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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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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 뉴튼 수도원에서 하룻밤

posted Jan 0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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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호수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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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46 - 뉴튼 수도원에서 하룻밤: 크리스마스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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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Cho, “Monument monastery with monks and evergreen trees”, 2021, Digital Painting

 

 

고사리 같은 손녀 손을 잡고 커네티컷 아들네 근처 크리스마스트리 농장에 갔다. 바람결에 향긋한 솔 내음이 난다.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내리며, 예쁘장한 어린 소나무 하나 점찍었다. 하지만 나무 파는 사람의 조언대로, 아기 소나무를 베는 대신 밑이 횅하고, 키가 껑충한 소나무를 골랐다. 전체 모양은 예쁘지 않아도, 웃동을 잘라 쓰면, 값도 저렴하고, 작은 트리로는 손색이 없다고 한다. 바늘이 날카롭지 않고, 솔향이 진한 더글러스 퍼(Douglas Fir)를 골랐다. “할미, 헬프, 합비 헬프” 크리스마스 장식을 걸었다, 떼었다 하며 손녀와 한나절을 알뜰하게 보냈다. 멀지만 않으면, 지난 10월 말 하룻밤을 보냈던 뉴저지 뉴튼 수도원(St. Paul’s Abbey)에서 트리를 사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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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튼 수도원의 크리스마스트리농장은 커뮤니티를 위해 오래전부터 내려온 전통이고, 수도원의 중요한 수입원이라고 한다. 추수감사절 다음날 문을 여는 이곳에 아이들과 함께 가서 트리를 고르고, 함께 자르고, 대강절 (Advent, 크리스마스 전 4주간 예수의 성탄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동안 기다리고 준비하면서, 소망, 평화, 기쁨, 사랑을 나누며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아름다운 전통이다. 아이들 어렸을 때에는 플라스틱 트리로 매년 리사이클 하거나 어쩌다 홈디포 (Home Depot)에 가서 나무를 사왔었다. 그 땐 알지도 못했고, 여유가 없었던 것을 손녀와 할 수 있다는 것이 ‘할미 합비’의 특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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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glas fir(from left), Colorado spruce, Concolor fir

 

 

지난 10월 말 뉴튼 수도원을 찾았을 때는, 수사님들이 3만 그루나 되는 소나무밭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손질하느라 한창 바쁘시다. 나무를 담당하시는 키다리 수사님(버나도 수사님)이 열심히 전종을 하시는데 일손이 부족해 요셉수사님도 함께 나무 깎기에 여념이 없으시다. 소나무밭을 거닐면 머리도 맑아진다고 한다. 수사님이 세 가지 다른 종의 잎을 따서 향을 맡아보라고 하신다. 청록의 빛이 고운 Colorado spruce, 소나무 향이 진한 Douglas fir, 바늘이 길고 레몬 향기가 나는 Concolor fir. 집에 가져와 화병에 담아두고, 은은한 향기를 한 달이 넘게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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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여름휴가로 한국에 갔을 때 뉴튼 수도원에 관해 처음 알게 되었다. 저녁때면 오빠와 형부가 가져온 영화와 다큐를 함께 보았는데, 라루 선장(Captain Leonard La Ru, 1914-2021,후에 마리너스 수사님이 되심)의 이야기를 다큐로 보면서 모두 마음이 뭉클해졌다. 부모님도 이북이 고향이시고 가족들의 일부만 피난을 나오셔서 조부모, 숙부, 외조부모, 이모는 이북에 남겨져 뵌 적이 없고, 오래된 사진으로 보았던, 어렴풋한 기억만 있다. 거제도에 떨어진 피난민의 이야기가 우리 부모님 이야기 같아서 기회가 되면 마리너스(Marinus) 수사님의 묘지가 있는 이곳에 와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뉴욕시에서 멀지 않아 3년 전 여름에 처음으로 방문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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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튼 수도원은 현재 한국의 왜관수도원에 소속이 되있고(마리너스 수사님과의 인연으로) 9분의 한국 수사님과 탄자니아에서 오신 수사님 한 분, 총 10분의 수사님이 계신다. 베네딕도회 수도원의 모토는 ‘일하면서 기도하는 생활’이라고 한다. 수사님들이 밭에서 농부의 복장으로 일하시다, 미사 시간이 되면 어느 틈에 검은 수사복으로 나타나신다. 3년 전 여름, 원장 수사님이 부지런히 밭을 가꾸고 계셨는데 이번에 와 보니, 피정의 집 입구에 수사님이 키우신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보암직, 먹음직, 탐스럽게 달려 있었다. 잠시 선악과를 본 이브의 유혹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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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수도원은 고요하다. 수사님들이 계신 동 외에는 피정하는 숙소에 우리만 있었다. 창문을 여니 싸늘한 밖의 공기가 느껴진다. 캄캄한 수도원 마당, 마리아 상에 빛이 조명이 되었고 발길이 그 곳으로 향해졌다. 그 앞 벤치에 앉아 마음 속에 응어리진 것들을 하나씩 풀어보려 하였다. 간밤에 흑곰 세 마리가 이 곳에 출몰했다고 수사님께 나중에 들었다.

10월 말 공기가 차고 히터가 안 들어와  방이 썰렁하였다. 전기담요와 뜨거운 물주머니를 준비하고 왔는데 코의 기운이 차니 엎치락뒤치락 잠이 들지 못했다. 방에는 여름에  쓰고 치우지 않은 선풍기가 하나 있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온풍기가 아닐까 하는 바람에 스위치를 눌러보았다. 코의 싸늘한 기운이 온풍기로 녹여지니 스르르 잠이 들었다. 늦잠이나 실컷 자자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깨보니 새벽 미사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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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님이 색색별 수실로 미사 구절을 표시해주시고, 메모지에다 그날 순서를 적어 준비해 놓으셨다. “늦잠을 잤으면 이 수고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가톨릭 신도가 아니라서 미사에 익숙지가 않아 저녁 예배 때 계속 뒤적거리는 것을 눈치 채셨나 보다. 찬미하라, 해, 달, 별, 비, 바람, 땅에서 싹트는 모든 것들… 호명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라는 구절(다니엘 찬가 3, 57-88, 56)을 들으면서 찬미한다는 것에 대해 비로소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전에는 구하기만 여념이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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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 밖을 나서니, 창문 불빛이 점차 사르르 꺼지며 하늘에 걸린 그믐달이 눈에 들어왔다. 달빛이 희미하게 비치는 주변에 하나하나 눈길이 머무니, 온 우주가 찬미한다는 말씀이 몸으로 느껴진다. 그 순간, 마치 새벽안개가 거치듯 마음의 그늘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늦잠을 즐기는 나는 결코 새벽예배 예찬론자는 아니지만, 묵상과 메디테이션으로 하루의 첫 단추를 잘 끼우면 하루가 단단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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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 후 요셉 수사님이 수도원 곳곳을 안내해 주셨다. 이곳에 물의 상수원이 흐르고 자연이 좋은 곳이라고 한다. 곰사냥을 하는 망루와 사슴사냥을 위한 은신처가 곳곳에 보인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호수에는 송어, 농어 등이 살고 있고 세 마리의 백조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백조 새끼들이 거북이한테 먹히기도 한다고 한다. 비버들이 물길에 나뭇가지를 쌓아 막아놓아 물이 길로 넘쳤다. 수도사님이 나뭇가지를 치워 물길이 막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분주히 움직이신다. 소나무는 물이 들어오면 죽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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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에이커나 되는 수도원 주변은 한때 아름드리나무가 울창하고 좋은 여름 캠프장이었는데 이제는 시설들이 버려지고 장애인을 위한 학교도 최근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시설을 잘 돌볼 손길과 연결이 되어 전처럼 캠프장에 아이들이 뛰놀고 나무가 무성해지고, 땅들이 다시 살아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오신지 얼마 안 된 주방 담당분이 정성껏 부쳐주신 호박 부침개가 별미였다. 내가 묵었던 모든 수도원(홀리 크로스 수도원과 이곳 두 군데지만)은 저녁이 간단하고 점심이 푸짐하다. 수도원에선 꼭 점심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레슨을 얻었다. 언젠가 손녀와 함께 뉴튼 수도원을 다시 찾아와, 소나무밭도 거닐고, 크리스마스 기적의 항해, 마리누스 수사님 이야기도 전해주고, 크리스마스트리를 함께 골랐으면 한다. 그땐 조금 더 큰 소나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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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Cho, “Children decorating Christmas tree”, 2021, Digital Painting

 

PS. 뉴튼 수도원 (St. Paul’s Abbey)은  메레디스 빅토리호(the Meredith Victory)의 레너드 라루 선장(Captain Leonard La Ru)이 계셨던 수도원이다. 1950년 메레디스 빅토리호가 1만 4천 명의 피난민을 흥남에서 싣고, 12월 24일 부산에 도착했고, 배에서 태어난 5명의 아기까지 모두 안전하게 거제도에 정착, ‘크리스마스 기적의 항해’라고 불린다.(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님도 이 배에 타셨다고 한다) 라루 선장은 1954년 마리너스(Marinus) 수도사가 되시고 2001년, 이곳에 영면하셨다.. 

https://www.youtube.com/watch?v=bYLWAc_r7jo

 

레너드 라루 선장/마리너스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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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rca 1950. (Photo: Bob Lunney), circa 1960. (Photo: Diocese of Paterson, New Jersey)

 

''I think often of that voyage. I think of how such a small vessel was able to hold so many persons and surmount endless perils without harm to a soul. The clear, unmistakable message comes to me that on that Christmastide, in the bleak and bitter waters off the shores of Korea, God's own hand was at the helm of my ship.''­ ­- Captain Leonard La Rue 

”나는 종종 그 항해를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 적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한 영혼도 다치지 않고 끝없는 위험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생각해봅니다.  크리스마스 무렵, 한국해안의  거칠고 황량한 파도 속에, 하나님의 손이 내 뱃전을 인도하고 있다는 확신합니다.“ - 라루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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