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백련재 정원일기 5 – 위로
자, 위로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이다.
백련재 문학의 집에 살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양이라는 동물을 좋아하게 되었다.
삼색 어미고양이 (백)연재, 색깔별로 이름 지어준 까하, 회, 죽은 노랑이 그리고 아비고양이. 이 다섯 식구는 백련재에서 나를 가장 위로해 준 생물들이다.
배롱나무나 상추랑 대화하던 내게 동물들과의 대화는 엄청난 교감을 선사해 주었다.
아기고양이들이 창밖이나 문 앞에 와서 “야옹” 부르면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간식을 주었다. 고것들은 댓돌 앞에 조로록 앉아 내 손에 간식만 쳐다보다 내가 안 주고 가만히 있으면 내 발가락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툭 치곤 했다.
저들끼리 순서가 있어서 까하와 회가 그때그때 힘의 우열에 따라 먼저 먹거나 기다린다. 훌쩍훌쩍 커서 이젠 먹이 앞에서 제 어미를 밀치기도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털을 핥아주며 애교를 부리고 젖이 돌면 다 큰 것들이 징그럽게 빨아먹기도 한다. 어미는 새끼들이 다 먹고 나면 먹는다. 아비는 아예 먹을 생각 못 하고 늘 뒷전에만 있는다. 애비가 돼서 사냥도 안 해오지만, 연재랑 아이들이랑 살 맞대고 다정히 지낸다. 내가 방에서 나오거나 어디 갔다 오면 마중 나오듯이 나타나는 고양이들 덕에 하루에 적어도 한 번은 웃을 수 있었다.
도보 순례하던 나에게 밥과 커피를 주신 할머니들과 길을 잃거나 돌아갈 일이 막막하던 나를 차에 태워주신 분들은 해남의 너른 품을 상징하는 위로였다. 그분들께 고산 윤선도 녹우당 옆 백련재 문학의 집 입주작가라고 나를 소개할 때 당당했다. 그렇게 소개할 수 있게 해 준 해남군에 감사한다. 고정희 시인과 김남주 시인의 고향이기에 가능한 일이지 싶다. 그러니 작고하신 두 분 시인들께도 고맙다.
더불어 매일 아침 툇마루를 쓸고 닦고 텃밭을 가꾸고 직원들 밥을 해 주신 최 여사님, 백련재 조경 및 관리를 도맡아 하시며 내가 떠날 때 “별 선생님 생각나면 하늘의 북두칠성을 볼게요.”라고 하신 이 주사님, 뭐든지 뚝딱 다 고쳐주시는 박 주사님, 북카페 책을 정리하고 연못 잉어들에게 모이를 주며 땅끝순례문학관을 관리하는 오미순 님, 땅끝순례문학관의 프로그램 기획자이자 백련재 문학의 집 입주작가의 든든한 지원자 이유리 학예연구사님, 고산 윤선도와 윤이후와 공재 윤두서의 자취를 알려주신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 정윤섭 박사님, 그 외 이름 모르는 분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여러분 덕분에 정원과 텃밭을 가꾸며 편안히 집필에 몰두할 수 있었다.
배롱나무꽃이 화사하던 8월에 백련재 문학의 집에 들어와 12월이 되었다.
내 몸은 해남에 있지만, 서울에서는 내 사진이 전시되었다. 해남에서 찍어 보낸 사진이었다. 2021년 포토청 단체사진전의 주제는 <위로>. 전시장과 도록에 실은 글을 여기에 옮긴다.
<금륜이와 배롱나무>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백팔배
내게는 오체투지와 다름없던
일지암 비장한 빗소리도
가리지 못한 통곡 소리
팽목항 보이는 대웅전 댓돌
금빛 바퀴 굴러 올라와
위로란 곁에, 있어 줌
체온으로 알려준 금륜이
그리고 머무는 정원마다에 있던
자미화 백일 피는 간지럼 배롱나무
사브레 과자 포장지에 이 시를 써서, 쓰레기 버리고 들어가시는 월실 작가님께 쪼로록 달려가 어린아이처럼 보여드리자, “위로란이 무슨 난 이름이에요?”
웃음이 나팔꽃처럼 빵 터졌다.
이렇듯 해남은 내게 위로를 주었다.
송, 석, 난, 매, 죽, 월실 작가라는 위로를.
녹우당 은행나무와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만나다’라는 위로를.
송하와 나무와 화야와 담소와 차여사와 도보 순례길의 할머니와 법강스님이라는 위로를.
대흥사 일지암 금빛 위로와 미황사 자하루 자줏빛 위로를.
다섯 달이나 품어준 나의 네 번째 정원 백련재라는 위로를.
땅끝까지 나를 찾아와 준 정미이모와 모친, 관지와 용용, 세영, 느리, 리현 그리고 도반이라는 위로를.
해남에서 진도까지 18번 국도변 명량로와 땅끝천년숲옛길과 땅끝길과 달마고도와 해남 구석구석에서 걸은 200여km 길 위의 위로를.
※ 땅끝순례문학관 백련재 문학의 집 소식지 2021 겨울 제7호 원고를 일부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