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지지 않는
지구촌 한쪽에선 어떤 권력자가 ‘No Fly Zone’이 필요하다고 뉴스에 나올 때마다 애절한 얼굴로 호소한다. 그들 스스로가 지킬 수 없는 하늘을 누군가 대신해서 지켜줄 수 있을까? 권력자의 집무실이 있는 곳은 ‘No Fly Zone’이다. 권력자의 이사는 ‘No Fly Zone’의 재설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방공포가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갈 판이다. 도심 곳곳에 포진할 방공포대와 부동산 가격과의 대결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 자못 흥미진진한 구도가 아닐 수 없다.
실시간 뉴스로 지구촌 여러 동네 리포터들이 전하는 전장의 소식은 우울하기만 하다. 뉴스를 떠돌다 동물원 우리안 피난을 떠나지 못한 생명체를 위해 음식을 장만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을 보고선 2018년 9월에 있었던 사건이 떠올랐다. 그때 썼던 글을 가지고 와 다듬었다.
인왕산 자락 옥인동에 근무하던 시절이니 1999년쯤이었나 보다. 노벨문학상 시즌이 되면 늘 언론에 오르내리지만 이미 마음이 늙어버린 작가와 정면으로 맞짱 뜨고 있는 시인이 서른이면 잔치가 끝났다고 읊조린 것도 아마 그즈음이었나 보다. 이십대 후반이었던 나는 그때 마지막 남은 술방울을 마시며 목청껏 노래불렀다. 김광석은 “나의 노래”에서 마지막 한방울의 물이 있는 한 마시고 노래하리라 불렀다. 그때 우리는 마지막 한방울의 술이라 고쳐부르곤 했다. 어디선가 라이브에서 광석이 형이 그렇게 부르기도 했다. 그는 내 동창의 사촌 형이기도 하다.
거미줄처럼 얽힌 세상 속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가지처럼
흔들리고 넘어져도
이 세상속에는 마지막 한방울의 물이 있는 한
나는 마시고 노래하리
나는 마시고 노래하리
그해 늦가을, 겨울맞이 바람이 세차게 불던 밤이었다. 광화문 앞 인도와 차도의 경계에 도열한 은행나무가 여름 한철 있는 힘을 다해 지면 아래로부터 수직으로 밀어 올린 생명의 물과 한껏 하늘을 향해 펼친 가지에서 수직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빚어낸 그 노랑노랑 물든 자신의 분신을 순식간에 떨쳐내던 그 순간을, 그 찰나를 나는 잊지 못한다. 生而不有를 이토록 선명한 장면으로 목격하다니..
야크라는 이름의 거대한 초식동물이 있다. 오래된 미래의 장소, 라다크 어느 산자락 어슬렁 거리다 그와 맞닥뜨리는 순간 경외감이 들었다. 이유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 순간 자태와 움직임에 매혹되었다.
크다고 다 매혹되는 것은 아니다. 로빈이라 불리는 유럽 개똥지빠귀 한 마리와 친해지려 올 여름 수작을 부리던 몇 주간 나는 산책하러 나갈 때마다 쿠키를 챙겼다. 당시 나는 파견으로 파리의 OECD 본부에서 일하던 중이었고 경내에는 나무로 우거진 근사한 산책로가 있다. 아직 날지 못하고 몸 색깔도 검은색으로 변하기 전 이 조그만 녀석은 산책로 주변을 종종거리며 다녔다. 과자 부스러기를 늘 같은 곳에 뿌려주고 몇 시간 뒤에 나가보면 으레 깨끗이 먹어 치우곤 하였다. 그러나 이런 수작으로 친하게 되리라는 꿈은 애당초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길들여지는 건 그가 아니라 내가 아닐까?
2018년 여름 한철 내가 작업하려 했던 로빈
어제 오늘 한반도의 명운이 달린 회담이1) 열리고 있으니 동물원 우리를 나온 팬서 쯤은 뉴스거리가 안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자꾸 신경이 쓰이고 눈길이 간다. 그녀에게 주어진 짧은 자유의 대가는 사살(射殺)이었다.
그대 요단강 건너 타나토노트가 되어 이 색계를 떠나가더라도 절대로 절대로 그대를 가두고 숨을 거두어간 자들을 용서하지 마시라…
길들여지지 않는, 아니 길들일 수 없는 정신과 육체를 현실의 제도와 관습의 틀에 가두고 자유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연대와 연민을 보내며…
사족: 1. 2018년 제3차 남북정상회담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간의 다섯 번째 정상회담이다. 2018년 9월 18일부터 9월 20일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에서 열렸으며,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김정은, 그리고 양측 대표단이 회담에 참석하였다. 표어는 ‘평화, 새로운 미래’이다.
2. 내가 속한 커뮤니티 어느 곳에서도 이 죽음을 애도하는 자가 없었다. 오직 노래하는 친구들이 모인 곳에서만 사살된 팬서를 기억하기에 그 마음이 고마워 몇 자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