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철창에 갇힌 고양이
겨울이 길다. 여름 이야기 하나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예전에 써 두었던 글을 뒤적였다.
promenade plantée (나무가 심어진 길)
파리 12구에는 서울역 고가 보행로 ‘서울로 7017’의 원조격이 되는 길이 있다. 버려진 고가 철도를 안목이 남다른 계획가와 조경전문가들이 도시의 새로운 공공 공간으로 창조한 곳이다.
나무가 심어진 길이니 우리식으로 하면 가로수길이라 불러야 하나? 초록 오솔길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여하간 도시의 교통을 위해 고가 구조물로 지어졌던 가로 또는 철도가 기능을 다하고 새롭게 변신한 사례는 이곳 말고도 있다.
파리의 초록 오솔길
맨해튼의 하이라인(high line)은 언론에 여러 번 노출되어 인지도가 높다. 파리의 초록 오솔길이 하이라인보다 먼저 공원으로 탈바꿈하였으니 원조 논쟁을 하면 우위에 있을 것이다. 서울역 앞 서울로7017은 내가 즐겨 찾는 곳이다. 세종과 서울을 오가며 살아야 하는 처지이다 보니 서울역을 참새 방앗간 들리듯 오간다. 그나마 근처에 풀냄새 나무 그늘이 있으니 이곳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것이다. 잠시 틈이라도 생기면 남대문시장에서 공덕동으로 이어진 초록의 공간을 어슬렁어슬렁 다녀도 좋으리라.
서울로7017 개장 하던 날 찾았다(2017. 5. 20.)
그렇게들 논란이 있었으나 이제 어느덧 자리를 잡아 도시의 보행자를 품어 주는 공간으로 정착하였다. 이러저러한 이야기가 많은 경의선 숲길도 핫플레이스로 정착하였다. 아직도 더 많은 길과 공간이 초록나무가 심어질 공간으로 대기하고 있다. 말이 대기지 나무를 심어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어야 할 공간이 산적해 있다는 의미다. 서울은 정원과 도시숲과 같은 공적 공간이 부족할 뿐 아니라 보행 친화적이지도 않은 공간이 도처에 널려 있다. 우리는 계획적으로 의도적으로 더 많은 나무를 심고 더 걷기 좋은 길을 의욕적으로 만들어가야 하리.
맨해튼의 하이라인, 궤도를 살려 보행로를 만들었다
파리의 여름, 파리지앵들은 대체로 휴가를 떠나고 온통 관광객이 점령하였다. 덜 붐비는 아침나절 공원 답사를 위해 구석구석 사부작사부작 다녔다. 날이 더워져 사부작거리며 걷기에 어떨까 살짝 걱정도 되었지만, 오늘 차갑게 식힌 백포도주를 텀블러에 얼음과 같이 넣어 다니며 홀짝이니 걸음도 가볍고 흥도 났다. 생활공간으로 그리고 일상의 삶으로 들어온 공원이 지천으로 널려 있으니 집 앞 공원에서 노닥거릴 일만은 아니라 도심 곳곳에 있는 공원을 모두 돌아다녀 보고픈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공화(共和)의 의미를 공원과 같은 공유 공간으로 풀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간곡하다.
초록나무길에 놓인 벤치와 벽화
그림자 철창에 갇힌 고양이를 만난 건 걸음이 느릿해질 무렵이었다.
초록길을 걸으며 나의 눈을 사로잡은 고양이가 있다. 그녀는 벤치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다. 사진을 찍고 돌아서 가는데 뭔가 미진하여 다시 가 보니 그녀는 그림자 철창에 갇혀 있구나. 아뿔싸! 구름이 걷히자 그녀는 영어의 몸이 되었다. 이십여 년 전 봉정사 영산암 답사 갔을 때 삼각함수와 그림자로 영산암 앞마당의 품격을 논하던 친구가 갑자기 떠올랐다. 때로 공간은 기억을 소환하고 소환된 기억은 공간과 다시 중첩한다. 그렇게 파리의 초록나무길은 다시 서울로7017과 이어진다. 아, 나는 공화(共和)의 정신을 공원으로 구원할 수 있으려나!
그림자 철창에 갇힌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