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무를 만나다 2
센트럴 파크의 미국 느릅나무(American Elm)
Sue Cho, “Elm tree with American Pride”, 2022 July, Digital Painting
나는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가 더 아름답다
곧은 나무의 그림자보다
굽은 나무의 그림자가 더 사랑스럽다
함박눈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많이 쌓인다
그늘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그늘져
잠들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와 잠이 든다
새들도 곧은 나뭇가지보다
굽은 나뭇가지에 더 많이 날아와 앉는다
곧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나
고통의 무게를 견딜 줄 아는 굽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나무에 대하여 – 정호승
뉴욕시는 1985년에 처음 “Great Tree Search”(위대한 혹은 대단한 나무 찾기)를 시작했다. 5개 보로(Borough)에 사는 뉴욕 시민들에게 뉴욕시를 가장 잘 대표할 수 있는 나무들, 오래되거나, 희귀하거나 또 역사적 의미가 있는 나무들을 추천받아, Great Trees를 선발했다고 한다. https://www.nycgovparks.org/facilities/great-trees
우연히 책방에서 만난, “Great Trees of New York Map”, 지도를 따라 보물찾기 하듯 나무 탐방이 시작되었다. 이제 도심 한복판을 걸을 때 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공기나 물처럼 소중하지만 의식하지 못했던 나무의 세계가 활짝 열렸다.
두 번째 나무 이야기는 미국 느릅나무 (American Elm)으로 할까 한다. 동부 북미주가 원산지인 미국 느릅나무는 20세기 초까지는 가장 인기 있는 가로수였다고 한다. 수명이 300년이나 되고, 처음 몇 년 동안 키가 쑥쑥 클뿐더러 그 키만큼 양옆으로 멀리 자라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어느 동네를 가나 “Elm Street”라는 길이름이 있을 정도로 미국 느릅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로워 맨해튼도 Lafayette Street (Prince Street에서 Chamber Street까지)가 한 때 Elm Street(느릅나무 길)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런 미국 느릅나무가 지금 우리가 팬데믹을 겪듯, 1930년대에 유럽에서 수입한 나무목에 의해 옮겨지기 시작한 더치 엘름 디지이즈(Dutch elm disease)를 몇 차례 겪으면서 대다수의 미국 느릅나무가 쓰러져 나가고 이제는 병에 취약한 이 나무를 더 이상 뉴욕의 가로수 길로 선호하지 않게 되었다. 북미주에서 역사적인 미국 느릅나무들이 가장 많이 살아남은 곳 중 하나가 센트럴 파크라고 한다. 미국 느릅나무는 몰(The Mall)의 문학의 길 (Literary Walk)과 파크의 동쪽 경계인 5번가의 길을 따라 걸으면 많이 볼 수 있다.
The Mall
넓고 일직선으로 쭉 뻗은 몰의 프롬나드는 센트럴 파크에서 조경으로 가장 중요한 길이라고 한다. 양옆으로 미국 느릅나무가 서 있는 이 길을 따라 걸어가면 마치 고딕 성당을 걸어 들어가는 경건한 기분이 든다고들 한다. 웅장하게 일렬로 서 있는 나무 기둥은 마치 성전의 기둥을 연상시키고 양옆으로 휘어진 나뭇가지가 모여 성당의 지붕처럼 아치를 드리우면서 그 사이사이 들어오는 햇빛들에 반사되어 나뭇잎들이 여러 쉐이드의 초록으로 반짝거린다.
그 당시(19세기) 마차와 말이 다니는 길은 서민이 걸어 다니는 길과 따로 분리되어 있어 부유한 중산층과 서민이 서로 만나기 힘든데, 이 길은 오로지 걸어서만 갈 수 있어 센트럴 파크의 민주적인 디자인 취지가 잘 반영이 된 길이라고 한다. 문학의 길부터 시작해서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베세즈다 아케이드와 테라스, 분수(Bethesda Arcade, Bethesda Terrace, Bethesda Fountain)으로 이어지는 길은 센트럴 파크에서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Sue Cho, “Dancing Elm Tree”, 2022 July, Digital Painting
미국 느릅나무를 처음엔 구분하기 어려웠다. 달걀 모양의 잎사귀 끝에 톱니가 난 전형적인 잎사귀라서. 센트럴 파크에 와서 보니 분수처럼, 때로는 메두사의 뒤엉킨 머리카락처럼 제멋대로 갈라지고 구부러진 가지는 미국 느릅나무만의 독특한 매력이고 유럽 느릅나무와 구분하게 해 준다. 공원 당국(Central Park Conservancy)은 특히 역사적 미국 느릅나무가 사라지지 않도록 각별히 노력하고 있다. 미국 느릅나무는 뿌리가 넓게 퍼지지만 얕아서 사람들이 밟으면 쉬 손상되므로, 주변에 울타리가 치거나 패블 스톤을 덮어서 보호해 준다. 더치 엘름 디지즈가 퍼지지 않도록 트리트먼트를 해주고 병에 죽어 나간 자리에 새 나무를 심어 아름다운 미국 느릅나무를 보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The Women’s Rights Pioneers Monument (left), Statue of Wiliiam Shakespeare (right)
Mall의 남쪽 길을 Literary Walk라 부르는데 셰익스피어를 비롯하여, 존 번즈 등 문학가의 동상들이 있고, 여권을 위해 싸운 세 여성 선구자의 동상(the Women’s Rights Pioneers Monument)이 2020년 새로 세워졌다. 이 길에 아티스트의 부스들이 곳곳에 있는데 옛날 동화책 삽화에서 봄 직한 따뜻하고 섬세한 판화가 눈에 들어왔다. Queens에 사는 아티스트, Vartouhi Pinkston이 4년째 이곳에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집에서 에칭을 프린트해서 공원에서는 그림물감으로 색칠한다. 나무 구멍에 들어가 있는, 새와 다람쥐 판화를 보니 저항하기 힘들어 조그만 카드와 함께 샀다.
센트럴 파크에 있는 미국 느릅나무 중에 한 나무를 고르라면 단연 97가 이스트 메도우 입구에 있는 바로 이 나무다. 이스트 메도우는 프레드릭로 옴스테드가 여러 종의 나무를 심어 수목원처럼 만들려 했는데 그의 플랜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이곳에 가면 좋은 나무들이 많다. 이 나무는 공원이 생기기 전에 심어진 나무라고 추측하는데 1858년 공원을 만들기 시작했으니 적어도 160년 된 나무이다.
한자리에 있기가 싫어 기지개를 켜고 용트림하면서 어딘가로 뜀박질하고 싶은 나무의 마음을 본다. 뿌리는 넓지만 깊이 내리지 않고 어디론가 떠날 준비가 돼 있는 나무, 마음껏 꿈을 펼쳐 날아가고 싶은 나무. 달아나진 못했지만 양옆으로 가지가 놀랍도록 멀리 뻗쳐 나간 나무, 왠지 나에겐 서부의 개척자가 떠오르면서 지극히 미국적인 나무로 느껴진다.
American Elm (Ulmus americana) Height: 94.3 Feet Trunk Diameter 63 Inches Average Canopy Spread 80 Feet
Keith Haring, “Self Portrait” @ Astor Place at Third Avenue
또 이 나무를 보면 엉뚱하게도 아스토 플레이스에 있는 키스 헤어링의 조각이 생각난다. 키스 헤어링이 이 조각 작품을 자화상이라 명했는데 어디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던 것일까? 전에는 돌멩이나 바위를 보면 사람 얼굴이 보였는데 이제는 사람 조각에서 나무를 보다니. 나무를 너무 많이 보았나 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대단한 나무는 아니지만, 나만의 특별한 나무를 만나지 않을까?
Sue Cho, “Two elm trees in the field”, 2022 July, Digital Painting
PS 1. 처음 센트럴 파크를 방문하는 분에게 Mall에서 Bethesda Arcade, Terrace, Fountain으로 이어지는 길을 추천하고 싶다. 여유가 되면 분수 건너편 호수에서 배를 빌려 타고 Loeb Boathouse에서 점심도 하면서. 아쉽게도 이 레스토랑이 10월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우리에겐 “When Harry met Salley” 등 영화로 친숙한 추억의 장소가 문을 닫는 것은 섭섭한 일이다. 문을 닫기 전 주말 브런치로 Stuffed French Toast, Crab Cake을 추천한다.
PS 2. 센트럴 파크가 2022년 Trip Advisor 여행객들이 뽑은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1위로 뽑혔다.