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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 <안드레이 루블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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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를 경과하면서 OTT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OTT란 over-the-top media service의 약자로 인터넷을 통해 방송 프로그램이나 영화 등 각종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영화가 기존과 같이 극장을 중심으로 유통되는 시대가 다시 회복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다시 말해 영화의 기본 유통이 인터넷을 통한 디지털 콘텐츠가 된다는 뜻이다. 이 말은 곧 넷플릭스를 통해 <파워 오브 도그>를 볼 때 그것은 ‘원본’을 접한다는 뜻이다. 어떠한 매체를 통해 예술 작품을 접할 때 그것이 ‘원본’이냐 아니면 복제품 또는 보조적인 유통 매체이냐의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예술의 장르를 한 번 나열해보자. 문학, 연극(뮤지컬 등 다양한 공연 포함), 음악, 미술, 건축, 그리고 영화 정도만을 일단 살펴보자.

 

미술의 경우 아무리 최상의 질로 인쇄된 것일지라도 화보를 보면서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게다가 디지털화된 미술 작품의 이미지는 그냥 참고 자료 이상이 되지는 못한다. 다행인 것은 미술의 원본을 그대로 재현하는 3D 인쇄기술이 점차 발전하여 조만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원본과 질감까지 99.9% 동일한 작품을 프랑스의 파리에 가지 않아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언젠가는 세계의 주요한 미술품이 그런 식으로 복제되어 유통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려면 아마도 도시 하나를 미술관으로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하겠지만 인류의 문화적 지수가 그런 일을 감행할지는 미지수다. 어쨌든 미술은 디지털 세상에서 맥을 못 추는 측에 속한다.

 

현장성이 중요한 연극 등의 공연 예술이나 공간적 고정성을 가진 건축의 경우 원본 가까운 디지털 매체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원본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분야도 충분한 정도의 예술적 체험이 가능한 날이 올 것이다. 메타버스가 그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18년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선보인 메타버스의 세상이 도래한다면 몸은 집안에 있으면서 공연 현장에서 함께 열광하는 것도 가능하고,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 <카사 밀라>를 이리저리 둘러보거나 그 안으로 쑥 들어가 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세상이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다가올 것은 확실하지만 그래도 이러한 예술 체험은 보조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음악은 디지털 세상의 최대의 수혜자이다. 물론 음악의 경우도 현장성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집에서 파블로 카잘스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디지털 매체를 통해 듣는다고 해서 그것을 제대로 된 음악 감상이 아니라고 볼멘소리를 할 사람은 거의 없다. 효과적으로 마스터링 된 음악은 본래의 연주 이상으로 질을 높인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게다가 음악은 언어의 장벽도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디지털화된 음악은 일찌감치 우리의 삶에 깊고 넓게 침투하여 OTT, 메타버스, 3D 인쇄를 기다려온 다른 예술 분야에 비해 편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유념해야 할 것은 대략 5~60년 전만 해도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를 들으려면 카네기홀에 가야만 가능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음은 가장 복잡한 측면을 가진 문학을 살펴볼 차례이다. 문학은 이미 고대부터 기술적으로는 그 ‘원본’의 유통이 가능했고 근대에 들어서면서는 이미 대중화되었다. 종이책이라는 매체는 이미 수 백 년의 역사를 가졌으며 그것이 오늘날 디지털화된 e북이 되었어도 그 본질적인 측면은 달라지지 않는다. 여기서는 가장 큰 문제가 언어의 장벽이다. 호머나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는 있지만 인류가 만들어낸 위대한 문학 작품 중 과연 몇 퍼센트나 한국어로 접할 수가 있는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인공지능이 그 어떤 사람의 번역보다도 유려하게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는 문학의 유통 시대를 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학의 경우에는 위대한 작품이 너무나 많다는 점이 우리를 버겁게 만든다. 그리고 하나의 작품을 감상하는데 들여야 하는 시간도 꽤나 길어서 한평생 소화할 수 있는 분량에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의 총아인 영화를 살펴볼 차례이다. 영화관을 통해 유통되던 시대, 그리고 거기에 비디오테이프 시대를 거쳐 CD, DVD, 블루레이 시대를 거치더라도 원하는 영화를 쉽게 접하는 것은 많은 관심과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야만 했다. 게다가 위에서 다른 예술 분야를 말하면서 언급한 다빈치, 카잘스, 가우디, 셰익스피어에 해당되는 영화의 고전적인 작가, 예를 들어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타르코프스키, 무르나우, 오즈 야스지로, 장 뤽 고다르, 장 르누아르 등의 작품을 접하려면 세계적인 대도시에나 존재하는 시네마테크를 열심히 찾아다녀야 했다. 그러던 것이 우리 앞에 새로운 시대가 성큼 그리고 활짝 열린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OTT는 영화 유통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필름의 질감을 느끼는 예민한 사람이거나 3D, 4D를 즐기는 취향이 아니라면 집에서 영화의 ‘원본’을 어느 정도 접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무성영화의 시대가 끝나면서 영화에서도 언어의 장벽이 생길 수밖에 없었지만 문학에 비하면 언어 종속성이 적은 편이어서 원한다면 큰 공을 들이지 않아도 자막을 만들어낼 수가 있으며 아마도 조만간 현재 유튜브가 이미 걸음마를 시작한 실시간 자동 번역까지도 만족할 만큼의 단계에 이를 것이다. 더욱 다행인 것은 영화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는 점이다. 대략 127년으로 잡을 수가 있고 지금까지 인류가 생산한 영화(TV 드라마를 제외하고 다큐멘터리와 단편영화를 포함)는 이름도 모를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만든 영화까지 모조리 포함하더라도 대략 10만 편 정도로 추산된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를 평가하는 시스템은 다른 예술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보편화되어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이에 대한 정의는 뒤에 다룬다)인지를 분별하기가 비교적 쉽다는 점이다. 영화감독, 영화평론가, 영화이론가, 영화제 프로그래머 든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우수한 영화들을 꼽아주는 수고를 해주기 때문에 우리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종합적이고 대중적이며 최종적인 예술 장르인 영화의 가장 우수한 작품들을 집에서 편안하게 골라서 볼 수가 있는 세상에 살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죽기 전에’ 인류의 최종적인 예술인 영화의 최고 작품들을 모두 볼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말 근사한 일 아닌가?

 

이러한 영화의 리스트 작업 중 가장 권위를 가진 것은 영국영화연구소(BFI)가 발행하는 <Sight & Sound>가 10년마다 세계 각국의 수백 명의 전문가들에게 의뢰하여 만드는 ‘The 100 Greatest Films of All Time’일 것이다. 그 외에도 권위 있는 프랑스의 영화 잡지 <Cahiers du Cinema>, 미국의 미국영화연구소(AFI), 전문적인 영화평론 사이트인 Metacritic와 Rottentomatoes, 그리고 주기별로 또는 매년 발표하는 BBC, Guardian, New York Times 등의 베스트 영화 목록, 그리고 대중성을 겸비한 최고의 영화평론가로 꼽히는 작고한 로저 에버트(Roger Ebert)의 '위대한 영화' 목록 등을 참고하여 필자는 835편의 영화를 선정하였고 여기에 최신작들을 포함하면 대략 900편 정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되며 몇 년이 지나면 1,000편이 될 것이다. 이 리스트에서 현재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OTT를 통해 접근 가능한 영화는 대략 60% 정도가 된다. 통계에 포함된 OTT는 넷플릭스, 왓차(Watcha), 네이버 시리즈온, Wavve, TVING, Seezn, 디즈니+, Apple TV+, 씨네폭스, U플러스 등이다.

 

이 목록은 필자가 지금도 작업 중인데 대략 완성이 되면 공유할 생각이다. 이들 영화 중 필자의 주관적 요소가 가미된 ‘좋은 영화’ 100편의 영화를 선정하여 앞으로 유튜브 동영상의 방식으로 연재할 생각이다. 필자의 주관적 평가에는 다음과 같이 항목을 나누어서 각 항목별로 0~9점까지 매겨질 것이다.

 

- 영화의 완성도, 영화적 표현의 적합성

- 예술적 기여 또는 역사적 중요성

- 감상 또는 이해의 용이성(흔히 말하는 '대중성'과는 다름)

- 생각의 힘 또는 지적인 능력을 키워주는 정도

- 감성이나 상상력을 자극하고 풍부하게 해주는 요소

- 사상적 진보성(인류의 보편적 정의와 가치에 대한 태도)     

 

이번에 처음으로 소개하는 작품은 구소련의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의 1966년도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Andrey Rublyóv, 러시아어, 209분)이다. 유튜브 소개 동영상은 영어를 기본으로 제작하였기 때문에 시청할 때는 자막을 ‘한국어’로 설정하면 보기에 편할 것이다. 불행이도 현재 이 영화는 국내의 OTT 어디에서도 서비스하지 않지만 유튜브에는 영어 자막으로 고화질 영상이 올라와 있으므로 충분히 감상할 수가 있다.

유튜브 영상에서 전체 영화 보기 ▶

 

<안드레이 루블료프>

영화의 완성도, 영화적 표현의 적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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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기여 또는 역사적 중요성

____●●●●●●●●●

감상 또는 이해의 용이성(흔히 말하는 '대중성'과는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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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힘 또는 지적인 능력을 키워주는 정도

____●●●●●●●○○

감성이나 상상력을 자극하고 풍부하게 해주는 요소

____●●●●●○○○○

사상적 진보성(인류의 보편적 정의와 가치에 대한 태도)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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