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진과 함께 보는 영화 - 마이클 포웰과 에머릭 프레스버거 감독의 "분홍신(The Red Shoes, 1948)"
이번 달 영화는 마이클 포웰과 에머릭 프레스버거 감독의 "분홍신(The Red Shoes, 1948)"입니다.
이 영화는 예전에 디비디로 나왔지만 그 때는 보지 못했고, 최근 고화질로 다시 나왔기에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발레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외국 영화들이 많이 소개되지 않았던 시절에 한글 자막이 없는 영화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발레는 자막 걱정 없이 볼 수 있어 좋겠구나'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지만 발레를 찾아보거나 발레를 시작부터 끝까지 본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오페라도 모차르트의 몇 작품들 외에는 작품 전부를 본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오페라의 경우에도 공연을 녹화한 경우보다는 영화로 만들어진 것을 좋아합니다.
"분홍신"의 경우에는 워낙 명성이 있는데다가 마이클 포웰과 에머릭 프레스버거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므로 고화질로 복원되었다기에 보고, 비록 발레가 중심이 되는 영화이지만 같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1948년에 나온 영화이지만, 옛날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17분 동안 계속되는 '분홍신' 발레 장면도 환상적이지만, 제가 가장 인상적으로 본 것은 보리스 레몬토프로 나오는 안톤 월브룩의 연기였습니다. 영화 내내 안톤 월브룩은 강렬한 이미지가 제 시선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빅토리아 페이지 역을 맡아 처음 영화에 출연하는 발레리나 모이라 시어러가 춤으로 보여주는 연기와 환상적인 무대도 만족스러웠습니다.
이 영화는 원래 영국의 유명한 제작자인 알렉산더 코르다가 1934년 처음 전설적인 남자 발레리나인 바츨라프 니진스키의 삶을 영화로 만들 계획을 가졌고,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 내용도 들어가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러시아에 발레 루스를 창립한 세르게이 댜길레프와 바츨라프 니진스키의 관계가 영화의 중심이었고, 니진스키 대신 여자 발레리나로 바꾼 것이 "분홍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르다가 1937년 에메릭 프레스버거에게 각본 써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이 때는 아내 멀 오베론을 주연으로 하고 전문 댄서가 댄스 장면에서 오베론을 대신할 것을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으로 영화 제작이 무산이 되었고, 마이클 파월과 프레스버거는 1947년에 코르다로부터 각본에 대한 권리를 사서 영화를 만들게 됩니다.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의 내용이 독립적인 발레 작품과 영화 내용의 일부로 표현되고 있으며, 레몬토프의 모습에는 원래 제작자인 코르다의 모습도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발레단을 이끌고 있는 보리스 레몬토프는 세르게이 댜길레프 역을 맡고 있는 것이고, 빅토리아 페이지는 니진스키 대신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빅토리아 페이지 역을 맡을 발레리나를 찾았고 모이라 시어러를 어렵게 설득해서 출연을 시키게 됩니다.
모이라 시어러 외에도 당대의 유명한 발레리나인 프리마 발레리나 루드밀라 체리나와 로버트 헬프만과 발레 루스 출신인 레오니드 마신도 이 영화에 출연을 하며, 이들은 같이 마이클 포웰과 에머릭 프레스버거 감독이 만든 오페라 영화인 "호프만의 이야기(The Tales Of Hoffmann, 1951)"에도 출연을 합니다.
"분홍신"은 1948년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으며, 미술상과 음악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 볼 수 있는 고화질의 "분홍신"은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재단과 UCLA 영화 및 텔레비전 아카이브에 의해 2006년 가을부터 2009년 봄까지 2년 반 동안 작업 끝에 복원이 되었습니다.
"분홍신"을 국내에서는 1952년 피난지 부산에서 개봉하여 관객들이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영화를 통해서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명소를 볼 수 있는 것은 영화가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이클 포웰과 에머릭 프레스버거 감독 영화에 영향을 받은 후대 감독들이 많으며, "분홍신"에 영감을 받은 대표적인 영화가 파리의 아메리카인 (An American In Paris, 1951)과 코러스 라인(A Chorus Line, 1985)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