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44 - 뉴욕에서 시카고 느림보 여행 (2) 우연한 여행, 뜻밖의 횡재
SueCho, “Amish Village”, 2021, Digital Painting
시카고까지 장거리 운전을 부담스러워하는 남편에게 후회하지 않을 일정을 짜 놓겠다고 큰소리는 쳤는데, 사실 뉴욕과 시카고 사이는 펜실베니아주를 지나면 그야말로 평평대로 옥수수밭인데 뭐가 있을까 은근히 걱정되었다. 구글을 하다 보니 놀랍게도 국립공원(National Parks)이 가는 길에 거의 우회하지 않고 두 군데 (쿠야호가밸리 국립공원, 인디애나듄스 국립공원)나 있다. 이럴 수가! 정말 다행이다. 아니면 남편의 투덜거림을 어떻게 감수하나 했는데. 미국에 국립공원이 모두 63개인데 두 군데나 지나가다니, 과연 구하면 찾게 되는구나. 하이웨이에 들어서면서 놀라운 것은 수많은 트럭들의 행진이다. 코비드 시대에 온라인 주문과 배달이 폭주하지만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 뉴욕시내 종횡무진 배달자전거들의 질주가 겹쳐서 떠오른다.
Cuyahoga Valley National Park & Indiana Dunes National Park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Cleveland) 근처에 있는 쿠야호가 밸리 국립공원(Cuyahoga Valley National Park)은 뉴욕과 시카고의 중간 지점에 있어 한 두 시간 쉬어가기 좋다. 여기는 다른 국립공원과 달리 도시와 뚝 떨어져 있지 않고 인접해 있다. 나는 자연을 선호해서 이 공원을 여정에 넣었는데, 도시문화를 즐긴다면 한국미술품도 많이 소장한 클리블랜드 미술관(Cleveland Museum of Art) 주변에서 일박하면서 문화센터들을 돌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Brandywine Falls, Cuyahoga Valley National Park
쿠야호가 공원은 시카고 왕복길에 각각 들려 한번은 브랜디와인 폭포를 구경하고 오는 길에는 Ledges(레지, 암반) 주위를 하이킹했다. 레지 주변 트레일에는 벌레가 어찌 많던지 다들 스프레이를 하고 가는데 무방비로 갔다 벌레에 많이 물려 중간에 도망쳐 빠져나왔다. 시간이 좀 더 여유가 있다면 Cuyahoga Valley Scenic Railroad(시닉 열차)를 타고 식사를 하면서 편안하게 경치를 즐기거나, 자전거로 하이킹해도 좋을 듯하다.
SueCho, “Scenery by Running Train”, 2021, Digital Painting
인디애나 듄스 국립공원(Indiana Dunes National Park)은 시카고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거리에 있어 여기까지 오면 시카고를 다 온 것이나 진배없다. 전에 왔을 때보다 최근(2019) 국립공원으로 승격이 되면서 주변 시설이나 표지판들이 단장이 되고 국립공원의 품격이 보인다. 바다 같은 미시간 호수와 멀리 시카고 다운타운이 보이는 모래사장으로 직진할 수 있는데 나는 은근히 고생을 사서 하는 스타일인가 보다. 굳이 땡볕에 만리장성처럼 느껴지는 계단을 보니, 도전정신이 발동해, 모래언덕을 넘어 비치에 진입하겠다고, 걷고 나니 운동화에는 모래가 한 냥씩 그득히 들어 있었다.
Indiana Dunes National Park
물론 우리의 일정에 넣었던 두 국립공원에서 한 두 시간 하이킹하고 쉬었다 가는 것도 좋았지만 여행을 하고 와서 기억에 남는 것들은 엉뚱하게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의 우연한 만남이었다.
톰 소여(Tom Sawyer)와 아미시 맨(Amish Man)
Sue Cho, “Young Fisherman”, 2021, Digital Painting
중간중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쉬는 대신, 주로 근처 공원을 찾아 피크닉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었다. 강이 흐르는 공원이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백팩에 드링크와 낚시 도구를 챙겨온 소년을 만났다. 톰 소여처럼 학교를 땡땡이(Play hooky)치고 왔나, 아 지금은 방학이겠구나. 물가에 낚싯줄을 드리우는 그 소년을 보니, 전화기에 코를 박고 게임이나 SNS를 하지 않고 자연을 즐기는 모습이 건강해 보이고 대견했다. 그 소년에게 다가가 무얼 잡았냐고 물어보았다. 강에는 Bass 종류가 있는데 아직 한 마리도 못 잡았다고 한다.
전혀 인연이 없을 미국의 작은 마을의 풍광과 사람들이 흥미롭기도 하고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동네 우물가나, 골목길에 옹기종기 놀다가 모래밭에서 두꺼비 집을 짓던 시절. 아마도 어느 시대에 살고 싶냐고 묻는다면, 안경이 발명된 이후(눈이 너무 나빠) 추장 딸로 태어나(잠자리와 먹거리, 원시적인 것이 까다롭고 나머지는 둔하니까)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이 좋지 않았나, Globalization이 되기 전에 … 아마도 우리 어린 시절 그즈음에, 그때는 생활고를 몰라서 그랬을까?
인디애나주 Howe라는 곳에 지나다 Military school 길표시가 있어 큰 마을일 것 같아 들렸다. 마치 다른 시대를 찍는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턱수염을 기르고 정갈한 복장의 아미쉬 맨(Amish Man)이 마차를 타고와 주차장에 나란히 주차했다. 근처에 볼만한 곳이 있나 물어 보려고 하는데 남편은 내가 혹시 마차를 태워줄 수 있냐고 물어보는 줄 알고 말리려고 나한테 다가왔다. “내가 코비드에 그런 말을 했겠어요?” 남편이 나를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모험심이 있는 여인네로. 신앙적인 교리를 따라서겠지만,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전기를 비롯하여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지 않고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아미쉬 공동체를 우러르게 된다.
구름과 햇님
미키마우스에게 메세지를 전하는 천사
끝도 없는 평야와 농원, 그리고 넓은 하늘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무심히 지나치다가 구름들이 말하는 스토리가 무얼까 상상해본다. 숙부님 생각이 난다. 구름 사진을 즐겨 찍으셔서 뽀빠이, 죠지 워싱턴 모양의 구름 사진을 전에 보내 주셨다. 어렴풋이 국민학교 2학년 때 숙부님이 장가 가시기 전까지 함께 살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학교에서 비누로 조각해오는 숙제가 있었는데 삼촌(그땐 그렇게 불렀다)이 조각칼로 캥거루를 만들어 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뻔히 내가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날 텐데, 뻔뻔한 건지, 순진한 건지 웃음이 난다. 숙제를 담는 봉투를 만들어 주셨는데 거기에 병아리를 그려 놓아 아이들이 부러워했다. 삼촌이 손재주가 좋으셨는데… 집에 돌아와서 오랜만에 숙부님께 소식을 전하면서 수태고지의 미키마우스 버젼 같은 위의 사진을 보내드렸다. 숙부님도 구름 사진으로 답신하셨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전혀 예상치 않은 곳에서였다. 오하이오주의 평지를 달리며 지루해서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떡 하니 우리 앞에 나타난 태양이었다. 여태까지 본 선셋 중 가장 멋진 광경이었다. 어떠하면 태양에 줄무늬가 져 있을까? 나한테는 불가사의다. 시카고 느림보 여행이 가져다준 세렌디피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