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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 대한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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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 대한 헌사 

 

 

나는 이상하게도 몸에 비해서 손과 발이 유난히 크다. 또 큰 손에 비하면 손목은 너무나 가늘고 손가락은 긴 편이다. 발 역시 그렇다. 큰 발에 비해서 다리는 가늘고 허약하다. 벗어 놓은 신발이 너무 커서 누군가 했다가 막상 내가 그 신발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모두 깜짝 놀란다.  

한때 나의 별명이 ‘작은 거인’이었는데 그것은 신발 탓이기도 했다. 그 뿐만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내 발보다 더 큰 신발을 신었다. 발에 꼭 맞는 신발은 마음이 불편하고 갑갑해서 일부러 헐렁하게 신었다. 길을 걸을 때 신발이 벗겨질 것 같기도 하지만 별 탈이 없었다. 일생동안 나는 내 발에 꼭 맞는 신발을 한 번도 신어보지 않았다. 

나에게는 나의 분신 같은 여행 파트너가 있었다. 우리는 약간의 모험심도 있었고 도전 정신도 같이 공유했다. 특히 낯선 곳을 좋아해서 시간만 있으면 여행을 했다. 또 취미도 비슷했고 시간 약속도 서로 잘 지켰기 때문에 그야말로 환상적인 짝궁이었다. 

30년 전쯤 일일까? 전라도 일대와 충청도 일대의 산사(山寺)를 돌아보기로 하고 여행을 시작했다. 선운사, 법주사, 송광사, 선암사, 미향사, 향일암, 보리암, 대흥사 등등. 민박도 하고 작은 호텔에서 자면서 지도를 펴 놓고 꼼꼼하게 챙기면서 기차와 버스, 택시는 물론 때로는 걷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한없이 흐뭇하고 저절로 미소가 떠오르면서 정겨운 그 산하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 여행 중 선운사 신작로에서 있었던 일은 내 생애에서 정말 잊을 수 없다. 영화 <서편제>의 청산도 장면이 내 눈앞에 그대로 펼쳐졌기 때문이다. 한무리의 농악놀이패가 꽹과리와 북을 치면서 신나게 몰려오고 있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었지만 나는 불현듯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그 놀이패 속에 뛰어들어 같이 춤추며 어울렸다.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뛰어 놀았다. 30분쯤을 그렇게 뛰고 춤추니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고 기분은 날아갈 듯했다. 놀란 것은 나의 단짝 친구였다. 나의 그런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일이 없었던 친구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기이하다는 표정으로 도저히 나를 이해할 수 없다며 난감해했다. 

“모르는 사람들 속에 그렇게 뛰어들 수가 있니?” 

“나는 그럴 수 있단다. 언제라도….” 

지금도 친구는 그때 그 일을 이야기하면서 때로는 나를 놀리고, 때로는 혀를 차기도 한다.  

우리는 이제 ‘여행을 가자’는 그런 말은 서로 하지 않는다. 충무로에서 만나 그 뒷길을 엉금엉금 걸어서 <한국의 집>에 들어가서 연못가에 앉아 있다가 돌아오는 것이 우리에게 맞다는 것을 서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는 정말 그랬다. 선운사 신작로에서뿐만 아니라 내 몸이 내 마음보다 먼저 움직였다. 내 마음이 결정하기 전에 내 발이 먼저 움직였기 때문이다. 내 발은 내 마음보다 먼저 모르는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한무리가 되어 버린다. 수없이 먼 길도 걸었고 험한 산길도 거침없이 갈 수 있었던 것 역시 나의 두 발이 내 몸을 지탱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얼마나 이 발에 대해서 무관심했고 무심했던가? 큰 발에 대한 감사와 고마움이 새롭게 벅차오름이 감격스러워 예쁜 색실로 만든 발찌를 끼워주며 내 마음을 전해 본다.  

아아! 다시 한번 신작로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마음껏 뛰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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