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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국의 걸으며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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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길을 걸으며 나이듦을 생각하다

posted Jun 0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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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길 걷기를 길목의 사업으로 해보자는 제안이 무려 이사장님으로부터 왔다. 두말하지 않고 수락했다. 걷기를 좋아하고 더구나 대부분의 성곽이 산에 있어 산행을 즐겨하는 나로서는 매번 회의만 참석하다 이제야 회원들을 위해 뭔가 실질적인 것을 할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를 할 수 있어 두 번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제안이었다.     

 

도성길 종주를 작년 여름에 처음 하고 혼자서 또는 친구들과 함께 네 번이나 다녀왔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하지 않은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한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다. 한양도성길도 그러한 것 같다. 한번 다녀오게 되면 그 매력에 반하여 자꾸만 가게 되는...     

 

참석할 길목 회원들의 걷기, 오르기, 지구력 등을 가늠하기가 어렵기에 구간을 분할하여 네 번에 걸쳐 완주하는 쉬운 코스로 계획하였다. 첫 번째 모임은 구간 중 가장 난이도가 낮은 혜화문에서 출발하여 흥인지문을 거쳐 광희문에 이르는 낙산구간으로 정하였다. 2022년 3월 26일 토요일 아침 마침 촉촉이 봄비가 내리는 날이다. 며칠 전부터 토요일 비가 오신다는 예보가 있어 노심초사하였다. 이사장님도 걱정이 되는지 연통을 주셨다. 비를 맞으며 산행이나 달리기를 해본 사람들은 안다. 이 무모해 보이고 쓸모없을 것 같은 짓이 얼마나 해방감을 선사하는지... 여하간 혼자서 산책이라도 할 요량으로 출발지인 혜화문 옆 한양도성길 전시관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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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안내센터 앞마당이 봄비에 촉촉하다.

 

예상을 뛰어넘는 7명이나 되는 대규모 순례단이 순성놀이에 동참했다. 우리는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출발했다. 나도 머지않아 다리가 불편하고 쉽게 지치는 나이가 도래할 것이다. 다만 생각이 항상 짧아 지금의 상태가 오래 지속되리라는 착각 속에 살아갈 뿐이다. 속도가 문제다. 예전에 산을 오를 때 나의 현명한 산행 대장은 늘 이 말을 염두에 두라고 했다. 그 팀에서 가장 느린 사람의 속도가 오늘의 산행속도라고.. 이 말은 참으로 옳다. 그 느린 동행자를 산에 버리고 오지 않는다면 지당한 말이다. 그러니 제도나 규칙이 느린 사람에 맞춰 운영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것이 된다. 가장 느릴 수밖에 없는 어르신에게 속도를 맞추자 그리고 끊임없이 묻자 불편한 곳이 없느냐고 쉬어가고 싶으면 언제라도 이야기하시라고.. 그렇게 첫 번째 도성길 탐방의 시간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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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구간에 들어선 카페에서 오전부터 마신 맥주      

 

도심에 성곽길이 있으니 길 따라 만나는 카페와 레스토랑은 순성길 나서는 자들에겐 축복이다. 작년을 마무리하기 하루 전, 친구와 순성길 종주를 마치고 마침 눈에 띈 카페에서 지는 저녁노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셨던 기억이 떠올라 오늘은 시작 구간인 낙산에 그때 그 카페에 들어가 오전부터 맥주를 한 잔 마셨다. 수다를 떨고 다시 길을 나섰다.     

 

사단은 두 번째 순성길을 며칠 앞두고 생겼다. 자전거를 타다 내리막 커브에서 미끄러진 것이다. 오른쪽으로 넘어지며 무릎, 넓적다리관절 그리고 손바닥이 차례로 아스팔트와 격렬하게 애무하였다. 피가 철철 흐르는 오른손을 지혈하며 5월 28일 토요일 아침에 있을 도성길 안내를 생각하였다. 몸이란 게 신비하여 버스 한 계단도 오르내리지 못할 통증이 하루하루 나아져 다치고 닷새가 되니 어느덧 다닐만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며칠 사이 유심히 관찰한 어르신들의 발걸음 그리고 계단 오르내림의 고통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어려움이 내 문제가 되어야 우리는 비로소 심각해지는 것이다. 늙어감이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한걸음 한걸음 옮기는 것의 불편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일상으로 대해야 하는 삶이다. 그리고 나이듦이란 저런 것이다라고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굳이 성서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자각과 깨어남이 고통에서 출발하니 고통을 다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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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앞에서 두 번째 순성길을 인증샷을 찍다

 

성곽을 따라 600여 개의 계단을 오르고 다시 그만큼의 높이를 조심조심 내려왔다. 오늘 순성길 동반자 중에 안내를 맡은 내가 어쩌면 가장 느린 자이다. 출발 시간에 만난 70대의 이사장님은 아침에 허리를 삐끗하여 불편하다고 하시었으나 마칠 무렵 사진에는 늠름한 기상이 더해졌다. 걸으며 통증이 가라앉은듯하여 내 마음도 편하다. 더불어 내 무릎도 건재하다. 하여 걷기를 두려워 말라. 걸음만이 오로지 삶과 인생을 구원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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