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37 - 맬컴 엑스와 우연한 만남
Sue Cho, “Malcolm X”, 2021, Digital Painting
맨해튼을 마음대로 누비고 다닌 적이 언제였지? 팬더믹이 시작되기 바로 전, 작년 2월 컬럼비아 대학병원 근처에서였다. 병원이 자리 잡고 있는 Washington Heights 동네는, 1983년 처음 미국 생활을 시작한 곳이다. 할렘을 비롯해 맨해튼 구석구석이 개발되어, 저소득층이 살 수 있는 집들이 점점 사라지는데, 이 동네는 그때와 별반 변화가 없이 허름하다. 도미니카공화국 등에서 온 라틴계 이민자들과 흑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인데 맨해튼에서 zip code 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률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라고 한다. 사회경제적으로 마이너리티와 저소득층이 많이 사는 동네일수록 피해가 심하다. 밀집해서 살고, 위험에 노출된 일에 종사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힘든 문화 등으로 인해…
Audubon Ballroom: 우측 the Malcolm X and Dr. Betty Shabazz Memorial and Educational Center, 좌측 Columbia University Medical Center's Research Building
집에 오는 지하철을 타러 가다가 165가와 Broadway가 만나는 코너에 심상치 않은 이 건물과 마주하게 되었다. 잠시 주춤하다 “궁금하면 액션으로!”라는 마음의 소리를 따라 길을 건넜다. 멀리서도 정면의 조각과 장식이 눈길을 끌었다. 테라코타로 된 뱃머리의 포세이돈과 물결 위로 두 팔을 활짝 벌린 인어 조각, 그리고 아치를 두르는 수금(lyre)문양과 입구 양옆에 로마 양식의 기둥이 예사롭지 않았다.(이 건물은 1912년 Thomas W. Lamb이 설계한 Audubon Ballroom인데, 그 당시 아래층은 2,500석의 극장으로, 위층은 무도장과 200석의 연회장으로 쓰였다고 한다. 여기서 Broadway를 따라 북쪽으로 10블록 올라가면 Loew’s Wonder Theaters 중 하나인 United Palace가 있는데, Lamb이 디자인한 이 동네의 또 다른 명소이다.)
중앙 문에 별다른 표시가 없어 은행인 줄 알고 들어갔다. 우와 이곳은 뭐지? 텅 빈 기념관에 멀찍이 계단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던 흑인이 다가오더니 은행 문을 잘못 찾아왔냐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Malcolm X 동상을 보고 임기응변으로 그에 관한 전기도 읽었고 이곳을 보고 싶다고 하니, 의혹의 표정을 풀었다. 구경하고 2층에 벽화도 올라가 보라고 한다.(이곳은 1965년 2월 21일, 맬컴 엑스가 강연을 하던 중 암살된 장소이다. Audubon Ballroom은 컬럼비아 대학병원 연구 건물이 들어서 허물어질 위기에 있었으나, 커뮤니티의 청원으로 일부는 Malcolm X와 부인 Betty Shabazz 기념관과 교육센터로 보존되고, 연구 건물은 앞 외벽을 그대로 살리고 위로 올려 보존과 증축이 성공적으로 된 사례이다.)
또 다른 Malcolm X와의 우연한 만남은 책을 통해서이다. 대학 때 오빠 책꽂이에 책들을 보다 “말콤 엑스”라는 자극적인 제목에 끌려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그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오래되어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백인처럼 보이기 위해 곱슬머리를 펴고, 콩크(Conk) 머리를 하러 머리에 화학약품을 바르고 고통을 견뎌내던 장면이 기억의 언저리에 남아있다. 아마도 내가 읽었던 책은 “The Autobiography of Malcolm X”의 번역본으로 “Roots”로 우리에게 알려진 알렉스 헤일리(Alex Haley)가 쓴 맬컴의 자서전인 것 같다. 덴젤 워싱턴(Denzel Washington) 주연의 “Malcolm X” 영화에도 콩크 머리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되고, 나중에 물이 안 나와서 고통을 못 참아 변기 물에 머리를 헹구는 장면이 나온다. 후에 맬컴은 흑인이 백인처럼 보이려고, 자신이 타고난 피부, 머리를 혐오하는 그들에게 “Black is beautiful.”의 자부심을 고취한다.
맬컴 엑스는 마틴 루터 킹과 함께 50, 60년대 대표적인 흑인 인권운동의 지도자이다. 극단적으로 다른 두 사람의 입장이 늘 부각되어 왔었다. 맬컴은 백인의 인종차별에 대항해서 “by any means necessary”, 필요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 싸워야 한다고 했고, 흑인만의 국가를 세우는 흑인 분리주의를 지지하였다. 이와 같은 사상으로 맬컴은 백인에게 위협적 존재가 되었다. 반면 마틴 루터 킹은 비폭력적, 인종 간의 통합을 주장했다. 이들의 사상적 배경에는 자라온 환경과 교육, 종교의 영향도 큰 것 같다. 유복한 기독교 가정에서 교육을 받은 마틴 루터 킹과는 대조적으로 맬컴은 불우한 어린 시절과 힘든 역경을 거쳤다. 아버지가 백인우월주의자에게 살해당하고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위탁 가정에서 자랐다. 할렘의 빈민가에서 마약을 팔며, 절도죄로 감옥에 갔다. 감옥에서 네이션 오브 이슬람을 알게 되고, 흑인운동 지도자로 부상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마틴 루터 킹의 “I have a dream” 연설은 감동적이지만, 글을 쓰면서 알게 된 맬컴의 “I see an American nightmare” 연설은 새로운 충격을 준다. 미국제도의 희생자인 흑인의 시각에서는 미국의 “꿈”이 아니라 “악몽”을 본다.
“No, I’m not an American. I’m one of the 22 million black people who are the victims of Americanism. One of the 22 million black people who are the victims of democracy, nothing but disguised hypocrisy. So, I’m not standing here speaking to you as an American, or a patriot, or a flag-saluter, or a flag-waver — no, not I. I’m speaking as a victim of this American system. And I see America through the eyes of the victim. I don’t see any American dream; I see an American nightmare.”
맬컴이 네이션 오브 이슬람과 결별한 뒤, 메카 성지순례와 세계 이슬람교도와의 만남은 그의 사상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백인에 대한 저항이 아닌, 인종 차별 반대와 흑인의 권리 획득에 집중하였다. 그의 변모된, 보다 포용적인 맬컴이 재평가되고 있다. 마틴 루터 킹과는 동시대를 살았지만 한번 잠깐 조우했다. 그들의 사상은 양극에서 서로에게 가까이 접근하고 있었는데, 이를 펼치지 못하고 둘 다 40이 채 못되어 암살당한다.
맬컴 엑스와 우연한 두 번의 만남. 그의 자서전과 그의 죽음의 현장인 기념관에서의 만남으로 인해 그에 대한 글과 영화를 보게 되었고, 역사적 인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그의 삶의 고뇌와 변모를 알게 되었다. 맬컴과 친분이 있는 시인 Maya Angelou(마야 안젤루)는 인터뷰에서 그를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자신이 한 말이나 행동이 잘못되었을 때, 이를 잘못했다고 시인하고 바로잡는 용기. 그의 용기 있는 발자취가 오늘의 “Black Life Matter”에 까지 이어지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ktbLy5euvY
마야 안젤루의 시, “Caged Bird” 후반부 인용으로 글을 맺는다. 마틴 루터 킹의 “꿈”과 맬컴 엑스의 “악몽”을 그녀는 시로 노래한다.
But a caged bird stands on the grave of dreams
his shadow shouts on a nightmare scream
his wings are clipped and his feet are tied
so he opens his throat to sing.
The caged bird sings
with a fearful trill
of things unknown
but longed for still
and his tune is heard
on the distant hill
for the caged bird
sings of freedom.
그러나 새장에 갇힌 새는 꿈의 무덤 위에 서고
그의 그림자는 악몽의 비명을 지르네
날개는 잘리고 발은 묶여
목청을 열어 노래하네.
새장에 갇힌 새는 노래하네
알 수 없음에
두려움에 찬 떨림으로
하지만 여전히 갈망하는
그의 곡조는 들리네
먼 언덕에까지
갇힌 새는
자유를 노래하니까.
Sue Cho, “Pay homage to heroes and heroines of our time”, 2021, Digital Painting
수 조( Sue Cho)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서양화, 판화를 전공하고, 부르클린 칼리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뉴욕 해리슨 공립 도서관, 코네티컷주 다리엔의 아트리아 갤러리 등지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뉴욕 한국 문화원 그룹전( 1986, 2009), 리버사이드갤러리(NJ), Kacal 그룹전에 참가했다. 2020년 K and P Gallery에서 “Blooming” 이란 타이틀로 온라인 전시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