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57

헬조선과 경토리 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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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정치적으로 일제에 의해 끝났지만, 사회적으로는 기독교에 의해 끝나고 있다. 

 

그렇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의 대한민국 정체는 조선을 필요로 한다. 한국은 아직도 조선을 뒷발질로 밀어내어 전진하고 있다. 기독교만 조선을 밀어내 온 것은 아니다. 멀쩡한 대한민국을 두고 헬’조선’이다. 헬대한이 아니라 헬조선. 조선 밀어내기가 아직도 작동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틈새다. 여기가 헬이라면 대한민국일 수 없고 아마 조선 따위일 것이라는 인식. 대한민국은 아직도 미래에 있고. 이런 인식의 배는 순풍이나 조류에 의해 흘러가지 않는다. 의식의 아래층, 역사적 무의식이 부단히 노를 젓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꾸 조선의 지배층이 실패했다고 말하지만 우리의 무의식은 조선의 지배계급이 성공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고 싶은 걸 다 했다. 수탈, 도주, 매국, 전쟁, 학살. 그처럼 대한민국도 성공한다. 독재, 수탈, 매국, 사면, 내부 총질, 내부 식민까지. 대한민국은 자기가 아직도 미래에 있다며 자기가 아직 조선임을 양해해 달라고 한다. 조선은 대한민국에 의해 청산되지 않았고 오히려 대한민국은, 조선의 적자다.

 

청산되어야 마땅하다던 조선은 대한민국 화폐에 각인되어 기념된다. 율곡과 퇴계, 사임당을 보는 대한민국의 시각은 전혀 조선적이며 이는, 내심이랄 것도 없이, 노골적인, 조선의 대한민국에 대한 지배다. 대한민국은 조선을 뒷발로 걷어차서 그 이데올로기적 동력을 얻으면서도 사실상 조선을 유지한다. 여기가 ‘헬’, 바로 ‘조선’이라는 인식은 그것의 간파다.

 

청산의 거부와 함께, 계승해야 마땅한 가치들은 걷어 차여왔다. 여기가 조선이기에,  여기가 걷어차는 가치들은 당연 조선도 걷어차 왔던 것들이다. 조선이 걷어찼던 자생적 언어, 자생적 문자, 자생적 음악 문법, 자생적 음악 문자들은, 명에서 청으로, 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미국으로 자신들의 숙주를 바꿔온 조선의 지배계급에 의해, 조선 당대에 이미 비하되었고, 지금까지 비하되어 온다. 온갖 다양성의 가치, 인류학적 인식, 인류애적 철학들이 긍정되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절대, 조선 시대를 관통하며 생성된 자생적 문법만은 긍정하지 않는다. 아니, 알아야 부정도 하므로,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ㄹ이 R이냐 L이냐라는 로마자 표기법 문제는, 겉모습만 한국인으로 바뀐 그 조선인들에 의해 표기법 문제가 아니라 랑그 문제로 치달았다. 지배적 대중음악을 들여다보면, ㄹ은 R이다, ㄹ은 L이다 식의 간절한 바람이 켜켜이 읽힌다. R파와 L파는 누가 ㄹ의 본래 정체인지를 두고 경합한다. 모두 조선인이다. 한 대중음악 가수는 어떤 실연을 당해도 절대 ‘아프지’ 않다. 다만, 아-f-으다.

 

이제 음악 얘기다. 경토리의 상2.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현학적이라거나 전문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건 어떤가? 장조의 세 번째 음. 현학적이거나 전문적인가. 도와 레 위의 음, 미.

 

국악이라는 개념적 장막 안엔 청각적 조명이 없다. 그 아래에선 아무도 들어볼 수 없게 되어 있는 어떤 조의 저 두 번째 음. 자생적 음악 문법을 배제하는 조선의 대한민국적 계승은 바로 저 장막, 즉 국악이다.

 

음악에 대한 조선의 범전인 악학궤범은 그와 달리 음악적 문법을 구분했다. 그러나 국악이라는 말을 정치적으로 채택한 포스트조선인들은 국악이라는 말을 정의하면서, 서로 다른 음악 문법을 통폐합한다. 국악은, 마치 대한민국이 조선을 밀어내면서 자신의 정체를 형성하지만 그로써 조선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보존하듯이, 현실적으로 만개하고 또 여전히 생존하는 음악 문법에 대한 조선의 위선을 그로써 계승한다. 국악은, 조선이 조선한 것이고, 계급이 계급 한 것이라고 할까.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한 것이라고 말 하지 못 할 이유는 있을까?

 

통폐합의 논리이자, 수백 년 전 조선에 통보되어 음악 정치적 법률이 되어 있던 중국의 음악 체계는,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당대에도 조선을 부정한 자들, 그들의 후예에 의해, 국악의 왕관이 되어 있다. 그 체계는 실용화 정도만 다를 뿐 실제적으로는 또한 서양음악적, 수학적 아이디어여서, 조선 음악문화의 실질인 언어학적 음악 재료들, 다시 말해, 언어적이 아니라 언어학적 음악 재료들, 즉, 경토리, 서도토리, 그들의 각종 혼종, 남도, 동부 등의 음악 문법들을 모두 서양음악 체계로 환원하는 매개가 된다.

 

‘오나라’를 복면가왕이 판소리라고 호명할 때, 이 환원은 실제적 효용성을 확인하는데, 이러한 현재진행형 환원 작업은 20세기 초에 본격화되며, 조선 후기 네이티브들의 고유한 문법이 만개하여, 풍류, 가곡, 판소리, 각종 경서 소리 등을 낳은 역사에 맞서, 세종 대 아악주의자 박연 이후 다시 시작된, 대대적인 멸종 작업이다.

 

일본어가 공용어인 시대를 지나, 이제, 한국어 내부까지 공략당하여, ㄹ을 R이나 L로 발음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가면을 쓰고 부러움 받는 이 시대에, 유구한 그 환원주의는 압도적으로 이 문화의 자생적 질서를 세탁하고 초등교육해 오고 있다. ㄹ을 R이나 L로 발음하는 건 예술적인 행위나 문화다양성 추구가 아니고, 문화정치적 정책이다. 영문학 상 어떤 작가도 그 급을 막론하고 자신의 작품을 읽을 때 동양식 사투리로 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에선 한국어의 ㄹ을 R이나 L로, ㅍ을 F로 발음하면, 누구도 간과할 수 없는 문화정치적 메시지, 부드러운 협박이 된다. 이런 예술적 허용은 대한민국적 허용이 아니라 조선적 허영이 아닐까. 이 한국인들은 아직 조선인들이 아닐까.

 

ㄹ처럼, 경토리 상2는 바흐의 평균율 위에도 국악개론의 중국 12율 중에도 없으나, 조선음악 유산의 가장 방대한 분량의 가장 핵심적인 음악적 문법성을 지탱하고 있다. 경토리 상2가 전문적인 영역 같지만, 우리가 어디까지 왔냐 하면, 대한민국의 조선음악유산 전공자들이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며, 다만, 아직도 경기소리와 서도소리의 가장 아름다운 대목에서 그 정체는, 전공자가 아니라, 네이티브들에 의해 스스로 꽃피어 있다. 지금 현재에도, 대한민국의 음악 관련 국가 기관과 주요 교육 기관이 바로 그 꽃들을 벌초하는 담당 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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