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아웃의 특효약, 드라이에이징 티본스테이크
덴부와 셜리의 요리 이야기
한국 속담에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기다리기"라는 것이 있다.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대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입만 벌리는 것이다. 즉 요행과 사행심으로 무장된 사람에게 하는 말이겠지. 그것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기 싫은 데 뭔가는 해야겠지 하고 생각은 하는 사람을 말하기도 한다.
내가 요새 그런가 같다. 그러다가 거실에 가만히 누워서 있다가 아... 글이라도 써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감이 떨어지려면 가을이어야 하는 데, 아직 여름이다. 오래 걸릴 것 같다. 감이 떨어질 때까지. 그때까지 뭐라도 해야지. 한량의 바쁜 하루 일지를 쓰기로 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더욱 안 하고 싶지만, 너무나 한량 같은 삶이어서 글이라도 쓰자는 심산이었다. 물론 안 썼다.
그리고 최근 홀로요리에도 펑크를 냈다. 뭐 하냐고? 백수다. 아무것도 안 한다. 지금 8개월째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 정규직에 정년이 보장된 회사도 그만두었다. 그래서 할 일이 없는 데 더더욱 하기 싫었다. 그래서 집에만 있었다. 벌써 8월이 다가온다. 그동안 아무런 수입도 없이 살았다. 그런데 그거 있지? 놀면 돈을 더 쓰게 된다. 내가 집에서 택배만 시키고 그런 히키고모리 같은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나가는 돈이 있다. 그리고 이것저것 사 먹고 가끔 나가노니 지출이 더 심하다. 재산을 탕진하고 있으며 홀로 요리도 쓰지도 않고 있다.
번아웃은 무엇인가?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있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 진단을 해봤다. 근데 진단한다고 또 뭐가 달라지나? 극도의 욕망을 극한의 정신적 육체적으로 열망했을 때, 그 결과가 아무것도 없을 때 불나방처럼 스스로 정신이 타들어간다. 그리고 욕망은 어떤 성취감이나 승리감이나 그런 게 아니다. 복수심, 우월감, 자만심, 열등감, 질투심이 엉키어져 있는 것들이다. 머리카락이 엉킨 시커먼 것들이다.
하지만 번아웃이 내게 준 소중함이 있다. 너답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네가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라는 것이다. 근데 그게 뭐 대단한 말도 아니다. 할 게 없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찾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아무것도 하기 싫다. 하고 싶지 않지만 더더욱 하고 싶지는 않다. 길목에서 계속 연락 오는 데 그래도 써야지. 아유... 일어나 앉아 보자. 뭐 쓸까. 좀 멋있게 쓰려고 했다. 번아웃 끝에 자아를 찾고, 내 행복의 길로 간다 뭐 그렇게 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네. 그래도 지켜 봐주시라.
번 아웃에 좋은 처방을 내려주겠다. 좋은 식품을 소개하지. 그것은 드라이에이징 한 티본스테이크이다. 푸하하... 즐겁다. 소고기는 정답이다. 늘..
아 갑자기 내가 조울증 환자 같은 데. 조커가 된 기분이다. 마트에 가면 다양한 스테이크 종류가 있는 데, 오늘은 드라이에이징한 스테이크가 딱 있어서 바로 구매했다. 가격도 생각보다 괜찮다.
티본스테이크의 매력은 가운데 뼈를 중심으로 양쪽에 고기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담백하고 부드러운 안심과 기름지면서 쫄깃한 채끝 쪽이 붙어 있기 때문에 두 가지 맛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구울 때 양쪽의 특성을 감안해서 구어야 한다.
드라이에이징은 굉장히 숙성시킨 고기이다. 4주에서 6주 이상 숙성시켜야 한다. 그래서 겉은 곰팡이 등이 있어서 걷어내야 해서 생산성에서는 별로 좋지 않다. 그러나 물기가 빠지고 고기가 훌륭히 숙성되기 때문에 상당히 부드럽고 고기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다.
한국은 드라이에이징이 쉽지 않다. 물론 지금은 냉장고가 있으니까 당연히 가능하다. 한국은 고온다습하고 한랭건조해서 쉽지 않다. 너무 습해서 숙성이 아닌 썩어버리고, 너무 추워서 얼어버린다.
게다가 예전에 고기를 잡고, 임금에게 우유죽(타락죽)을 바친 계층이 대부분 귀화한 여진족, 거란족인데 이 친구들이 뭐 숙성이 어디 있어. 물론 고기 말린 육포는 있지. 숙성은 또 돌아다니는 목축업에는 딱히 어울리는 기마민족의 음식은 볼 수 없지 않나... 있나? 모르겠다.
어쨌든,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를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먹으면 비싼 데, 오늘 너무 싸서 사 왔다. 어느 마트냐고? 난 너무 번아웃되서 그냥 가까운 마트에 갔어. 뉴욕에 있는 홀마트에서 샀어. 뉴욕에서 뭐 하냐고? 아무것도 안 해. 별로 관광도 안 해. 그냥 돈만 쓰고 있어. 탕진 중이야.
어쨌든 여러분은 재수 없게 들리지만 일단 만들어 보자. 아, 참고로 여기는 비닐을 안 쓴다. 그래서 고기도 종이에 싸서 준다. 피가 뚝뚝 떨어질 수 있으니 시장가방을 들고 가야 한다. 드라이에이징이라 다행히 핏물이 많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실 뭐 대단한 것은 없다. 왜냐면 한국에서는 대부분 냉동된 것을 포장되어 배달되기 때문이다. 근데 난 냉동될게 아니기 때문에 별거할 게 없다. 냉동된 것은 올리브 오일 하고 뭐 소금 뿌린다고 하는 데 안 그래도 된다. 멋진 사람은 별 치장을 안 해도 귀티가 나듯, 좋은 고기는 뭘 안 해도 된다.
[만들기]
1. 기름을 두른다. 올리브기름보다 나는 이럴 경우 식용유를 선호한다. 기름의 끓는점이 달라서 식용유가 더 뜨겁고 끓는점이 높다. 그래서 고기를 세게 구워버린다.
2. 프라이팬을 센 불로 확 달군다. 프라이팬에 연기가 올라올 정도로 확 달구어져야 한다.
3. 고기를 올린다. 고기를 자주 뒤집어 줘도 좋다. 괜찮다. 왜냐. 워낙 센 불이어서 한쪽 면이 벌써 익는다. 30초마다 한번 뒤집고 30초에 한번 뒤집고 30초에 한번 뒤집고 30초에 한번 뒤집는다. 끝.
3. 이렇게 벌써 2분이 흘렀다. 불을 중불로 낮춘다.
4. 동맥경화에 걸려서 죽는 거 아닐까 할 정도의 양으로 버터를 프라이팬에 넣는 다. 한국 사람들은 버터에 대한 선입견, 가격에 대한 두려움으로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해도 많이 넣지 않는다. 밥숟갈로 두 번 떠서 넣으면 된다. 푹 뜬 밥숟갈이다.
5. 미디엄 레어 정도면 30초 30초 30초 30초 단위로 하면 된다. 도합 2분이다. 이 정도면 미디엄 레어이다. 더 익으면 웰던이고 1분이면 레어이다. 오븐에 더 구우라고 하는 데, 집에 오븐이 없는 집도 있으니까 안 해도 된다.
5. 접시에 올려서 먹는다. 순서는 아무거나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 난 당연히 안심을 좋아하니까 안심이다.
6. 곁들여 먹는 것을 가니시라고 한다. 오븐에 구울 때 같이 구워도 되고, 남은 소기름에 구워도 된다.
7. 나는 스트로베리와 블랙베리, 시금치 이파리에 꿀 하고 톰과 제리에 나오는 그 치즈를 넣어서 준비를 했다.
8. 귀족처럼 포크와 나이프로 고기를 먹은 후, 티본은 로마제국을 침략하는 북방민족처럼 들고 이빨로 뜯어라. 귀족보다 더 한 쾌감을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