓은 가로를 걸어가며 생각했다. 프랑스 정부가 드디어 시위대 숫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구나. 나 같은 이방인,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도 시위대 근처로는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여 시위대의 숫자가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방송을 타거나 영상으로 전파되는 걸 두려워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마크롱이 직접 나서서 시장들과 대화를 하고 총력을 다해 국가 대토론회(Grand débat national)로 시민의 관심을 돌려놓고자 한다. 어쩌면 대화와 토론으로 이 사태를 진정시키고 자 하는 것이 소위 민의를 받아들이는 과정이고 공화제와 민주주의의 완성도를 높이는 길일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 시비를 걸거나 까탈스럽게 보는 것이 아니다. 애절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러한 노력 앞에 마크롱은 좀 이해하기 어려운 전제를 달았는데 그게 다름 아니라 부유세 경감에 대한 철회는 없다는 것이다. 대토론회 하자고 해놓고, 모든 사안에 대해 열린 토론을 하자면서 핵심은 양보 못 한다고 미리 선수를 친다면 앙꼬없는 찐빵에 누가 관심을 가지랴.. 나는 다음주 토요일 11번째 시위가 더 과격한 양상으로 진행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쯤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진정 폭력을 사주하는 자는 누구인가?
오늘의 사족 1. 시위대 구호는 간단하다. 마크롱 데미시옹을 2+3 박자로 맞춰 외친다. 2. 집에서 홍차 우려내는데 거름망 집게 안에 들어 있는 찻물을 털어 내는데 나도 모르게 2+3박자로 치고 있었다. 모든 리듬은 중독성이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