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진의 홀로요리 37 - 금전출납부 같은 아버지를 위하여, 버터 대구살 구이
버터 대구살 구이
중요한 사실을 “폭로”하자면 나는 요리사가 아니다. 요리 자격증도 없다. 요리 블로거도 아니다. 얼마 전 길목 편집진에서 인터뷰할 때도 내가 요리사인줄 알았다고 했다.
난 자장면도 비비지 않고 그냥 먹는다. 남이 비벼 줘야 한다. 이제까지 엄마가 차려주고 준비해줘야 먹었으니까. 지금도 나는 비빔냉면마저도 비비지 않고 그냥 먹는다. 역시 남이 비벼줘야 한다. 그렇다. 그런 내가 무슨 요리를.
그러다 벌써 홀로요리 연재가 3년이 넘어 37번째 글이 되었다. 이렇게 오래 할 줄이야. 그리고 주제가 요리일 줄이야. 내가 벌 받은 걸까? 네 밥은 네가 차려 먹고, 네 자장면은 네가 비벼먹으라는 하느님의 말씀인가...그걸로 글을 쓰라는 신의 계시인가?
홀로요리 1탄, 잔치국수
그렇다. 나는 살면서 계획대로 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계획없이 사는 게 제일 좋은 것이란 생각이 든다.
'뭐 하려 말고 뭐 되려 말자. 억지로 하니까 오버하고 무리하고 몸상하고 마음 상한다.'
그런데 사실 계획대로 된 것이 더 많다. 단지 욕망과 계획을 구분하지 못했다. 욕망을 계획으로 착각한 것이다. 욕망은 이루어질 수 없고, 채워지지도 않으니까.
올해가 저물어 간다. 한해가 저물기 전에 미리 세워두었던 계획들을 꺼내어 본다. 역시 허망하다. 그래도 올해 아버지를 좁은 공간에서 좀 더 넓은 잔디밭이 있는 공간으로 옮겨 드렸다. 계획대로 되었다.
아버지는 책장같이 좁은 납골당에 계셨다. 평생 회계장부를 꽂아두는 사무실에서 일했는데 여기서도 책장같은 좁은 곳에 계시면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해가 잘드는 넓은 곳으로 옮긴 거다. (아버지께서 생전에 땅 ‘구입’이 아니라 구독경제 스타일의 묘지를 장기임대한 곳이 있었다.) 내가 올해 계획한 것 중 유일하게 해낸 것이다. (아 또 있다. 공부 다시 하기로 한것!!!)
참고로 말하는 데, 옮기면서 추가로 돈이 들어가지 않았다. 잔디밭 조성하고 작은 표석을 해야 하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들어 갈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평생 금전출납부를 만지신 아버지가 추가로 돈 들어가게 할 리 없다. 납골당에서 돌려받은 임대비용은 묘지 조성비용에 10원의 오차도 없이 딱 정확했다. 역시 아버지였다. 흥청망청 나 자신에 비해 “아버지는 돌아가셔도 정말 다르구나”를 다시 한 번 느꼈다.
옮기면서 술 한 잔 동태전이나 드릴 까 생각했다.
생선은 아버지도 나도 좋아하니까. 오마이갓... 동태전용 생선일 줄 알았지만, 이렇게 큰 대구 생선살일 줄이야....어른 손바닥만 한 흰살 생선살을 준비했다. 동태전용은 아니다.
이참에 생선전이 아니라 생선요리를 준비할까 했다. 이걸 이름을 뭐라고 해야 하나. 생선구이이긴 한데...
일단 버터 대구살 구이라고 해야겠다. 사실 그냥 대구살을 올리브기름에 약한 불로 익혀서 간장에 찍어 먹으면 된다. 그럼 끝. 하지만 좀 더 맛있게 먹어보자.
자 준비물이 뭔지 보자
◆ 준비물
수입산 대구살
올리브기름
버터
서양식 말린 고추(페페론치노)
레몬
후추
오레가노잎
시금치 또는 섬초, 가지
◆ 만들기
1. 냄비에 올리브기름을 두른다. 충분히 두른다.
2. 중불에 대구를 올린다. 센 불이면 탄다.
3. 대구가 익을 쯤에 페페론치노 두 개를 넣는다. (미리 넣으면 탄다)
4. 대구 껍데기가 노릇할 때 즘에 버터를 넣는다. 생선 한 덩어리 당 밥숟갈로 한 스푼 떠서 넣는다. 동맥경화를 우려할 정도로 넣어도 된다. (이건 유머입니다. 다만 기름과 버터는 개인의 건강에 따라 의사의 지시대로 하세요. 드실 분이 만드시면서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5. 레몬 껍질을 연필 깎듯이 그 크기로 넣는다.
6. 대구를 노릇노릇하게 굽는다. 버터가 골고루 풍미가 배도록 골고루 버터기름을 얹는다.
7. 대구를 다 익으면 접시에 올려 둔다.
8. 남은 기름으로 섬초와 가지를 볶는다.
대구살을 구운 후, 그 위로 버터기름을 끼얹는다
◆ 세팅하기
1. 접시에 후추와 오레가노잎을 충분히 뿌려둔다.
2. 그 접시에 익힌 대구를 올려둔다.
3. 냄비의 남은 버터기름을 대구 위에 끼얹는다.
4. 접시에 익힌 채소 그리고 빵을 준비해둔다.
결들이는 채소
맛있게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