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39 - Korean American: 민들레가 미나리 되다
Sue Cho, “Stop Asian hate: Don’t underestimate”, 2021, Acrylic
코로나 백신을 맞고 나오는 병원 엘리베이터에서였다. 6 명이 조르르 탔다.
젊은 동양 남자, 중년 흑인 여자, 60+ 백인 부부, 중년 백인 남자 그리고 나. “이젠 코로나 방탄조끼를 입었으니, 좀 안심해도 되겠구나”하고 마음을 놓는 찰나였다. 내 뒤에서 60+ 백인 남자가 “Finally got vaccinated. Complements from the Chinese Virus!”(드디어 백신을 맞았네. 젠장, 중국 바이러스 덕분에!) 비아냥거렸다. 내가 뒤돌아보면서 “Don’t talk Asian slur!”(아시안을 모욕하지 마!)라고 쏘아붙였다. 조용해질 줄 알았는데, “Where do you think come from the virus?”(그럼 도대체 바이러스가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니?)라고 반격을 하였다. 바이러스는 중국에서 온 것은 맞고, 나는 중국인이 아니라고 할까, 그건 아닌 것 같고 속으로 무어라 답할지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때 다른 백인이 나를 거들어 주었다. 그들끼리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마침내는 “You are racist!”(인종 차별자!), I have freedom of speech!”(나는 말할 자유가 있다고!)라고 큰 소리가 오갔다.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오면서 정문에 있는 수위에게 “Please report him to the police! He insulted Asians!”(경찰에 연락 좀 해주세요! 아시안들을 혐오하는 발언을 해요!)라고 소리쳤다. 정신없이 도망쳐 나오느라 도와준 백인에게 고맙다고 이야기도 못 했다. 그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그 순간 무어라고 했어야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다음 날 아침 시편에 “Shame”이 나오는 성경 구절을 읽게 되었다. 문득 “그래, Shame on you!”(부끄러운 줄 알아!)라고 소리쳐 주었어야 했는데. 영어가 짧아서… 도올 선생님이 요한복음 강의에서 영어 성경을 외우면 단순하고 심오한 영어를 하게 된다는 말이 생각나 “과연!” 하고 미소짓는다.
엘리베이터 장면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 그를 망신시키고, 소리쳐 주어 시원하다는 느낌보다는 마음이 어지럽다. 그가 병원 문을 마스크를 벗어 재끼고 화가 나서 길길이 날뛰면서 나가는 모습이 지금 미국의 현재, 인종차별,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아시안 혐오의 민얼굴을 보는 것 같아서.
아이들에게 엘리베이터 이야기를 전해주니, “엄마, 잘했어요! 하지만 조심하세요. 요즘 뉴욕시 곳곳에서 아시안 혐오범죄가 일어나 위험해요.”라고 걱정한다. “엄마도 위험한 상황이면 무조건 도망가지. 외출할 때,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옷장에서 좀 좋은 옷을 꺼내 입고 나간단다. 그리고 꾸부정하게 걷지 않으려고 가슴을 하늘로 향하고, 손바닥을 앞으로 돌려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걸으려고 한단다. 누가 아시안 노약자라고 건드리지 않게.”
Asian American Youth Council (AAYC) Asian Hate Crime Rally, Photo by Hye Kyung Won
지금 뉴욕시를 비롯해 미국 전역에 아시안 혐오 발언이나 범죄가 현저하게 증가했다. 애틀랜타 총격 사건으로 한국인을 포함한 6명의 아시안 여성이 사망한 사건 이후, 아시안 커뮤니티, 한인 종교, 시민단체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아시아인들이 서로 연합하여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또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교육세미나 모임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가 불이익을 당할 때 가만히 있지 말고 “speak out and confront” 하라는 말을 많이 듣다 보니, 나처럼 나서기 싫어하고 겁이 많은 사람도 엘리베이터에서 엉겁결에 한마디 한 것 같다.
요즘 푸른 잔디밭에 노란 민들레꽃이 무성하다. 재미 신학자 Jung Young Lee가 “Marginality: The Key to Multicultural Theology”에서 민들레를 Korean American에 비유한 글이 생각난다. 노란 민들레는 아무리 뿌리를 뽑아도 계속 나오는 것처럼, 아무리 한국인임을 부인하고 미국인처럼 살아도, 한국인의 뿌리, 피부색, 인종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어정쩡한(In-between)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정영 교수는 어느 한쪽을 포기하지 않고 한국인과 미국인(Korean American)으로 양쪽을 다 포용(In-both)할 때 뛰어넘을 수(In-beyond) 있다고 한다.
이번에 아카데미상 6개 부분에 노미네이트 된 Lee Isaac Chung 감독의 “미나리” 영화를 보면서, Korean American으로 두 세계를 포용하고 변방(미국에서의 한국인의 위치)을 중심으로 만든 진정한 뛰어넘는 작가, 감독이 아닌가 싶다. 한국 이민자로의 가족의 이야기는 그의 삶의 뿌리에서부터 올라온 진심이 담겨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이민을 온 부모의 힘든 경험들, 아시아인으로 겪는 인종차별과 미국 사회의 적응, 세대 간의 문화적 갈등은 한국 이민자라면 나의 이야기처럼 공감이 갈 것이다. 아니 한국 이민자의 스토리를 넘어서 미국의 이민자, 보편적으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족 이야기이다.
“미나리” 영화의 미나리꽝 장면
민들레보다는 미나리의 비유가 맘에 든다. 한국이 어려웠던 시절 이민자들은 아마도 한국인으로 드러내기보다는 미국인으로 동화하려는 마음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그간 놀라울 정도로 여러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이 올라가고, 코리안아메리칸 2~3세들은 한국의 언어, 음식, 문화를 알고 싶어 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민들레처럼 뽑아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순자 할머니가 말했듯이 “미나리는 원더풀이란다.” 생명력과 적응력이 강한 미나리는 정이삭 감독에게는 한국 이민자 가족의 사랑을 담고 있다고 한다.
올해 첫 민들레 씨를 보았다. 따서 후하고 불었다.
“우리 손녀 세대에는 서로 다름이 존중되고 인종차별이 없는 평등한 세상이 되기를!”
Sue Cho, “Love one another”, 2021, Mixed Media
PS1. 아시안 혐오범죄 대응 매뉴얼을 시민참여단체(KACE) 웹사이트에 가면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https://kace.org/wp-content/uploads/2021/04/Stop-Hate-Crime_Manual-2021-II.pdf
“나도 이렇게 반응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차분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