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조끼 11번째 시위: 프랑스의 옹졸함을 보다
2019년 1월 26일 토요일, 열한 번째 노란조끼 시위는 계속된다. 마크롱의 핵심이 빠진 대처와 대중의 외면으로 개혁동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여론이 돌아가는 형국을 자기편으로 돌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그의 의지대로 흘러가는 듯하지 않다. 노란조끼 시위대가 요구하는 사안에 대해 국가대토론회 제안을 하고, 온라인을 통해 시민들의 가감 없는 의견을 듣고자 하였다. 급기야 지난주에는 조그만 소도시에서 열린 토론회장에 예고 없이 나타나, 전국에서 모인 600여 명 시장과 밤늦도록 토론을 하기도 하였다. 그로서는 정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해결책으로 제시한 정책을 거칠게 요약하면 최저임금 인상과 부자 감세의 유지로 볼 수 있다. 세부적으로 뜯어 보면 나름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나, 정서적으로 서민들에겐 푼돈을 집어 주고 부자들은 부의 카르텔을 유지하려 든다고 반응한다. 이런 점에서 노란조끼 시위대와 이를 동조하는 프랑스 대중들은 심한 모욕감을 느낀 듯하다. 따라서 마크롱의 이러한 유화 제스처에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내 눈에는 너무나 선명하다. 핵심은 빈부격차의 해소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자본을 누적해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이를 세습하고자 하는 부자들에 대해 마크롱이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는 한 이들 노란조끼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올해 있을 유럽의회 선거에 출마할 것을 공식화했다. 노란조끼가 정치세력으로 등장하여 마크롱 정부의 힘을 빼놓으려 할 것이다. 또한 마크롱의 부유세 축소에 대해 끊임없이 철회를 요구할 것이다. 극우 르펜은 노란조끼에 편승하려다 도리어 자기 지지기반을 뺏기게 생겼다. 여론 조사를 보면 노란조끼 지지층의 대다수가 르펜의 극우 정당에서 옮겨왔음을 알 수 있다. 극우 성향의 중하위 소득계층이 어떻게 진화해 갈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가면극_국가대토론회는 조작이다"라고 쓴 피켓을 든 시위대
서론이 길었다. 오늘은 노란조끼 시위를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프랑스 사회를 다른 각도로 어쩌면 좀 더 삐딱하게 볼 수밖에 없는 사연을 쓰고자 한다. 지난 주말, 어디에서 시위가 벌어지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생각 없이 집을 나섰다 낭패를 보았다. 오늘은 나서기 전 미리 유튜브 생중계에서 시위 장소를 확인하였다.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장소는 바스티유 광장이었다. 그렇지! 역시 파리에서의 시위는 혁명의 불꽃이 타올랐던 바스티유를 빼놓을 수 없지.
집 앞에는 파리의 관광버스라 불리는 72번 버스가 다닌다. 72번 버스는 세느강을 따라 에펠탑, 앵발리드, 오르세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을 거쳐 퐁네프를 지나 파리 시청까지 운행한다. 하지만 바스티유로 향하는 버스는 운행을 포기한 듯 버스 정류장은 승객이 한 명도 보이지 않고 휑하다. 비가 흩 뿌려 방수가 되는 옷을 위아래로 갖추어 입고 트레킹화까지 신고 나왔으니 한 10여 킬로미터 정도 걷는 건 어려운 게 아니다. 강변을 따라 루브르까지 가기로 하고 산책 나온 듯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들으며 걷는다. 광석이 형은 고등학교 동창의 사촌 형이기도 하다.
칠엽수 나무가 도열한 세느강 강변도로엔 오늘도 텅 빈 도로만이
콩코드 광장 근처에 왔을 때 발길을 세느강변 산책로에서 광장 쪽으로 옮겼다. 가로수가 줄지어 심어진 텅 빈 가로는 지난 주말에 이어 오늘도 이렇게 매력적일 수 있다니 하는 생각을 하면서 걸었다. 하기야 파리살이를 시작하게 된 가장 원초적 동인(動因)은 칠엽수(마로니에)가 원추형 꽃 무리를 가득 달고 바람에 맞춰 흔들리며 서 있던 광경 때문이었다. 콩코드 광장은 텅 비어 있었다. 사람을 위해 형성된 공간에서 주체인 사람이 사라진 공간이 도시에서 어떤 매혹적인 느낌을 주는지 경험한 바가 있어 이런 공간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차와 사람이 사라진 광장의 도로를 이리저리 부유하다 룩소르 신전 앞이 고향인 오벨리스크와 저 멀리 에펠탑이 한눈에 잡힌다. 순간 알 수 없는 분노가 밀려왔다. 약탈은 아니라지만 기껏 가져다 놓고 대접을 이런 식으로밖에 못하나 하는 생각이 드니 부아가 치미는 것이다. 밝은 날 콩코드 광장은 여러 차례 오갔던 적이 있다. 밝은 대낮에 위용을 자랑하던 오벨리스크를 대면한 것과 어둠이 내린 적막한 광장의 오벨리스크는 대조적이다. 대낮에는 이런 식의 감정이 들지 않았다. 밤에 만난 오벨리스크는 외롭다 못해 처량하다. 멀리 온갖 조명으로 치장한 에펠탑과 함께 어둠에 묻혀 고요히 서 있는 오벨리스크가 한 프레임에 잡히니 그 대비가 너무 강렬하다.
룩소르 신전이 고향인 오벨리스크와 철과 공학의 산물 에펠탑, 프렌치들의 오벨리스크에 대한 대우가 이 정도 밖에는 되지 못하나?
걸으며 분노를 삭이려 노력했다. 시위대는 바스티유에서 이어지는 공화국 광장(Place de Republique)으로 옮겨 가 있었다. 혁명으로 탄생한 공화국과 그 광장에는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상징인 마리앤이 우뚝하다. 그녀에게 쏟아져 들어오는 붉고 푸르고 흰 조명은 공화(共和)의 정신과 공화국의 자존심을 상징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나는 광장을 가득 메운 시위대와 그들이 외치는 마크롱 데미시옹! (마크롱은 물러나라!)을 들으며 걷는다. 아까 오벨리스크에서 받았던 감정이 군중이 외치는 마크롱은 물러가라라는 자유의 함성과 겹쳐지면서 이들의 자유와 긍지가 역겨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당신들의 혁명과 당신들의 공화와 당신들의 시위를 존중한다. 그대로의 존중을 삼천년 넘어 세월을 견뎌온 오벨리스크에게도 좀 해주면 안되겠니 이 옹졸한 프렌치들아!
공화국 광장에 우뚝한 매리앤 동상은 자유, 평등, 박애의 상징인 붉고 푸르고 흰 조명으로 환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Manic Street Preachers의 “If You Tolerate This Your Children Will Be Next”를 볼륨을 높여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